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비친 갑을병 사회]
(중) 알바들이 말하는 노동 현실
(중) 알바들이 말하는 노동 현실
19일 오후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손님들을 응대하며 계산하다가 잠시 손님이 없을때 편의점 진열대를 살피며 수량 등을 체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물류입고·정리·청소·계산…
편의점 모든 일 알바 혼자 하는데
최저임금도 아깝다고 하니 억울 법정수당 법대로 주는 곳 드물어
스무 걸음만 가면 딴 편의점 수두룩
답답한 사장 마음 이해도 되지만…
쉬운 일도 ‘삶을 위한 임금’ 보장을 18일 <한겨레>가 만난 많은 편의점 노동자는 이런 인식에 적잖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계산만 하고 편의점을 떠나는 손님한테는 보이지 않는 일이 많다. 단순하되,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이 편의점 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서울 한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취업준비생 이아무개(25)씨는 “나도 일하기 전에는 편의점 일이 쉽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편의점 노동은 최저임금도 아까운 쉬운 일’이라는 인식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해도 해도 끝없지만 티 안 나는 편의점 일 편의점 노동자의 주된 업무는 진열대 정리와 청결 유지, 그리고 정확한 계산이다. 손님이 만지작거린 뒤 다시 내려놓은 음료수의 이름이 항상 정면을 바라보도록 틈틈이 냉장고를 점검해야 하고, 단골 초등학생 손님이 바닥에 흘리거나 남기고 간 라면 국물도 닦고 버려야 한다. 간단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여야 편의점은 우리가 아는 말끔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살림’과 비슷하다. 대다수 편의점 노동자가 꼽는 가장 힘든 일은 ‘물류 입고’다. 캔 음료수, 소주, 생수병처럼 무거운 상품을 몇 상자씩 들어 옮기고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어 수량을 확인한다. 편의점에서는 대개 혼자 일할 때가 많다. 물건을 정리하다가도 손님이 부르면 계산대로 뛰어가야 한다. 튀김이나 어묵 등 즉석 조리식품을 판매하는 편의점에서는 식품 준비도 모두 노동자의 몫이다. 이씨는 “편의점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은 노동자의 몫인데, ‘최저임금도 많다’고 하니 씁쓸하다. 사장님이 24시간 나와서 일할 수 없고 당장은 로봇이 일을 할 수도 없으니까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쓰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편의점주든 손님이든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한테, 편돌이와 편순이라는 표현이 달가울 리 없다. ■ ‘그림의 떡’ 야간수당…사장 처지도 이해돼 편의점 노동 가운데서도 손님이 많지 않은 심야 시간대 근무는 특히 쉬운 일, 곧 ‘꿀알바’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경험한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경기 김포의 한 편의점에서 주말(토·일요일)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하는 안지완(26)씨는 “야간 근무를 하는 주말부터 주초까지는 공중에 붕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평일 야간 근무자가 일을 나오지 못해 ‘대타’까지 선 탓에 5일 연속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른 아침 퇴근한 뒤 정신없이 자다 보면 안씨의 일상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된다. 근로기준법에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사이에 일하면 통상임금의 50%를 야간근로수당으로 지급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안씨한테는 ‘그림의 떡’이다. 시급도 마찬가지다. 채용 당시 사장은 안씨한테 ‘석달 전까지는 수습’이라고 통보했다. 안씨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시급 6780원을 받게 된 이유다. 최저임금법에서는 ‘1년 이상의 기간’으로 근로계약서를 쓴 경우만 3개월 수습기간을 두고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은 안씨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도 안씨는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해달라”는 사장의 말에 주휴수당을 포함한 ‘체불임금 월 42만원’을 포기했다. 그는 “사장의 처지도 이해가 된다. 가맹본사에 내는 로열티와 임대료가 장난 아니더라. 나중에 일 그만둘 때 신고해서 못 받은 돈을 받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동네 사람이기도 하고 신고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편의점 노동자의 ‘갑’, 어쩌면 한국 사회의 또다른 ‘을’인 편의점주가 처한 현실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들도 안다. 경기 평택의 한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간당 6300원을 받으며 주말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 오정애(27)씨는 “최저임금을 받고 싶긴 하지만 사장의 처지에서 내가 일하는 시간대 매출을 보면 나라도 답답할 것”이라고 했다. 오씨는 “손님이 없다고 아르바이트가 편한 건 아니다. 시간도 안 가고 괜히 ‘내가 못해서 손님이 안 오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내가 호객을 해서 손님을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 아무리 편한 일도 ‘삶을 위한 임금’ 보장해야 최저임금 혹은 그 이하의 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이들한테도 노동에 대한 대가는 소중하다. 오씨는 “최저임금이 최근 많이 올라서 사장님이 힘든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부담이 계속 아래로 내려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몫이 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편의점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 많은 점주를 무한경쟁으로 내몬 책임을 편의점 노동자한테 묻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지난 12일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하면서 소상공인 사업장에선 노사 자율합의로 임금을 결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이에 대해 “법적으로 7530원을 주라고 정해둔 지금도 많은 편의점 노동자가 그보다 못한 임금을 받는다. 일할 때는 ‘네네 알겠습니다’ 하다가 나중에 그만둘 때에야 신고하는 처지인데 동등한 합의가 되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말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한 편의점에서 9개월 동안 일했던 정우재(20)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정씨는 “노동조합이 있다면 모를까, 언제든 잘릴 수 있는 편의점 알바 노동자는 동등하게 협상할 힘이 없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을 결정한다면 노동자는 백전백패다. 아마 지금보다 더 열악한 임금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감시단속직 등 노동 강도가 낮다고 판단되는 일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감액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상 최저임금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문제가 생긴다”며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최저임금의 취지”라고 짚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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