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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은둔 수행 ‘맑은 삶’…유신·대운하 질타 ‘곧은 삶’

등록 2010-03-12 08:30수정 2010-03-12 14:20

11일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법정 스님의 분향소에 쓰일 영정이 도착하자 그 앞에 선 신도들이 울먹이며 합장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11일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법정 스님의 분향소에 쓰일 영정이 도착하자 그 앞에 선 신도들이 울먹이며 합장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관심없다” 말에 감명…요정주인, 길상사터 기부
함석헌, 문익환과 민주화운동…대장경 번역도
법정 스님은 대중에게 ‘한국 불교의 얼굴’이었다. 대중은 법정 스님의 글을 통해 피안의 절집 안을 들여다보았고, 은둔 수행자들의 삶을 엿보았다. 세속적 욕망과 경쟁의 용광로 속에 담긴 대중은 무소유를 지향하고, 정갈하고 고적한 느낌의 글을 통해 불교의 정신세계와 교유했다.

법정 스님은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간 전남 순천 송광사 뒤 불일암에서 머물렀고, 1993년부터는 강원도 산골의 해발 800m 산지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은둔의 고요 속에서 길러낸 맑은 글들을 썼다.

대중에게 그는 ‘맑고 향기로움’을 간직한 무소유의 수행자로 비쳤다. 서울 성북동의 요정 주인 김영한씨가 1996년 1000억원대에 이르는 땅 7000여평(현재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불교에 문외한이었던 김씨는 기부 대상자 물색을 위해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났는데, “나는 생각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법정 스님에게 감명을 받아 기부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무소유의 삶 때문에 그는 2004년 한국리더십센터 설문조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제치고 ‘가장 신뢰받는 종교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이 무소유적 은둔의 삶만을 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현실 참여자였다. 그는 1970년대 초 서울 삼성동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며 함석헌 선생,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적극 힘을 보탰다.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을 맡는가 하면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크리스찬아카데미에 자주 참석했다. 당시 모임의 뒷바라지를 맡았던 김문환 서울대 미학과 교수가 출간한 시문집엔 1974년 1월11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심경을 쓴 그의 글이 실려 있다.


‘세월이 나를 못 가게 합니다. 요즘 거의 연금 상태입니다. 4~5인의 사복이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기랄~. 내가 무슨 솔제니친이라고.’

당시 종교계 인사들의 시국 모임에선 이런 일화도 있었다. 다른 종교의 한 교수가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인과 한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자 법정 스님은 자신의 승복을 가리키며 ‘이 옷이 민주화를 논의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이 옷을 벗고 참여하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젊은이 8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데 충격을 받고,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이겨내기 위해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가 다시 수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산골 암자에 거처하면서도 1993년부터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펼치며 승가와 불자들의 청정한 삶을 이끌었다. 2008년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구상을 질타하는 발언으로 다시 사회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대장경 번역에 참여하는 등 한국 불교의 내실을 다지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 초 송광사 수련원장으로서 현재의 템플스테이 원조 격인 수행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또 도반과 함께 영화 <7일간의 사랑>을 보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도 하는 등 세심한 감성을 간직한 예술가적 인간이었다.

사부대중과 교유하면서도 그는 늘 성찰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의 성찰적 자세는 2008년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남긴 법문의 한 구절에 잘 드러나 있다. “돌이켜 보니 한 일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중 도둑질’을 하면서 너무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법정스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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