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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스파르타 교육’이 낳은 전사들, 유토피아 만들었나

등록 2012-07-11 20:04수정 2012-07-12 15:11

그리스의 스파르타 시립운동장 앞에 스파르타 전사의 상징인 레오니다스왕의 동상이 서 있다.
스파르타/조현 기자
그리스의 스파르타 시립운동장 앞에 스파르타 전사의 상징인 레오니다스왕의 동상이 서 있다. 스파르타/조현 기자
[조현의 그리스 종교기행]
⑤ 스파르타: 엘리트가 우리를 지켜주는가
그리스 사람들은 스파르타에 대해 뜨악했다. 별 볼 일이 없는 곳이란다. 그런데 아니다. 아테네의 버스터미널에서 스파르타행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갑자기 쓰러진다. 간질 발작이다. 청년은 잠시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이 고대 스파르타였다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스파르타에선 아이가 불구나 기형이거나 간질병이 있거나 병약할 경우 타이게토스산 기슭의 깊은 구덩이에 버렸다. 처음부터 건강과 체력을 타고나지 못한 아이는 아이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게 낫다는 게 스파르타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만이 7살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아고게’라는 소년학교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다. 달리기부터 씨름·검술·승마까지.

버스가 분지와 산악지대를 넘는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그 앞에 평지가 펼쳐져 있다. 천혜의 산에 둘러싸인 평야, 바로 스파르타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화 <300>의 주인공 레오니다스왕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침략 때 시간을 벌기 위해 직접 결사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레의 통로를 지키며 목숨을 버려 스파르타 정신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그의 동상이 중앙로 끝에 칼과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식스팩 복근을 지닌 섹시남이다. 동상 뒤엔 잔디가 깔린 축구장과 트랙을 갖춘 경기장이다. 잔디구장에선 스파르타의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트랙에선 한 여성이 각선미를 뽐내며 조깅을 하고 있다.

경기장을 나와 경기장 뒤쪽 야산으로 올라간다. 고대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다. 하지만 아테네의 유적들과 달리 방치돼 있다. 스파르타 멸망과 함께 그들의 유적도 버려졌다. 이런 명멸을 리쿠르고스가 상상이나 했을까.

기원전 7세기 스파르타의 법과 제도를 만든 리쿠르고스는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왕으로까지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는 정치인들로부터 자신이 돌아오기 전엔 법을 바꿀 수 없다는 맹세를 받은 뒤 고국을 떠나 곡기를 끊고 죽었다. 자기가 만든 법을 영원히 바꾸지 못하도록.

그는 토지를 모두 공동출자해 다시 분배함으로써 평등사회를 만들었다. 경제 쇄국정책을 취해 외국과 교류를 금한 것도 그였다. 물든다면서.

하룻밤을 묵은 뒤 아침 일찍 북쪽 마을 외곽에 있는 아르테미스 오르티아 신전에 갔다. 아르테미스는 신화에서 ‘사냥꾼’이다. 이곳에선 ‘디아마스티고시스’가 행해졌다. 디아마스티고시스란 젊은이를 단련시키기 위해 채찍질해서 제단을 피로 물들이는 의식이었다.

신전을 가도, 박물관을 가도 유독 폐쇄적인 분위기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갔다가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란 동요를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기원전 마케도니아의 주도로 페르시아에 맞설 때 스파르타가 그 동맹에 함께하지 않아 그때부터 그리스 안에서 왕따를 당해 그 피해의식이 팽배한 때문이란 설도 있다.

하지만 스파르타인들이 그리스 안에서 당하는 왕따는 고대에 스파르타의 피정복민인 헤일로타이가 당한 왕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스파르타는 이웃 도시국가를 정복해 그 도시인들은 노예로 삼았다. 헤일로타이다. 스파르타인들은 그들에게 개가죽 모자와 가죽 조끼를 입혔다. 그런 뒤 노예임을 잊지 않도록 연중 일정한 횟수의 매를 때렸다. 반항 여부와 상관 없이.

건강한 아이 뽑아 전사교육
소수시민 엘리트로 키웠지만
피정복민 노예 무차별 살육…
플라톤 ‘이상국가’로 삼았지만
독재자들이 ‘등대’로 여긴 사회
폐쇄성 탓인지 유적들 방치돼

그리고 전쟁에 데리고 가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들 중 승리의 주역이 될 만큼 용맹스럽고 건강한 노예들은 상을 내리겠다며 모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스파르타에선 젊은 전사들 중에 뽑힌 크립테이아란 비밀경찰이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건장한 헤일로타이들을 언제나 죽일 수 있었다. 잠재적 반란을 도모할 수 있는 이들의 싹수를 자르는 살인 면허였다.

영화 <300>에선 곱추 스파르타인 에피알테스가 배신자로 나온다. 하지만 장애인과 노예 등 시민보다 10배가량이나 많은 다수를 배신한 것은 스파르타의 전사, 곧 소수의 시민이었다.

전사들은 그토록 원한을 쌓으며 많은 노예들을 다스려야 했기에 잘 싸우고 강해지고 금욕적이며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었던 사람들의 국가를 플라톤은 이상국가로,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의 모델로 삼았고,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등대로 여겼다. 열성은 배제하고 우성만을 잘 키우자는 우리나라의 엘리트 교육론자들에 이르기까지. 하소연할 데 없이 수천년 동안 스파르타의 골짜기를 맴돈 영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일까. 스파르타의 바람이 유독 깊게 살을 엔다.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과 사진은 휴심정(we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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