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상사가 연차 사용 허가를 번복해 왜 연차 사용이 안 되냐고 묻자 “안마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안마를 해줬는데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짜증을 냈습니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연차를 그냥 안 쓰겠다고 했습니다.(직장갑질119 제보 가운데)
12일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쓸 수 없다’는 응답은 30.1%였다. 특히 비상용직(43.7%), 5인미만 사업장(49.4%)일 경우 그 비중은 절반 가까웠다.
정부가 특정 기간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대신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통해 ‘집중해 일하고 몰아서 쉬는’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그나마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휴가 사용을 둘러싼 법과 현실의 간극이 드러난 셈이다.
근로기준법은 연차 등 유급 휴가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벌칙 조항(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두고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쓸 수 있는 ‘시기 지정권’을 보장한다. 그런데도 자유롭게 휴가 쓸 권리는 다양하고 사소한 이유로 묵살된다.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제보를 보면, 한 제보자는 “(상사인) 본인이 연차 쓰고 싶은 날에 연차 계획을 체크해놨다는 이유”로 심한 모욕을 당했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다 연차 못 가는데 혼자 다 쓰냐며 비꼬”거나, “(작은 회사라)인원이 없어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는 이유로 휴가 사용을 제한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직장갑질119에 들어 온 제보 중 휴가와 관련된 것은 229건 이었고, 그 가운데
연차 휴가를 제한 당한 경우가 96건(41.9%)으로 가장 많았다.
박성우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노무사(직장갑질119)는 “휴가 사용은 노동사건(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노동청에 신고해 근로 감독이 이뤄진다고 해도 사용자에게 시정 기간을 주고 그 기간에 연차 수당만 주면 해결돼 법 위반이 만연하다”며 “정부 개편방안은 주 40시간 노동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한다는 신호를 노동 현장에 주고 있어 오히려 법에 보장된 휴가권이 현실에서 더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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