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의 고향인 그리스 최고봉 올림포스산.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 등 열두 신이 살고 있다는 산이다. 조현 기자
[조현의 그리스 종교기행] ② 올림포스산의 12신은 어디로 갔나
아테네에 이은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와 신약인 <데살로니가전서>를 쓴 그 도시다. 터미널 이름이 마케도니아역이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재위 기원전 336~323)라는 영웅을 배출한 도시국가다. 알렉산드로스는 300여개의 도시국가만이 있었던 그리스를 평정했고, 그의 사후 쇠락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146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1830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왕국이 출범하기 전 그리스라는 나라는 애초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리스 문명과 함께 지난 2천년 동안 지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히브리문명의 원조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 전 2천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마케도니아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올림포스산을 향해 달린다. 알렉산드로스가 올림포스 신들의 축복을 받기 위해 갔던 그 길이다.
전쟁영웅인 필리포스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을 떠난 부친 대신 16살 때부터 마케도니아를 통치했고, 20살에 왕위에 올랐다. 22살 때부터 동방 침략에 나서 10년이 채 안 되어 이집트와 페르시아, 인도까지 굴복시켰다.
그리스에 이렇게 설산이 많다니 놀랍다. 테살로니키에서 올림포스산까지 버스로 2시간 동안 앞과 양쪽 3면에 설산이 펼쳐져 있다. 동방원정의 종착점 북인도처럼 지천이 설산이다. 알렉산드로스보다 200여년 먼저 태어난 북인도의 싯다르타(기원전 563?~483?)도 왕자였다. 태어나자마자 싯다르타는 아시타선인으로부터 “전륜성왕(세계 대왕)이 되거나, 출가하면 부처가 될 것”이란 예언을 받았고,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신의 아들”로 점지됐다. 제우스는 신계의 제왕이므로 그의 아들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제우스의 아들답게 불과 20대에 고국 마케도니아의 이름을 세상에 드높였다. 그러나 29살에 출가한 싯다르타는 자신을 따르던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이 석가족들을 몰살하는 것을 더 말리지 못하고 나무 아래서 눈물만 훔친 무력한 왕자였다.
예수도 30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알렉산드로스처럼 33살에 불꽃 같은 인생을 마쳤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 구세주는 십자가 위에서 허무하게 죽었다. 놀라운 권능을 발휘해 로마의 압제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란 추종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제우스가 산다는 올림포스산이다. 산기슭의 게스트하우스에 막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자 곧바로 제우스로부터 전령이 왔다. 이리스(무지개) 여신이다. 일곱 색 찬란한 무지개가 하늘과 살로니키만의 바다를 잇는다. 그리스신화에서 이리스 여신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자다.
이리스 여신을 보내 초대한 제우스의 성의를 어찌 무시할 것인가. 트레킹철이 아니라 등산은 위험하다는 현지인들의 만류에도 올림포스산을 향한다. 올림포스산은 높이 2917미터로 그리스 최고봉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하늘에 가장 가까운 높은 산에 지은 황금궁전에 산다고 생각했다.
올림포스산도 지리산 성삼재 정도의 높이까지 차로가 있다. 1천미터 높이까지 택시로 30~40분가량 오르니 산장이다. 그곳부터는 걸어야 한다. 인적이 없다. 바위와 나무에 낀 이끼들만이 무성하다.
신화에선 올림포스엔 거대한 구름의 문이 있어서 사계절의 여신들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구름과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시야가 막히면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올림포스산은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생물권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이곳엔 170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늑대·곰·스라소니도 산다고 한다. 신들이 이런 야생동물들보다 덜 위험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계곡으로 물 마시러 온 곰이나 스라소니와 조우하고 싶지는 않다.
계곡 옆에 벼락 맞은 나무들이 유난히 많다. 벼락과 천둥은 제우스의 전용 무기다. 뭐 힘자랑할 때가 없어서, 나 같은 비폭력주의자에게 힘을 자랑할까마는, 반으로 댕강 부러진 나무들을 보니 섬뜩하다.
