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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복직싸움 그만” 가족호소에 “그럼 죽으란거냐” 통곡

등록 2011-10-11 21:00수정 2011-10-1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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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게 뭐냐 물으니
해고자 71명중 59명 “생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임용현(32)씨 가족 5명은 울산의 방 2개짜리 24평 아파트에 산다. 어머니(60)와 조카(4)가 한 방을, 용현씨와 형(34)이 다른 방을 쓰고, 동생(31)은 거실에 조그만 미닫이방을 만들어 쓴다. 3형제 모두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제대한 뒤 2001년 2월~2002년 4월 줄줄이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지금은 동생만 근무하고 있다.

노조 대의원이었던 형은 2007년 해고됐다. 폐업한 업체를 이어받은 업체가 당시까지의 근속년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해 이에 항의하다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1년여 동안 천막농성을 벌인 뒤 노조 활동을 이어가다 2008년 아내와 이혼했다. 올 3월부터는 한 아파트 시설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달에 160만원가량을 번다. 용현씨는 정규직 전환 요구 파업투쟁을 벌이다 지난 2월 해고됐다. 매일 아침 동료 해고자들과 함께 출근투쟁을 벌이는 등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같이 파업에 동참했던 동생은 노조 탈퇴를 끝내 거부해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고 6월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동생의 평균 월급은 190만원가량. 형과 동생의 수입으로 다섯 식구가 생활한다. 동생은 3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올해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정직과 가족 생활비 부담 등으로 늦췄다. 내년에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들의 오늘은 생계불안, 가정불화, 전망의 불확실함 등으로 팍팍하기만 하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들의 오늘은 생계불안, 가정불화, 전망의 불확실함 등으로 팍팍하기만 하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4일로 실업급여마저 끊긴 용현씨는 현재 수입이 없다. 용현씨는 “가장 힘든 건 돈 문제”라며 “모아둔 돈은 5월까지 다 쓰고 그 동안은 실업급여로 생활했는데 이제부터는 막막해 주말에 건설현장 노가다라도 뛰려고 생각중”이라고 했다.

해고자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부분은 역시 생계 문제다. 설문 응답자 71명 가운데 해고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꼽아달라는 질문(복수 응답)에 ‘생계의 어려움’을 든 이가 59명(83.1%)에 이르렀다. 한 해고자(47)는 “아내가 무릎이 원래 좋지 않은데 5월부터 용역을 통해 회사 식당에 들어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한달에 45만원을 받는다. 무릎이 너무 아프면 가끔 병원에 가고 하는데, 겉으로 내색은 않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성민(40)씨는 “아내가 작은 기업 생산직으로 일해왔는데 해고 이후 잔업이고 특근이고 닥치는 대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 2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은 해고자(32)는 경기 광명에 사는 아내와 따로 지내고 있다. 처가 형편 때문에 간호사인 아내가 부모를 부양하고 있었는데, 애초 올 5월에는 아내가 울산으로 와 같이 살기로 했다가 해고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신혼살림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혼자 버는 이들은 실업급여마저 끝났거나 다음달로 끝날 예정이어서 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해고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나 혼자 생계를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들면 어떡하냐”는 한 해고자(31)의 말처럼 대다수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과 복직투쟁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밤이나 주말을 이용해 대리운전이나 건설현장 일용직, 주유소·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 생각이라는 이들이 많았다.

해고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체적 건강도 나빠졌지만 정신건강이 더 많이 악화됐다. 해고 뒤 우울증 등 정신적 변화를 묻는 질문에 “심각하게”(35명)와 “조금”(29명)을 포함해 모두 90.1%(64명)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심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이들 말고도 스트레스로 탈모나 급속한 비만 증세가 생긴 경우도 있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정신건강도 악화돼, 아내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경우가 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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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인척과의 갈등도 심해졌다. 한 해고자(31)는 “아내가 ‘당신이 앞에 나서지 않았으면 괜찮을텐데 왜 가족까지 힘들게 하냐’고 해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해고 뒤 이혼한 이(32)가 한 명, 별거중인 이가 4명이었다. “혼자 베란다에 서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해고자(31)는 해고 뒤, 3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해고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자친구가 자꾸 짜증을 내고, 전화로 ‘언제 복직할 거냐’고 묻는 등 헤어지기를 바라서”라고 했다. 아내가 석달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다른 해고자(38)는 “제가 8남매의 막내인데, 누나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전화해 ‘네 와이프가 이 상태인데 계속 그럴거냐’고 박박 긁어 놓죠, 며칠 전에는 ‘내가 그럼 죽어야 하냐’며 엉엉 울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은 8개월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복직 전망에 대해 45명(63.4%)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될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될 것”이라는 응답은 7명(9.9%)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4분의 1가량은 “쉽지 않을 것”(8명)이라거나 “불가능할 것”(1명), “모르겠다”(6명)고 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4명). 이진환(32)씨는 “상황이 답보상태에 있다보니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해고자끼리 모여서 맨날 같은 얘기만 하니 많이 힘들다”며 한숨쉬었다.


김인현 선임기자 inhyeon@hani.co.kr

이상원 인턴기자(경북대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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