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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뒤바뀐 ‘삶의 무대’…집기 팔고 알바해도 석달에 고작 40만원

등록 2020-04-29 05:00수정 2020-05-10 18:43

[‘코로나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
②특수고용 노동자·프리랜서

공연도 관객도 모두 끊긴 대학로
배우도 연출자도 ‘코로나 보릿고개’
집기 중고로 팔고 갖은 알바 뛰어도
석달 수입 ‘40만원’ 소규모 극단 등
경력증빙 어려워 정부 지원서 사각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드림시어터 극장 관객석에 1미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붙인 엑스표시가 붙어 있다. 120석 극장에는 60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드림시어터 극장 관객석에 1미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붙인 엑스표시가 붙어 있다. 120석 극장에는 60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연극배우 겸 연출가 강제권(46)씨는 지난 2월2일 연극 <눈 오는 봄날>을 마지막으로 석 달 가까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2~3월 출연이 예정됐던 대학로 공연이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 극본, 연출을 다 하다 보니 대학로에서도 바쁘게 사는 편이었는데, 코로나19로 하루아침에 일이 뚝 끊겼다”며 “2월부터 지금껏 번 돈을 모두 합쳐도 40만원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착잡함과 힘든 상황에서 애써 힘을 내려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그가 석 달간 40만원의 ‘수입’을 거둔 방법은 이랬다. 온라인 중고거래 앱(당근마켓)에 안 쓰는 컴퓨터와 의자 등을 내놓아 팔았고, 사무실을 정리하는 ‘아는 형’을 도와 사례비를 받거나, 작가협회에서 간간이 일당 받는 일을 했다. 한 잡지사의 요청으로 기고 글도 썼지만, 아직 원고료를 받진 못했다. 강씨는 “메르스 때는 물론이고 온갖 위기 상황을 겪어봤지만 요즘이 가장 힘든 것 같다”고 했다. 대안이 없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공연도 할 수 없고, 다른 일자리 역시 구하기 어려워서다. 그는 “예술인들이 무언가 준비하거나 대응할 방법을 찾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답답해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도 강씨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지난해 한 달에 많게는 13차례 나갔던 ‘학교로 찾아가는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탓이다. 월 고정 지출 100만원 가운데 식대 부담이 크다는 그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면 점심이라도 (무상급식으로) 해결될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저축해둔 돈으로 석달을 버텼지만, 통장 잔고가 “이젠 거의 바닥을 보인다”는 강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하반기 공연 재개 여부도 불투명한 탓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문화예술 공연장에 ‘관객과 객석 및 무대 간 2m 거리두기’를 포함한 감염예방수칙 공문을 보냈다. 100~200석 안팎의 소극장이 대부분인 대학로에서 관객 간 2m 거리두기를 하려면 회당 40~50명의 관객만 받을 수 있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운영난에 빠진 소극장 편에선 공연을 올리는 게 외려 손해일 수 있다. 강씨는 “대리운전이나 건설 일용직 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연극배우 김윤태(49)씨도 지난 1월19일 대학로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가 끝난 뒤 무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공연 다음날, 국내에선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대신 김씨는 3월부터 자신의 자가용을 활용해 시간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연극계 사람들이 준비하던 모든 게 코로나19로 일제히 무너져버렸다는 점에서 절망감이 크다”며 “이 상황이 언제 다시 회복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최근 정부가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프리랜서 등에게도 석 달간 최대 월 50만원씩 주는 지원책을 내놓은 바 있지만, 연극배우들은 ‘경력증빙’을 우려했다.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식구’ 개념이 강한 연극계에선 극단과 소속 배우들이 계약서를 쓰는 게 보편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씨는 “극단 소속이라고 해도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배우들은 증빙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봄철 음악 페스티벌이 사라진 음악인들도 소득 급감은 물론이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혼성 듀오 ‘여유와 설빈’의 멤버 여유(본명 황동규·27)씨는 코로나19로 공연 섭외가 줄면서 월평균 소득이 이전보다 70% 줄었다. 지난해는 1~5월 사이 20차례 서울 홍대 앞 등에서 공연을 했지만, 올해 공연은 4월까지 5번에 그친 것은 물론, 다음달 스케줄도 없다. 그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동료들 중 상당수가 우울감 등에 빠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솔가 뮤지션유니온 위원장은 “예술계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2011년 생활고로 숨지고 이듬해 ‘예술인 복지법’(일명 최고은법)이 제정돼 여러 지원금 제도가 마련됐지만, 대부분 190시간의 활동 기획서를 제출하거나 아이디어 공모 등을 지원해야만 받을 수 있는 돈”이라며 “안 그래도 불안정한 예술인들의 삶이 코로나19로 더 불안이 증폭된 만큼 기존 지원 제도의 문턱을 대폭 낮추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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