제우스가 지었다는 ‘황금궁전’
가는 길에 만난 구름과 안개, 눈
쉬이 인간의 접근 허락하지 않아
신화에선 축복의 땅이라 하지만
신전터 빗소리조차 민초들 신음인듯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그려진 제우스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황금 밧줄로 모든 신들이 자기 반대편에 서도 끌어당겨버릴 수 있고, 대지와 바다가 매달려도 당겨버릴 수 있다는 제우스다. 이런 제우스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버지를 죽이고 천하의 지배권을 손에 넣고, 자신을 넘볼 것 같으면 자식도 잡아먹어버리는 제우스다. 분노와 살육에 있어서 그 못지않은 <구약>의 야훼 신과 일합을 겨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30~40분 정도 오르니 눈이 쌓여 있다. 설산 등산 장비가 없어서 더 전진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뒤돌아서니 오를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남성성 넘치는 바위가 제우스인 양 서 있다. 몇 발짝 옆엔 가로로 쩍 갈라진 틈새가 있는 바위가 앉아 있다. 바람둥이 제우스를 감시하는 부인 헤라의 바위라고 할 만하다. 제우스는 수많은 여신과 인간에게 접근해 사랑을 탐한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들의 대부분은 제우스와 인간들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다. 제우스는 사랑을 취하는 데 능력을 아끼지 않는다. 레다에게는 백조로, 에우로페에겐 소로 변신해 접근한다. 알크메네에겐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그 남편으로 변장해 욕정을 불태운다. 올림포스 신들에게 죽이고 질투하고 바람을 피우고 강간하고 근친상간하고 동성애를 하는 것은 밥 먹는 것과 같은 일상사다. 미끄러운 이끼에 넘어지지 않고 산장까지 내려왔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산장 벽난로가 따뜻하다. 올림포스산의 유일한 집인 이 산장 안에도 신들의 흔적이 없다. 대신 놀랍게도 이곳조차 그리스정교회의 제단이 마련돼 있다. 제우스를 대신해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이 모셔져 있다. 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신화에서 올림포스산에서 신들이 사는 곳은 바람도 없고, 비도 눈도 내리지 않은 채 눈부신 햇살만 쏟아지는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날은 흐리다. 마침내 눈이 쏟아진다. 산장 창밖으로 함박눈이 축포처럼 쏟아진다. 녹색은 어디가고 하얀색뿐이다. 고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신들의 마음만큼이나 비위를 맞추기가 어렵다. 하산은 트레킹이다. 계곡 옆 급경사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엉겨붙은 눈 때문에 고어텍스 재킷조차 물먹은 하마처럼 부풀어 올랐다. 날은 어두워지고, 춥다. 불안이 엄습한다. 집도 옷도 갖추지 못했던 원시인의 심리 상태가 이럴까. 비로소 바위와 나무와 안개와 바람이 불안을 틈타 정령이 되고 신화가 된다. 6시간 동안 내려오니 밤이다. 젖은 채로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데, 북유럽에서 온 듯한 여성이 다가선다. ‘내일 올림포스산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꼴을 보고도 굳이 가겠다니 말릴 수 없어 마지못해 안내해준다. 아름다운 그 여성이 제우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를 빌면서. 다음날 아침 간 곳은 ‘고대 디온’이다. 올림포스신들을 모셨다는 고대 신전이다. 올림포스 설산에 둘러싸인 디온은 10만평도 더 되어 보이는 드넓은 공간에 펼쳐져 있다. 알렉산드로스와 군인들이 동방원정을 떠나기 전 기도하며 묵었다는 야영지에서 100미터 정도 가니 제우스 신전 터다. 빗속에 서 있는 표지엔 알렉산드로스가 소 100마리를 신들에게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소들의 주검 옆엔 도끼를 든 전사를 마주한 소가 서 있다. 처연하다. 때마침 내린 비가 신전의 우거진 잡초를 스친다. 그래서 영웅의 손에 죽어간 페르시아와 아시아의 무수한 민초들의 신음 같은 소리를 낸다. 이 소들이 바로 무력하게 죽어간 석가족과 이스라엘 백성과 순교자들이 아닌가. 아니다. 십자가를 앞세운 십자군의 칼에 쓰러진 중동의 희생양들이며, 선교사들을 앞세운 노예상들에게 끌려가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다. 일본불교 선승들의 기도로 황군의 깃발을 높이 든 일본군의 칼에 쓰러진 아시아의 민중들이다. 욕망의 올림포스신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우리들의 마을로,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왔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과 사진은 휴심정(wel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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