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유럽연합 규정 마저도 4개월 단위로 근로시간을 평균내서 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한다. 구글에 검색해봐도 4개월, 6개월, 1년까지 평균 내서 기준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1초만에 알 수 있다.”
현재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 한도를 정부 추진 방향대로 ‘월 단위’로 바꾸면 최악의 경우
주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가 우려가 나오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주 52시간 무력화라는 야당 및 노동계의 우려에 대해 윤 전 의원이 세계적 기준을 강조하며 “도무지 한반도 밖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는 관심도 식견도 없어 보인다”고 비판한 것이다.
윤 전 의원의 말처럼 실제 유럽연합은 연장근로시간을 4개월, 6개월, 1년으로 평균해 근로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입법지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윤 전 의원의 주장엔 맥락과 배경이 빠졌다. 윤 전 의원이 밝힌 내용 가운데 유럽의 근로시간 지침 등에서 빠진 ‘맥락’을 <한겨레>가 정리했다.
2003년 개정된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은 ‘입법지침’(Directive)으로 회원국이 법률에 반영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은 “근로시간을 구성함에 있어 안전과 건강에 대한 최저한도의 요건을 설정한다”로 시작하는데,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로 시작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한국이 최대 노동시간을 강조한다면, 유럽연합은 최소 몇 시간을 쉬게 해주라는 휴식권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목적·정의 규정 다음에 바로 나오는 ‘장’에는 ‘근로시간’이 아니라 ‘최소 휴식시간’이 등장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모든 노동자에게 하루 11시간의 연속휴식과 1주 24시간의 중단없는 휴식(주휴일)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아예 법으로 일요일을 근무하지 않는 것이 ‘기본값’으로 설정돼있다. 노동시간 총량 한도를 정해 규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휴식 보장 의무’로 일·주의 최대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방식인 셈이다.
유럽도 노동자 ‘개인 동의’로 연장근로 확대 안해
윤 전 의원이 또 하나의 사실도 누락했다. 유럽연합은 기본 4개월, 예외적으로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지만, 이를 위해선 단체협약 또는 노사협정과 같은 ‘집단동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 근로기준법의 연장근로 노사합의 주체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가 아닌 ‘개별 노동자’다. 정부는 향후 이를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로 바꿀 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이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면서 집단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과 결이 다르다.
유럽연합 지침처럼 노사협정을 통해 최대 6개월까지 연장근로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한국에 있다.
한국의 탄력근로제는 노사협정을 통해 정산기간 6개월까지 가능하므로, 이 기준대로 한다면 이미 한국의 노동시간법제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제가 경직돼 있다며, 개별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운용할 수 있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변경’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 모양새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연장근로 한도가 월 45시간 또는 연 360시간(휴일근로 제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어야 하며, 합의 때 △대상노동자의 범위 △기간 △연장하여 일할 수 있는 시간이나 휴일 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덧붙여 이런 내용을 행정관청에 신고 해야 한다. 사실상 한국의 탄력근로제에 가깝다.
일본의 제도 도입 맥락도 살펴야 한다. 일본은 2019년부터 이런 제도를 도입했는데, 일본은 그 전까진 연장근로시간 한도가 없었다. 그러나 장시간노동, 과로사·자살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연장근로 규제를 강화했다. 2020년 기준 일본 전체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598시간으로, 한국의 1908시간보다 310시간 짧다. 일본이 한국보다 주 6시간 덜 일하는데도 ‘노동시간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연장근로 관리 기간이 1개월~1년으로 긴 국가들의 근로시간은 어떨까? 유럽연합의 주당 근로시간 한도는 연장근로를 포함해 48시간으로 한국 52시간보다 4시간 짧다. 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확대 필요성을 밝히면서 예시로 든 국가들 역시,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월등히 짧다. 1년 근무시간을 보면, 2020년 기준 독일은 1332시간, 프랑스 1402시간, 영국 1367시간 등이다. 연장근로 한도 제한이 없는 미국조차 1767시간으로 한국보다 141시간 짧다.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경우 연장근로를 유연하게 관리해도 ‘집중근로’에 따른 문제점이 적지만, 노동시간이 긴 한국은 연장근로 유연화가 과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