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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육배달차 모는 화가 강기사

등록 2006-07-11 16:58수정 2006-07-12 14:59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강 기사님요! 인자는 정육점 채리도 문제가 없겠심더. 진짜로 실력이 마이 좋아짔심더.”

육부 정 기사가 너스레를 떨자 강 기사가 쑥스럽게 웃습니다. 강 기사는 지금 정 기사에게 돼지갈비 포 뜨는 방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얼굴이 희여멀건한 강 기사가 미덥지 못했습니다. 생전 험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듯한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지요. 남자 손이 여자 손처럼 고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강 기사는 열심히 일하겠다고 간곡하게 일자리를 부탁했습니다. 운전이 자신 있다고 하기에 배송기사 일을 맡겼습니다. 한 며칠 일하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배송기사 일, 육부 기사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때로는 일손이 딸리면 돼지갈비 포를 뜬다거나, 육절기로 돈육을 부위별로 잘라서 포장을 해야 하는 일도 배송기사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노릇일까요? 그가 체인점을 방문할 때마다 강 기사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김 사장, 이번에 온 강 기사 말이야.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다른 기사들은 고기 배송만 하고 후딱 가버리곤 하는데 강 기사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진국이야 진국!”

“그래?”

“아줌마들이 바빠서 쩔쩔 매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 후딱 상을 치워준다거나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 아줌마들 설거지도 도와주고 가기도 하더군. 아줌마들이 강 기사가 오면 준다고 박카스 한 병씩 따로 챙겨놓는 것 모르지?”


체인 식당 사장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들르는 체인 식당들마다 강 기사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한날, 자가용이 고장 나는 바람에 그는 강 기사가 운전하는 냉동탑차에 탔습니다. 전부터 강 기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강 기사님! 한 가지 물어봅시다. 배송 일 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요?”

“이거, 말씀드리기 쑥스러운데…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니, 지금도 퇴근하고 나면 붓을 들곤 합니다.”

그는 놀라서 강 기사를 쳐다봅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강 기사의 손등에는 상처가 나 있습니다. 얼마 전 돼지갈비 포를 뜨다 칼에 베인 상처입니다.

“그림에 빠져있는 동안 아이 분유 값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원비가 없어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소리 죽여 우는 아내를 보니 꼭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식구들 안 굶기고 좋아하는 일도 할 수 있으니,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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