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1공장에서 파업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홍세화의 세상 속으로] ‘한-미 FTA 저지’ 현대자동차 차업현장 르포
현대자동차를 찾은 28일, 울산의 날씨는 무더웠고 사람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마치 금속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파업 투쟁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파업이 시작된 오후 1시, 현대자동차의 주 생산라인은 멈췄고 노동자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일부 작업장에서 노사간 언쟁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현대차의 이날 상황은 파업투쟁이라기보다 집단 조기퇴근 투쟁으로 비쳤다. 컨베이어시스템의 구조상 30% 이상 작업인원이 손을 놓으면 라인은 돌아갈 수 없다. 비정규직이 파업에 동참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배경이다.
엄단, 무관용 원칙을 표명한 노동·법무·산자부 장관, 파업 반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쏟아낸 주류 신문들과 경제지들, 전경련 등 사용자 단체들, 그리고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라는 지역단체까지 …, 그것을 뚫고 감행한 파업이라고 하기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 조합원이 불만스럽게 말하듯이,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 동력과 조합원들의 자발성을 높이지 못한 점은 분명해 보였다.
왜 금속노조가 파업을 벌여야 하나?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최대 수혜자라는 자동차 산업의 노조가 왜 반대 투쟁에 나서는가? 이상욱 현대차 노조 지부장(45)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득실 계산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왜 우리가 파업하는가?”에 관해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은 채 조건반사식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면서 주류 언론에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당부했다. 그는 자동차에서도 미국에 관세와 비관세 부문을 양보한데다 현대차는 연간 30만대에 이르는 미국 수출 차량을 2년 뒤부터 미국내 생산으로 돌릴 거라면서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로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추가협상을 이번주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추가협상을 타결하고 이를 협정에 반영하여 이달 30일에 서명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통상 정책 관련 7개 분야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일 태세다. 이처럼 미국의 의지와 일정을 따를 뿐, 정작 국민에게는 ‘묻지마 식’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에 비해, 이를 견제할 정치세력이 너무 약한 게 우리 현실이다. 정치권과 국회의원 대부분의 관심은 오로지 대선과 내년 총선에 가 있고, 대학생들은 탈정치화 현실 속에서 농민을 제외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산별로 전환한 금속노조로선 7월 중앙교섭쟁취투쟁의 서막이라는 점과 맞물려 있지만, 오늘 한국사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전선의 전면에 서도록 요구받은 측면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산별 금속노조나 광산노조, 또는 공공노조가 사회 진보에 선도적 역할을 한 유럽의 경우를 떠올려 보지만, 관건은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동력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의식이다. 이상욱 지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교육 등 조합원 교육이 착실히 진행돼 왔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비해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을 갖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노동자로서 단결의식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현대차의 경우 일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과 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이 스스로 말해준다.
26일 오후에 경기도 안성에 있는 두원정공의 조합원들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07년 투쟁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두원정공에는 600여명 중 530명이 조합원인데, 이기만(42) 노조 지회장은 원하청간 불공정 거래와 단가 후려치기를 막을 수 있는 역할을 산별 금속노조에 기대한다고 말한다. 사측의 비정규 압박을 노조와 함께 투쟁으로 막아냈고 평택 미군기지 투쟁에도 참여했다는 그는 공권력과 언론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해 답답증을 토로했다. “상황에 비해 노동자의식이 따르지 못하니 양보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조끼에 적힌 ‘단결’과 ‘투쟁’을 되뇌었다.
울산/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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