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환자가 집단발생한 경기도 안산시 ㅎ유치원의 지난 25일 오후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시 ㅎ유치원에서 일어난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집단발생과 관련해, 28일 피해 학부모들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 등으로 ㅎ유치원 원장을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에 고소했다. 교육부와 질병관리본부(질본) 등 관계부처가 뒤늦게 역학조사와 현장점검에 나섰지만, 사건의 원인을 밝히려면 경찰의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앞서 지난 26일에는 ‘정치하는엄마들’이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ㅎ유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ㅎ유치원 재원생이 첫 증상을 보인 이후로 2주가 넘었는데도, 아직 감염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ㅎ유치원에 다니는 아동, 교사, 환자 가족 등 202명을 검사한 결과 111명(27일 낮 12시 기준)한테 증상이 나타났고 이 가운데 57명이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환자로 확진됐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특히 입원 중인 아동 15명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이 의심되는 상황이며, 4명은 투석치료를 받고 있다.
■ 감염경로 ‘미궁’ = 질본과 안산시는 집단감염 원인을 찾기 위해 조리사의 인체 검체, 조리에 쓰인 주방도구, 교실과 화장실 등의 환경 검체를 채취했지만 모두 ‘음성’이 나왔다. 지난 10~15일 급식으로 제공했던 음식을 보관한 ‘보존식’ 21개도 검사했지만 식중독균이 검출되지는 않았다. 28일 이동한 질본 감염병총괄과장은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오염된 음식을 통해 감염되거나, 사람과 사람 간에도 전파될 수도 있어 현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보존식에서 음성이 나오긴 했지만 식품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본은 지난 10~12일 ㅎ유치원에 납품한 식자재 공급업체 등에 보관 중인 돈육, 치즈 등 34건도 수거해 검사 중이다.
ㅎ유치원 피해 학부모들은 ‘보존식 증거 인멸’이 의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50명 이상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집단급식소는 식중독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음식물을 매번 1인분씩 영하 18도 이하 냉동고에서 144시간(엿새) 이상 보관하도록 식품위생법에 정해두고 있다. 그런데 ㅎ유치원은 지난 10~15일 제공된 급식과 간식 가운데 궁중떡볶이, 수박, 군만두 등 6건은 보존식을 보관해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서 안산시는 보존식 미보관에 대해 ㅎ유치원에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신장 투석을 받는 ㅎ유치원 피해 아동의 큰 아빠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지난 25일 인터넷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 글을 올려 “(유치원에서) 역학조사를 위해 일정기간 보관해야 하는 음식 재료들을 서둘러 폐기 처분한 것은 증거인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ㅎ유치원 원장은 지난 27일 저녁에 학부모들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저의 무지로 방과후 제공되는 간식의 경우에는 보존식을 보관하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시는 식중독이라고 최종 판명되면 추가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과태료가 처벌의 끝은 아니다. 병을 일으키는 오염된 음식물을 조리·제공하면 식품위생법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 업무상 과실로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 형법상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 ‘용혈성요독증후군(HUS)’ 뭐길래 = 이번에 57명이 확진된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출혈성 장염을 일으키는 2급 법정감염병이다. 발열, 구토, 경련성 복통 등 장염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보통은 5~7일 동안 증상이 지속되다가 저절로 낫는다. 하지만 드물게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이라는 합병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독소가 몸에 퍼져서 혈액 안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바람에 콩팥(신장) 기능이 저하되어 소변을 보지 못하거나 혈뇨, 혈변 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심하면 급성신부전증이 나타나고 혼수, 마비 증상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이른바 ‘햄버거병’으로도 불린다. 1980년대 미국의 한 가게에서 덜 익은 쇠고기 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 수십 명이 집단감염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도 충분히 익히지 않은 쇠고기, 특히 분쇄가공육 제품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지난 2016년에는 햄버거를 먹은 뒤에 ‘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고 신장 기능의 90%를 잃은 4살 아이의 부모와 ‘정치하는엄마들’이 한국맥도날드를 검찰에 고소하고 손해배상소송을 낸 일도 있었다.
하지만 ㅎ유치원의 경우처럼, 국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환자는 전국을 통틀어 146명이었다. 보건당국이 집계하는 관련 환자는 지난 2015년 이후로 해마다 71~146명에 그쳤다. 이동한 감염병총괄과장은 “이처럼 집단감염이 크게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용혈성요독증후군 증상을 단체로 보이는 사례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지난 27일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을 예방하려면 음식을 충분히 익혀먹고, 조리를 할 때마다 (고기와 채소 등 음식물 종류에 따라) 도구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설사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은 음식을 조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보건당국은 덜 익은 쇠고기 뿐만 아니라 오염된 물로 재배된 채소와 과일, 보균자가 조리한 샌드위치나 도시락, 조리된 음식과 식재료를 함께 보관하는 경우에도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안산시 ㅎ유치원에서는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유증상자가 111명 발생했다(지난 27일 낮 12시 기준). 연합뉴스
■ 유치원은 내년부터 학교급식법 대상 = 현행 학교급식법에서 양질의 급식을 안전하게 제공하기 위해 식재료와 위생·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돼있는 대상은 초·중·고등학교다. 이 때문에 유치원은 교육 당국이 위생 감독·관리하는 ‘학교급식’ 대상이 아니라, 지자체 보건소가 위생 점검하는 ‘집단급식소’로 분류됐다. 학교급식은 교육부가 만든 ‘학교 급식 운영·위생관리 지침’에서 식재료 보관방법까지 세부적으로 정해두고 있지만, 유치원은 이러한 지침이 없어 식품위생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수준에 머무른 것이다.
올해 초 국회에서 ‘유치원 3법’을 개정하면서 학교급식법 적용 대상에 유치원을 포함시키도록 했으나, 개정된 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바뀐 법에 따라, 유치원은 유치원운영위원회의 심의·자문을 거쳐서 급식 업무를 위탁해야 한다. 식사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다만 식재료 선정과 구매, 검수 등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치원이 직접 해야 한다. 조명연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장은 “내년부터 학교급식법에 유치원이 포함되므로 올해 유치원 급식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유치원 급식 운영·위생 관리 지침서’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는 “이번 사건은 미취학 아동 100여명이 집단적으로 감염된 심각한 사안이다. 증거 수집의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인과관계 입증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으로 섣불리 사건을 덮어버리면 다른 유치원, 학교 등에서 이와 같은 피해자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경찰과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황예랑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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