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 수도 2천명에 가까운 1987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오전 서울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열차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2천명을 넘어섰다. 수도권 4단계 거리두기를 한 달 넘게 계속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위기에 처했다. 지난 주말부터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하면 한동안 확진자 수 증가는 계속될 것 같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워낙 높아 사실상 집단면역이 불가능해졌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오는 11월 정부가 목표로 한 전 국민 백신접종률 70%를 달성해도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재유행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이제는 코로나19 방역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 확진자 수를 줄이는 방역이 아니라 중환자를 잘 치료해 사망자를 줄이는 방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마스크 쓰기 같은 개인방역과 확진검사와 접촉자 관리는 계속하되 국민들의 피로감이 큰 사적모임 규제나 사회경제적 피해가 큰 식당과 카페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규제는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경증은 자가치료 전환…중증은 10% 안 되는 병상 비중 높여야
이렇게 방역 전략을 바꾸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예방접종률이 높아지며 늘어나는 경증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 격리 수용하는 방식에서 집에서 스스로 격리하는 자가치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경증환자를 관리해왔다. 집에서 격리하는 대신 병원이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으면 즉시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국민 대다수는 자가치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라는 우리 국민 4명 중 3명은 경증환자의 자가치료에 찬성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는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람이 없도록 중환자 치료병상과 인력을 늘리는 일이다. 지금 정부는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우리나라 전체 중환자 병상의 채 10%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중환자 병상의 15%만 확보하면 하루 확진자 1만명이 발생해도 중환자 병상은 부족해지지 않는다. 전체 중환자실 입원환자 가운데 암 환자나 심장수술 환자와 같은 중증환자가 아니면서 응급환자도 아닌 환자가 약 15%를 차지한다. 병원들이 비중증·비응급환자의 진료를 잠시 잠시 뒤로 미루고 코로나19 진료에 동참하면 가능한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병원들은 이제까지 다 그렇게 해왔다. 작년 봄 대규모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과 유럽의 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환자가 전체 중환자실 입원환자의 70%에 이르기도 했다.
병상은 확보했는데 코로나19 환자가 정작 그 병상에 입원을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확보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에 대해 병상이 비어있어도 평균 진료비의 5배를 병원에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병원이 환자를 받지 않아 입원을 못 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3차 유행 당시 모든 상급종합병원에 일률적으로 1%의 병상을 내놓으라는 방식으로 ‘병상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금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인력을 충원하고 진료체계를 개선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코로나19 병상을 확보한 방식은 손실 보상을 당근으로 한 단기적인 동원 형태이지, 감염병 진료체계 구축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천의료원 음압병동의 격리병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정부돈 2조 썼는데 환자는 천덕꾸러기…민간병원 ‘협조’만으론 안돼
불과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만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생각도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 병원 가운데 90%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놔두고, 10%에 불과한 공공병원만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재난 상황에 놓였는데 공공병원은 전부 ‘동원’하고 민간병원에는 ‘협조 요청’을 하는 방식으로는 체계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걸맞은 새로운 감염병 진료체계 구상이 시급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감염병환자 진료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시·도 단위로 발생 가능한 코로나19 확진자 수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수의 감염병진료센터를 지정해야 한다. 이들 센터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새로운 진료체계를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보상해주는 병상만큼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는 얼마가 되었건 책임지고 진료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필요하면 상급 종합병원 지정, 지역의료체계 구축과 같은 기존 보건복지부의 정책과 연계해 병원들이 참여할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코로나19 환자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쓴 지원금이 3차 유행 이후에만 2조원에 이르는데 정작 코로나19 중환자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상황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보건소 방역인력도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비례해 대폭 늘려야 한다. 보건소는 역학조사와 접촉자 관리에 전념하고 병·의원이 할 수 있는 코로나19 검사나 백신 접종은 병·의원에 맡겨야 한다.
K방역 기로…방향전환 설득할 정치 리더십 필요
이렇게 방역 전략과 의료대응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이미 기존의 사회적 거리두기만으로도 그 피해는 매우 컸다. 영국, 미국, 독일의 전문가 12명이 참여해 지난 4월 발표한 ‘고소득 29개국의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초과사망자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지난해 초과사망자수(2020년 전체 사망자수와 코로나19 유행 전 수년간 연간 사망자 수를 근거로 추계한 2020년 예상 사망자수의 차이)는 4천명이었다. 한국 코로나19 사망자가 집계 시점에 819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요인 외 초과사망이 3181명으로 4배에 이르렀다. 여기엔 우리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정부가 하루 확진자 수를 1천명 이하로 줄이려면 거의 봉쇄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약 없이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파력이 높은 델타 변이의 확산세를 꺾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더 단축하고, 사적 모임 인원을 더 제한하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야간 통행금지를 도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노인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방역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와 직장을 잃은 사람들,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 돌봄이 중단된 노인과 장애인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환자를 잘 치료해 사망자를 줄이는 방역으로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노인을 포함한 고위험군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한 결과 코로나19의 치명률은 크게 낮아졌다. 백신을 맞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돌파감염이 드물게 생기기는 하지만 다행히 중증으로 발전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젊은층의 치명률은 원래부터 낮았다. 20대는 0.01%, 30대는 0.03%, 40대는 0.06%에 불과하다.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으로 인해 코로나19를 독감 수준의 감염병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케이’(K)방역은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해 온 방역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더는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한 방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욕먹을 각오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방역을 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용기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