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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건강보험이 ISD 대상 아니라고?

등록 2011-11-29 16:10수정 2011-11-29 16:15

[연속기고 ‘FTA와 나’] ⑦ 동네의원 의사편
나는 내과의사다. 지방도시의 변두리 주택가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네의원 특성상 환자들은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고, 소아환자도 많은 편이다. 12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개원 당시 코흘리개 아이들이 어느새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찾아오곤 한다.

# 동네의원 진료비 3천원, 문턱은 낮아졌는데…

동네의원은 1차 의료기관이다. 주민들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고,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이나 감기, 배탈 등의 급성경증질환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 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이므로, 방문당 진료비는 3천원 안팎이다. 약값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진료비만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1차 의료기관의 문턱은 많이 낮아져 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져 온 국민건강보험의 덕분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많이 부족하다. 큰 병에 걸려 입원과 수술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퇴원할 때 내야하는 병원비에 비급여 항목이 절반은 된다는 사실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쪽짜리 건강보험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다.

# 그래도 반쪽짜리 건강보험이라는 한탄

현재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질환의 경우 1차 의료기관의 외래진료비나 약값 본인부담률은 일반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30%다. 사정상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그 3.3배를 내야하니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지 않는 비급여 항목은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비급여 항목의 수가는 급여 항목에 비해 단순히 3.3배가 아니다. 건강보험의 수가통제를 받지 않으니 의료기관에서 정하는 대로 지급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되어 비급여 항목이 급여적용을 받게 된다면, 먼저 관행대로 받아오던 비용이 조정을 받게 되고, 소비자는 그 조정된 수가 중 본인부담률에 따른 비용만 지급하게 된다. 환자에게는 큰 혜택이 될 것이나 의료자본의 입장에서는 환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 민간의료기관이 90%를 차지하는 나라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중에 민간의료기관이 90%를 차지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의료기관의 문턱이 낮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때문이다. 이 제도는 전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제와 의료기관의 비영리법인 원칙과 함께 국민건강보험을 지탱해주는 3대 원칙이 된다. 이것이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의료분야의 공공성을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인천 송도 등의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특별자치도에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려는 정부정책이 반대여론에 밀려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지켜내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리병원 설립을 원하는 국내외 의료자본의 입장에서도 건강보험을 지탱해주는 안전장치들이 해체되지 않는다면 고수익을 보장받기 어렵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며, 의료시장 개방을 지지하는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도 국민여론에 반하는 정책을 강제로 밀어붙이기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 건강보험이 ISD 대상 아니라고?

얼마 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 FTA는 이러한 국면에 새로운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미 FTA의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 알려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바로 그것이다.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은 협정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공공영역이라도 투자자 사업과 경쟁관계로 파악되는 순간 공공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국가 지원체계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암 보험, 실손형 보험 등이 덜 팔려 손해를 입게 될 투자기업이 보장성 강화 조치에 대해 투자자-국가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 민간 의료클리닉 분야에 투자한 미국의 영리병원 트러스트 기업인 센츄리온은 2008년 7월, 무상의료 원칙에 따라 환자에게 추가비용을 받지 못하게 한 캐나다 연방보건법이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정당한 이윤추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중재 절차에 회부하였다고 한다.

# 보건의료 선진화의 참뜻은?

보건의료는 국민의 건강한 삶을 지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복지 분야의 하나다.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과거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던 군사정부하에서 추진되고 성립되었다는 사실은 그 시절에도 보건의료만큼은 기본적인 사회의 공공재로 인식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건의료의 글로벌화는 시장개방이나 영리의료기관 허용을 통한 의료자본의 비대화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보다 확대되어 모든 사람이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보건의료의 선진화와 글로벌화의 참된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송관옥(동네의원 의사)

[연속기고 ‘FTA와 나’]

〈1〉자동차 노동자편| “FTA의 자유는 노동자에게 고통전담일 뿐”
〈2〉 AIDS 환자편|11년간 에이즈 투병중…한·미 FTA는 공포 그 자체다
〈3〉대학생편|고대녀 “아프니까 청춘이라 하기엔 너무 아프다”
〈4〉시민편|FTA 찬성론자인 내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5〉골목상인편 | “우리는 국익 밖에서 떨어야 하는 99%다”
〈6〉지적재산권편 | ‘헤밍웨이 작품’ 마음 놓고 볼 자유 20년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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