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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벼랑에 선 수도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가

등록 2012-06-27 20:27수정 2012-07-12 08:50

오른쪽 바위 위에 있는 수도원이 메테오라에서 가장 큰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이다. 메테오라/조현 기자
오른쪽 바위 위에 있는 수도원이 메테오라에서 가장 큰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이다. 메테오라/조현 기자
[조현의 그리스 종교기행] ③ 메테오라 6개의 ‘공중’ 수도원들
벗의 유골과 함께 사는 수도자들…죽음도 또다른 삶일 뿐
밧줄 없인 못 올랐다는 그곳 수백m 바위 위 자리잡은 수도원
삶과 죽음의 경계 넘어선 듯 수도사
그리스 최초의 자연철학자인 탈레스는 대지는 물 위에 떠 있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별나라에선 바위산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메테오라’란 그리스말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공중을 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일단 메테오라를 보면, 비현실적인 ‘사실’에 눈을 다시 비비게 된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마법의 바위를 향해 경사로를 오른다. 칼람바카에서 가장 큰 바위인 알소스 바위의 턱밑에 숙소를 정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더니, 검은 복슬개가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배낭을 두 손으로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상태였기에 개를 밀어내고 방문을 닫았다. 창밖으로 보니 야속한 님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그 검은 개를 다시 만난 건 다음날 아침 메테오라 트레킹 길이다. 예닐곱명의 젊은이들 틈에 섞여 산을 오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불렀더니 애써 고개를 돌린다. 삐친 기색이 역력하다. 멋진 신을 본떠 ‘아폴로’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정성도 소용이 없다. 고독한 트레킹에서 그라도 있으면 한결 수월할 텐데 아쉽다. 하지만 박대의 대가를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고독은 자초하는 것이다.

그리스 중부에 자리잡은 ‘메테오라’는 고독을 자처한 이들의 수도처다. 거대한 바위 꼭대기들마다 수도원이 있다.

이곳엔 10세기 무렵부터 동굴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4세기 초 성 아타나시오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이후 수도원이 늘어 16세기엔 20여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남자수도원 5곳과 수녀수도원 한곳이 있다. 수도원들은 400~500m의 수직 바위 꼭대기에 있다. 새 이외는 그 어떤 짐승도 접근할 수 없는 곳들이다.

첫 순례지는 ‘아지아 트리아스 수도원’이다. 수직 절벽에 수도파이프 같은 통로를 내놓았다. 이 계단도 1925년에야 만들어졌다. 13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과 통로가 만들어지기 전엔 수도사들은 이처럼 계단을 걸어서 올라다닌 것이 아니라 나무 사다리나 밧줄을 타고 오르내렸다. 희한한 사람들이다.

좁은 통로와 계단을 통해 수직 절벽 위로 올라가니 그 위는 평지처럼 평평하다. 신이 수도원용으로 제작한 모형 바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마당은 좁지만 정원도 넓다. 어디선가 날라온 흙을 모아 몇그루 나무도 심어져 있다.

출입구 옆쪽으로 돌아가니 굵은 동아줄이 기둥에 몇겹으로 둘러쳐져 있다. 수도사들이 절벽 위를 오르내릴 때 수도원과 세상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끈이다.

수도원 안의 한두평 남짓한 방에 난 작은 구멍 밖으로 한 마리 새가 날고 있다. 옛 은둔 수도사들은 감옥 같은 이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면서, 무엇을 꿈꿨을까. 그리스신화에서 하늘을 날려 했던 이카로스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런 마음마저 비우고 비워서 허공이 되었을까.

수도원 입구와는 반대쪽으로 나가 보니 저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칼람바카 마을이 바위군들 틈에 앉아 있다. 설산과 마을과 수직바위의 화음을 이룬다.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 안에 있는 수도자들의 유골.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 안에 있는 수도자들의 유골.
밧줄 없인 못 올랐다는 그곳
수백m 바위 위 자리잡은 수도원
절대고독이 준 자유와 해방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 넘어선 듯
수도사 얼굴엔 평화로운 미소가

