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7일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체온 측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6일 국내 신규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가 1000명을 넘은 이후 한 달이 넘게 코로나19 유행 규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적용하고 있는 방역정책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된 지 6주가 되어가지만, 유행 규모를 줄이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전염력이 2배 이상 높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주된 유행주가 되었다. 질병관리청의 발표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국내 감염 사례의 85.3%는 델타 변이었다. 전염력이 더 높아진 바이러스는 동일한 방역정책에서 그 효과를 낮추는 방향으로 영향을 준다. 방역정책으로 신규 확진 환자 수를 억제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크고 장기화한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그나마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유행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증도와 치명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제는 코로나19를 인플루엔자처럼 다룰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현재의 거리두기 체계를 바꾸고 중환자 진료 중심으로 방역체계를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4단계 플러스 알파’라는 추가적인 조치로 신규 환자 발생 수를 더 강력하게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 강력한 봉쇄조치를 통해 환자 발생을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편감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정책은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경제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어 부가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수용성의 측면에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어떤 병원체의 퇴치나 박멸을 기대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우선 아주 효과가 좋은 백신이나 치료제와 같이 강력한 중재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를 찾아낼 수 있는 검사방법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원체의 생활사에서 사람이 매우 중요해서 사람이 통제되면 병원체의 생활사가 끊어질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사람이 통제되더라도 동물 사이에서 생활사가 충분히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없어질 수 없는 바이러스이다. 결국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바이러스가 가진 임상적인 의미, 즉, 치명률이나 전염력이 충분히 낮아져서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우리 주위에 있더라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인플루엔자 수준이 되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이전에 비해 치명률이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인플루엔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계절 인플루엔자의 경우 대개 치명률이 0.1%를 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코로나19처럼 모든 접촉자에 대한 검사를 시행하지도 않고 유증상 환자를 기반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치명률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유행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는 76만명이 확진되었지만 사망자는 270명으로 치명률은 0.03%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코로나19는 치명률뿐만 아니라 전염력도 인플루엔자보다 더 높다. 인플루엔자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는 대개 1.5를 넘지 않는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기준으로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는 5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보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이나 전염력이 더 낮아질 수 있어야만 이 바이러스를 다른 바이러스의 수준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신의 경우 모든 사람이 접종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접종의 기회는 충분히 부여되어서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바이러스제처럼 비교적 저렴하고 대부분의 환자에게 쉽게 투여할 수 있는 치료제의 개발도 중요하다.
다만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까지 위험이 낮아졌을 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자동차가 아예 운행되지 않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동차라는 교통수단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계속 운행하되 교통법규를 만들어 적용한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10㎞, 일반도로에서 시속 30~60㎞를 정한 것은 그 속도 이하에서는 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위험으로 본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 코로나19가 없는 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코로나19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