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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20살 민주노총, 비정규직들의 우산 되어줘야”

등록 2015-11-10 19:32수정 2015-11-11 10:3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창립 20돌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 민주노총 사무실의 한상균 위원장실 방 한편에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사진이 놓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창립 20돌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 민주노총 사무실의 한상균 위원장실 방 한편에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사진이 놓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초등학생 두 딸의 아빠인 진제환(41)씨는 10일 전북 군산 한국지엠(GM) 공장 앞에 차려진 해고자 농성장에서 아침을 맞았다. 2010년 12월부터 이곳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해 수출차량 포장 일을 하던 그는 4년7개월 만인 지난 7월 해고됐다. 원청인 지엠대우는 자동차 판매 물량이 줄자 사내하청업체부터 정리했다. 지난해 5월 이후 12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진씨처럼 일자리를 잃었다. 진씨는 원직 복직과 불법파견 인정을 요구하는 다른 8명의 해고자와 함께 135일째 농성을 이어갔다. 이날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창립 20돌(11월11일) 하루 전날이다.

비정규직 문제 사회·정치 의제화
12만 비정규직 ‘조직화’ 성과에도
임금·노동 차별 해결능력 떨어져

비정규직 끌어안기·사회세력 연대
제2의 민주노조 운동 적극 나설때

진씨는 해고가 잇따르던 지난 4월 가까스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한 뒤 원청 정규직을 향해 “같이 살자”며 손을 내밀었다. 정규직 노조가 함께 싸우거나 ‘일자리 나누기’까지 나아가진 못해도, 적어도 공장 안에 펼침막이라도 걸어 비정규직지회를 도와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건 묵인, 더 나아가 방조였다.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대량해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교대제 변경을 회사와 합의해준 것이다. 진씨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해온 사내하청 동료들을 회사가 내보내는 걸 지켜보기만 한 정규직한테 많이 서운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한국지엠 사태를 정규직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외면한 상징적 사건으로 본다. 지난 10월 집행부가 바뀐 한국지엠 정규직노조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의 나영선 교육선전실장은 “노동자한테 전가된 회사의 위기를 다시 비정규직한테 전가했다는 측면에서 ‘정규직이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은 옳다고 본다”며 “지금처럼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에어백’처럼 쓰면서 일방적으로 고통을 강요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노조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이남신 소장은 “정규직 노조가 힘이 있을 때 사내하청과 연대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닥칠 때 고립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단결해야 한다”고 짚었다.

‘비정규직’은 본래 민주노총의 언어다. 1995년 창립돼 20년 동안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민주노총은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문제를 한국 사회의 큰 의제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25억원의 전략조직기금을 모아 2006년부터 비정규직을 노조로 조직하는 데 썼고 올해부턴 사업비의 30%를 고정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학교와 공공부문 등에서 12만2000여명의 비정규직을 노조로 조직화해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 20년의 최대 성과로 “비정규직과 사내도급을 사회·정치문제화한 것”을 꼽았다.


민주노총, ‘두번째 스무살’ 청년 합류에 달렸다

앞으로 10년간 25만명 조합원 퇴직
청년가입률 줄어 유지 어려울수도

노사정위 참여 않고 교섭전술 없고
총파업 등에 현장반응도 미지근
“교섭·투쟁 병행하는 운동 벌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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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별이 벌어지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민주노총에 대한 안팎의 평가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일 때 사내하청 노동자는 50, 1차 협력사 사내하청은 30, 2차 협력사 사내하청은 22 수준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같은 단순한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87년 이후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기업규모별, 노동형태별로 격차 심화와 분절화가 일어났는데 민주노총이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민주노총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확보하지 못해 노동 양극화, 사회 양극화 확대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민주노조운동 전략위원회가 지난 8월 지역본부, 산별노조 간부 463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부들은 민주노총의 지향 과제 가운데 실제 실현 정도를 묻는 질문에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꼴찌로 꼽았다.

비정규직과 함께 대표적 ‘노동약자’로 꼽히는 청년층을 껴안는 데도 미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최근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주도하면서 노동시간 단축 같은 정공법을 외면한 채 임금피크제 도입, 일반해고 요건 완화 같은 꼼수를 청년고용 해법이라고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만의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청년조합원은 늙어버린 노조운동의 지속성을 결정지을 에너지”라며 “청년을 운동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2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의 깊은 고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앞으로 10년간 25만명가량의 조합원이 퇴직할 것으로 추정하는데, 청년 노조가입률 역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올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시도에 맞서 지난 4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총파업을 벌였지만 노동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민주노총 상근자조차 “총파업이 서울 민주노총 사무실에서만 얘기된다. 조합원은 총파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했지만, 정부·재계를 상대로 교섭을 하려는 다른 전략도 없다 보니 진보진영 안에서조차 미약한 존재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9월 열린 민주노총 창립 2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민주노총은 투쟁전술은 있지만 교섭전술은 사실상 없다”며 “한국 노동시장의 모순에 대해 민주노총보다 오히려 정부와 기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자신들 입장의 대안을 제출하고 있다는 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조합 운동은 기본적으로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제대로 된 사회적 교섭기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20살 성년을 맞은 민주노총 앞에는 축하 꽃다발보다 무거운 숙제가 놓여 있다. 출범 때 민주노총 운동의 양날개였던 ‘산별노조 조직’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을 이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일단 멈춰진 상태다. 노동자 단결을 위해 기업노조 체계를 해체하고 산업별로 단일한 노조를 만드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안으로는 노조 울타리 밖에서 비 맞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를 노조의 우산 밑으로 끌어들이고, 밖으로는 다른 사회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제2의 민주노조’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스무살 민주노총이 받아안은 숙제다.

전종휘 노현웅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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