아지아 트리아스 수도원을 내려오니, ‘아폴로’가 오고 있다. 그런데 꼬리를 좀 흔들긴 했지만, 금세 고개를 돌린다. 베풀지 않고 어찌 벗을 얻겠는가. 점심 끼니용으로 싸온 소시지를 꺼내 불렀다. 처음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다가와선 맛있게 받아 먹곤 해맑은 얼굴로 “뭐 더 없냐?”는 듯 쳐다본다. 남은 소시지를 마저 홀딱 먹어치우는 쩝쩝 소리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수도원 계단을 오르던 아폴로의 일행들이 개를 향해서 손을 흔든다. 소시지에 정신 팔린 그가 무정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더니 아폴로는 부끄러운듯 도랑으로 숨는다. 개가죽만 뒤집어썼을 뿐 영락없는 사람이다. 이제 전날의 소원함을 풀고 아폴로와 즐거운 데이트를 할 것을 생각하니 즐겁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착각할 때까지만이다. 잠시 한눈을 팔고 보니 아폴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꼬리를 흔들어봐야 내 배낭에선 더는 나올 게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먹고 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고 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슬픔과 고독이 자유를 대신할 뿐이다. 수도사들이 바위 끝 삶을 산 것은 슬픔과 고독 속에 자기를 가두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함이다. 그러니 ‘굿바이’다.

메테오라의 유일한 여성 수도자들의 수도처인 ‘아지오스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아지아 트리아스 수도원에서 오른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남자수도원보다 외부로 차단하는 장치가 이중 삼중 더 엄격하다. 바위 건너 수도원으로 난 철대문 통로 외엔 4면이 낭떠러지뿐이다. 29명의 수녀들이 살며 수도하는 철옹성이다.

이 수도원은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지만 12시면 문을 닫고, 오후 3시에 다시 열어 6시에 폐쇄한다. 그런데 출입문 입구에 있는 수도원 가게에 들어가 아름다운 성화와 성물들과 정교회 음악에 빠져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안엔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12시 종이 울렸다. 수녀는 “이제 순례자는 수녀원 안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며 “나가 달라”고 했다. 이대로 나가면 순례 여정상 이곳을 다시 보긴 어렵다. 수도원처럼 철저한 곳에서 다른 변명이 통하지 않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한 줌의 자비를 기대해볼밖에. 완고해 보이는 수녀에게 사정을 했다. 그 수녀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럼 빨리 돌아보라”고 출입문 쪽을 가리키던 손의 방향을 수도원 안쪽으로 돌렸다. 아마 그때 수녀원 안엔 다른 순례자가 없었기에 특별한 혜택이 가능했으리라. 고요한 수녀원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수녀의 안내로 단순하면서도 정갈하게 꾸며진 마당과 교회 내부를 통해 세속적인 것과 절연한 그들의 마음가짐을 알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철옹성에도 한 뼘의 여유는 있다.

맨 오른쪽인 이 수도원에서 맨 왼쪽 끝에 있는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에 가려면 너무 멀다. 차를 보고 무작정 손을 들었더니 태워준다. 아래에 사는 화가라는 이가 끄는 차는 낡아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아폴로신이 천상세계에서 끌고 다닌다는 빛나는 마차가 이렇게 멋지랴. 무더위 속 지옥 트레킹을 천상 순례로 바꿔주는 건 한줌의 배려만으로도 충분하다.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은 14세기 이 지역 출신의 수도사 아타나시오스에 의해 세워졌다. 메테오라 최대의 수도원이다.

아지아 트리아스 수도원을 오를 때보다 더 험준한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한다. 거대 수도원답게 예전에 수도원에서 쓰던 나무로 만든 농기구며 종이나 포도주통들이 수백년 전 수도자들의 삶 속으로 끌어간다.

그 가운데 순례자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관람객들이 모두 오르는 계단 앞에 놓여 있는 수도자들의 유골 더미다. 유골이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에 마주하고 있으니, 섬뜩할 법한 유골에 대해 오히려 거부감이 없어진다. 어떤 해골들은 불그스름한 데 비해 어떤 해골들은 하얀색을 띠고 있다. 이를 보고 수도사들은 농담을 하기도 한다. 붉은빛을 띤 해골은 분명히 생전에 적포도주를 즐겼던 수도자고, 하얀빛을 띤 해골은 백포도주를 즐긴 수도자임에 틀림없다고.

이 땅의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리들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죽음을 떨치려 기를 쓴다. 그런데 그들은 늘 죽음의 불안을 지고 사는 데 반해 이렇게 주검을 가까이 둔 이들은 별다른 죽음의 두려움 없이 평안한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허리 구부정한 수도사가 벗들의 해골에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병과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거부에서 오는 걱정과 불안 때문이라는 듯이.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과 사진은 휴심정(we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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