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준 기자
23일 저녁 7시께, 서울 종로구 수송동 14층 국세청장 집무실 앞. 오후 5시쯤부터 전군표 국세청장을 기다렸다. <월간중앙>에 나온 전 청장의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월간중앙>은 이날 낮 배포된 3월호에서 “전 청장이 ‘언론사가 기자를 동원해 국세청의 동향을 취재하고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으며, 심지어 국세청장 뒷조사까지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전 청장이 비서관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 청장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기자는 전 청장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뒷조사를 한 언론사가 어디인지?” “뒷조사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전 청장은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기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 앞에 대기해 있던 검은색 승용차로 향하는 전 청장을 따라가면서 계속 질문을 했다. 현직 국세청장이 세무조사 때문에 보복성 취재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반드시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전 청장에게 “정부의 공권력에 언론사가 대항한다고 보는가?”라고 물었다. 전 청장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천장을 쳐다본 뒤, “국정원·경찰·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이 다 망했잖아요. 정부의 공권력이 먹혀들지 않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 말을 취재수첩에 옮기자, 전 청장은 “그런 것 왜 적어요. 적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24일치 신문에 전 청장과의 일문일답을 보도했다. 그러자 국세청은 25일 “전 청장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내고 한겨레신문사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전 청장이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이고 싶어 하는 연유는 미뤄 짐작이 간다. 하지만 한 국가기관의 장이라면 자신의 발언에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옳지 않을까? 공인으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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