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본소득 조항의 헌법 삽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높은 실업률과 고용불안, 소득격차.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세계 각 나라의 공통된 고민이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케냐 등은 ‘기본소득’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이들 나라가 시도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기본소득 실험은 이제 겨우 관련 논의의 싹을 틔우는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빈곤 문제로 매년 322억~383억캐나다달러를 쓰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지난해부터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18~65살 빈곤층 주민 4천명에게 3년간 무조건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22만원)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또 온타리오는 이 금액만큼 소득이 생겨도 소득세를 물리지 않는 ‘부의 소득세’를 여기에 접목했다. 복지제도의 낙인효과를 없애면서 노동 유인을 줄이지 않으려는 취지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주도 지난해 5월부터 기본 생계비보다 낮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있는 600~900명을 대상으로 2년 동안 매달 현금으로 개인 또는 부부에게 지급한다. 조건 없이 960유로(약 115만원)를 받는 집단,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받는 집단, 지방정부에서 정한 활동을 하면 추가 기본소득을 받는 집단 등 6가지 모델을 구성한 것이 눈에 띈다.
모든 국민한테 일정 금액의 현금을 무조건 지급하는 ‘완전 기본소득’에 좀더 가까운 형태의 실험도 있다. 케냐에서 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가 진행하는 기본소득 프로젝트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부터 케냐 200개 마을의 18살 이상 주민 2만7천여명에게 월평균 생활비인 2250케냐실링(약 2만5천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급 기간과 지급 방식을 3가지 시나리오(12년 동안 매달 지급, 2년 동안 매달 지급, 2년치를 일시불로 지급)로 나눠 대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하고 있다.
한국은 기본소득 실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적이 아직 없다. 다만 부분적 기본소득에 대한 시도와 논의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꺼내든 청년층 대상 기본소득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를 이어받아 노인기초연금 30만원, 아동·청년수당 도입 등 기본소득의 방향성을 지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아동수당은 문 대통령 공약대로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가구에 지급하도록 추진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소득 하위 90%로 대상이 좁아졌다. 이는 지난 1월 소득 상위 10%를 걸러내는 데 최대 연 1150억원의 행정비용이 필요하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잠정 집계치가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나이가 아니라 직업에 따른 부분적 기본소득도 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주장하는 ‘농가 기본소득’이다. 김 전 장관은 농가에 지급되는 각종 직불금은 지원 규모가 낮고 상황에 따라 한시적이어서 농민이 최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모든 농가에 약 5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시행하자고 주장해왔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연령·지역·직군 등 한정된 인구 집단 대상의 기본소득 실험이라도 대상자의 의식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했던 성남의 기본소득 실험은 소위 ‘복지의 반대자’로 알려진 소상공인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런 실험은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