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되는 ‘절규’ 포항지역 건설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이 종료된 21일 새벽 이지경 포항건설노조위원장(앞줄 가운데) 등 노조집행부가 경찰에 체포돼 이송되고 있다. 포항/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노조, 절박한 요구 묻힌 채 조직와해 몰려
포스코, 노무관리 뒷면 노사관계 실패 부담
정부, 사회적 합의 마련 못하고 뒷북 진압
포스코, 노무관리 뒷면 노사관계 실패 부담
정부, 사회적 합의 마련 못하고 뒷북 진압
포스코 점거농성 뭘 남겼나
노사정 누구도 승자는 아니었다. 포스코 사태가 21일 새벽 농성 건설노동자들의 자진해산으로 일단락됐다. 표면상으로는 노조의 ‘백기투항’이다. 그러나 패자는 분명한데, 승자의 미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9일간의 농성은 노사정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과제만을 남겼다. 구조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유사한 사태는 언제 어디서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크다.
노조에겐 어느 쪽보다 커다란 후유증이 예상된다. 당장 경찰은 이지경 위원장 등 포항건설노조 집행부 대부분을 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했던 포항건설노조의 조직기반이 와해될 위기에 내몰린 셈이다.
불법 점거농성에 대한 사회적 질타 속에 노조가 제기했던 절박한 현안들은 소리없이 묻혔다. 건설노동자들의 삶을 옥죄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투쟁방식에 대한 역공세에 밀려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돼 버렸다. 상급단체인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과 민주노총도 산별시대로 노사관계의 전환을 앞둔 시기에 과격·불법투쟁의 이미지가 또 한번 덧씌워지는 상처를 입었다. 건설산업노조연맹 관계자는 “아직 평가는 이르지만, 패배라면 패배”라고 했다.
사쪽인 포스코도 승자라고 하기 어렵다. 본사 업무 마비와 파이넥스 시설 공사 중단 등으로 입은 물적 피해뿐이 아니다.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하청업체와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엄청난 손실이다. ‘유령노조’ 비난을 사면서까지 사내 노무관리에는 ‘성공’해 왔지만, 결국 하도급 노동자들의 ‘사용자성 인정’ 요구에 직면하며, 예기치 못한 노사관계의 ‘부담’도 짊어지게 됐다.
‘인적 피해 없는 진압’에 성공한 겉모습과 달리 정부 또한 더 큰 과제와 부담을 안게 됐다. 처음부터 노조의 포스코 본사 진입을 막지 못한데다, 조기 수습에도 실패했다. 무엇보다 다단계 하도급과 발주·원청사의 사용자성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미리 마련하지 못해, 이번 사태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길오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동계의 숱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수방관했다”며 “정부는 건설 시장의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건설 하도급 관련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를 움직일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협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20일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 등의 문제에 대해 특별팀을 구성해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건교부와 협의할 구조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건교부는 이번 사태 내내 하도급 제도 개선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노동부 관계자는 “관계부처들의 협의구조를 총리실 산하에 마련해 주무부처가 결정에 구속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한 제도적 틀 마련을 위한 정부의 실천이야말로 상처를 딛고 노사정의 상생으로 다가가는 첫걸음이 될 것임을 말해준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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