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달 29일 밤에 열린 TV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국사회에서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치러지는 첫 대형 선거다. 사람·건물·교통이 밀집한 서울시 기후·환경 정책은 중앙정부는 물론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기관이 참고할 선례가 된다. 서울기술연구원이 지난달 펴낸 <서울미래보고서 2030>은 10년 후를 대비해 서울시가 갖춰야 할 필수역량으로 대기·수질 등 자연생활환경 개선을 1순위로 꼽았다. 10년 후 닥쳐올 도시문제로는 기후변화와 자원순환 등이 꼽혔다. 서울시장 후보들은 이런 요구에 답할 수 있을까.
<한겨레> 기후변화팀은 환경단체 및 전문가와 함께 주요 후보들의 기후·환경 공약을 점검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는 △가장 시급한 기후·환경 과제 △탄소중립 달성 시기 △에너지·전력 자립 계획 △주택공급 공약으로 증가할 탄소배출 감소 방안 △탈석탄 투자 선언 은행을 우대하는 탈석탄 금고 동참 여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저감 목표 및 실천 방안 등 7가지 공통질문과 5가지 개별질문을 따로 보냈다. 지난달 23일 두 후보 선거캠프에 동시에 질의서를 보냈지만 오 후보 쪽은 30일까지 답변서를 보내오지 않아 기본공약만을 뼈대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박 후보 공약에 대해 “목표는 과감하지만 실현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했다. 오 후보에겐 “평가할 만한 구체적 대책이 없다”고 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대표,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정은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추소연 RE도시건축연구소 소장이 공약 평가를 도왔다.
■박영선 박 후보는 서울시 탄소중립 달성 시기를 2045년으로 정했다. 서울시 기존 목표인 2050년보다 5년 앞당겼다. 다만 당장 중요한 2030년 탄소감축 목표는 ‘2005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서울시 기존 목표와 같았고, 그밖의 구체적 실행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김동언 팀장은 “목표를 과감하게 설정한 것에 비해 로드맵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했다.
주택 부문 탄소감축을 위한 대안으로는 냉·난방 등 에너지 사용량을 단지 내에서 직접 생산하도록 설계하는 ‘에너지 제로 주택’을 제시했다. 2018년 기준 서울시 탄소 배출량의 68.8%가 건물에서 나올 만큼 건물이 내뿜는 탄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박 후보는 ‘반값 아파트 30만 가구 공급’을 공약했다. <한겨레>는 주택 공급으로 늘어나게 될 탄소배출 감축 방안을 물었다. 박 후보는 “단열 강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 에너지 제로 기술을 반값 아파트에 적용하면 탄소배출을 줄이면서도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올해 공공분야에서 시작해 2024년 민간분야까지 에너지 제로 건축을 의무화 하겠다”고 했다. 또 “태양빛이 닿는 모든 부분에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 일체형 도시도 시범 도입하겠다”고 했다. 추소연 소장은 “건축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건축 폐기물과 탄소가 배출된다. 또 국내 에너지 제로 건축물은 냉·난방 에너지 사용량만 제로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완전한 의미의 탄소 제로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대규모 주택 공급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는 추가적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탄소배출량에서 건물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송 분야다. 2018년 기준 19.2%다. 박 후보는 2040년까지 서울시내 주요 교통수단을 전기·수소차로 전면 전환하는 방안,
21분 안에 주거·일자리·여가 등을 해결하는 ‘21분 생활권 도시’로 나눠 교통량과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박 후보는 “21개 권역에 혁신성장 클러스터를 만들고 다양한 기업을 유치하고자 한다. 스마트워크센터를 통해 재택근무를 지원할 것이다. 도로 다이어트, 교통체계 개선을 통해 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겠다”고 답했다. 정은아 연구원은 “서울 인구가 늘어나선 안 되는데 21분 권역 내에 기업을 유치하면 인구가 몰릴까 우려스럽다. 재택근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직업군도 있어 모든 일자리가 비대면화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수직정원의 가상 구현 모습. 유튜브 ‘박영선TV’ 갈무리
탄소와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할 녹지를 만드는 것도 서울시가 떠안은 과제다. 박 후보는 “도시에 수평공원을 조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수직정원 조성을 주요 공약으로 내놨다. 김동언 팀장은 “서울 과밀화 상황을 전제로 수직정원을 만들면 탄소감축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 기존 도로와 주차공간을 줄여 평지에 녹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수직정원에 심을 수 있는 나무가 제한적이고 전력 자립도가 낮은 서울에 적합하지 않은 공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 후보는 “수직정원에도 에너지 제로 기술을 활용하고 최대한 자체 생산 에너지를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자원순환 대책으로 박 후보는 ‘플라스틱 제로 상점’을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무포장 제품만 판매하는 알맹상점처럼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를 동마다 하나씩, 500개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김미화 대표는 “자원순환 문제를 기업이나 시민 노력에 맡겨둘 수 없다는 면에서 지자체가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오세훈 오 후보는 서울시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온실가스 비중이 높은 주택 부문 탄소배출을 줄일 대안이나 에너지 효율화 정책도 따로 내놓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5대 공약에도 박 후보와 달리 기후·환경 관련 공약이 없다.
오 후보는 부동산 공약으로 앞으로 5년 간 서울에 민간주택 36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한겨레>는 박 후보와 마찬가지로 주택 공급 확대 공약에 따른 탄소배출량 증가를 상쇄할 계획이 있느냐고 질의했지만, 오 후보는 이 질문을 포함해 모든 환경 공약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환경운동연합에 보낸 답변서에 △친환경 자동차 보급 및 지원 확대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체 규제 강화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 위한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 추진 △동북아시아 도시들과 대기질 공동관리 협력 체계 구축을 핵심 기후·환경 공약이라고 밝혔다.
친환경차 확대 공약에 대해 오 후보는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공공건물과 주차장, 주유소 등에 설치해 2022년까지 5000곳으로 확충하겠다. 배달용 오토바이를 친환경 초소형 전기차와 전기오토바이로 전면 교체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은아 연구원은 “전기차 인프라 확대도 필요한 정책이지만 내연기관차를 언제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계획을 짜는 게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오 후보는 탄소·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할 녹지 조성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후보자
토론회에서 박 후보의 수직정원 정책 실효성을 지적하며 “서울에는 산이 많다. 140개 봉우리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공보물에는 ‘녹색도시 서울, 지상철 지하화’ 정도만 적었다.
서울 강남의 한 전기차 충전소. <한겨레> 자료사진
자원순환 촉진은 오 후보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오 후보는 “제로웨이스트에 동참하는 기업이나 매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 시민 중심 재활용 문화 확산을 위해 동별 무인 빈병 회수기를 설치하고 플리마켓 플랫폼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김미화 대표는 “지자체 차원에서 포장재를 덜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다. 시민에 기대는 것은 미진한 공약”이라고 했다.
오 후보는 토론회에서 “미세먼지를 20% 줄인 경험이 있다”며 10여년 전 서울시장 경험을 강조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오 후보가 시장으로 있던) 10년 전에 비해 기후변화 문제는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가 계획한 2030년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저감을 위한 혁신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오 후보 공약에선 평가할 만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고 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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