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 기관(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병원 인증 평가를 나오면, 그 기간에는 피에이(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에게 ‘너네는 눈에 띄지 말라’고 해요. 바퀴벌레 사라지듯 숨으라고 하니,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나는 어느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가 하고요.”
지난 2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수도권 한 대형병원에서 피에이 간호사(전담 간호사)로 일했던 7년차 내과 간호사 ㄱ씨(29)가 말했다. 피에이 간호사는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지만, 의료법상 불법성 여지 때문에 ‘있어도 없어야 하는’ 존재라는 얘기다.
병원에 피에이 인력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의료법 2조에 따라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아래 이뤄지는 진료 보조 업무만 수행해야 하지만, 피에이 간호사는 의사의 진료보조 인력으로 수술·처치·처방·환자 동의서 작성·회진 등 전공의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의사가 세세한 지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칫 ‘무면허 의료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병원들은 입사 뒤 일정 기간 지난 간호사를 해당 업무 담당으로 배치하거나 공개적으로 경력자를 채용해왔다. 실제 구인구직플랫폼 확인 결과 22일 현재 ‘PA간호사’, ‘수술실 간호사’ 등 이름으로 수십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다.
간호사단체 등은 피에이 간호사의 불안정한 상황을 두고 수년간 문제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직역 간 얽힌 이해관계로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했고, 지난 3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피에이 간호사’ 채용공고를 낸 삼성서울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의 경계’에 있다 보니, 피에이 간호사들은 ‘대리 의사’ 행위를 할 때 불안감에 시달린다. ㄱ씨는 “드레싱(수술부위를 덮어주는 의료적 처치)의 경우도 잘못하면 환자가 위험하다. 혹여나 처치가 잘못됐을 때 환자 보호자는 누구 잘못이냐고 따질 텐데, 굉장히 난처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피에이 간호사들은 종종 의사 없이 환자의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의료현장 실태조사를 보면, 한 피에이 간호사는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1명밖에 없고 이 의사도 연락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발생할 시 피에이 인력이 대처해야 해 난처하다”고 증언했다.
실태조사 내용을 종합하면, 피에이 간호사는 △의사 아이디로 처방 △전공의 없는 진료과에서 대리수술 △전공의가 없는 경우 환자 치료방향 결정 △동맥관 채혈 △수술·시술에 대한 동의서를 의사 이름으로 받기 △의사 가운 입고 환자 회진 등 환자의 건강에 직결되는 ‘대리의사’ 업무를 수행했다.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생겨난 직군이 아니기에 교육과정도 전무하다. 피에이 기간을 간호사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피에이는 자기 혼자 스스로 교수님 밑에서 맞춰가야 하는 거죠. 누가 나를 알려준다는 개념은 전혀 없어요. 게다가 병원 내에서 피에이 끼리만 소통하고 ‘왕따'인 경우가 많아요. 간호사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전문성을 기르기도 어렵고 스트레스로 인한 이직도 많다. 2020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조사에서, 설문에 참여한 피에이 간호사 287명중 124명(43.2%)이 업무 경력 1∼2년이었다. △3∼4년의 경력자는 66명(23%) △5∼6년 38명(13.2%) △7∼10년 42명(14.6%) △10년 이상은 17명(5.9%)에 불과했다. 피에이 간호사 인력도 연차가 높을수록 이직하는 비율이 높은 셈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조합원들이 2020년8월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본부 생명홀에서 ‘의사 인력 부족이 만든 불법의료 현장 고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대학병원 내 진료보조인력(PA)의 업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사 인력 부족으로 생기는 수술, 시술, 처치, 처방 등 각종 업무 공백을 진료보조인력이 메우고 있었다고 밝히며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 인력 확대를 촉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피에이 간호사 1만명 추산…“없으면 수술 못 해”
2020년 병원간호사회 조사를 보면, 2005년 235명(40개 병원)으로 집계됐던 피에이 간호사는 2020년은 4814명으로 15년 만에 약 20배로 증가한다. 외과계 피에이 간호사가 3499명으로 대다수였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피에이 간호사를 실제 이보다 많은 1만명으로 추산한다.
피에이 간호사의 폭발적인 증가는 기피과목 전공의 수급 문제에서 출발한다. 한 서울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전공의 지원자가 15년째 없는데, 의사 혼자 환자 처치를 다 할 수가 없다. 피에이가 없으면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피에이 간호사를 기피하지만, 현실적으로 병원이 역할을 맡기면 거부하기 어렵다. ㄱ씨는 “피에이 간호사가 ‘인사 발령’ 형태로 배정되기 때문에, 가고 싶거나 가기 싫다고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ㄱ씨는 피에이 간호사 제도를 “병원들이 ‘값싼 의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도 설명한다. 전공의 1명을 더 채용하는 것보다, 인건비가 적게 드는 간호 인력에게 의사 업무를 일부 떠맡기는 게 병원 입장에서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2016년 전공의의 80시간 이상 근무를 제한한 이후 피에이 간호사는 더 늘었다.
이 과정에서 병원이 필요한 노동을 의사 채용이 아닌 피에이 간호사를 통해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피에이 간호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어디까지가 간호사가 해도 되는 일인지’ 불명확한 업무 규정이라도 구체화하자는 게 우선 대안으로 거론된다.
장숙랑 중앙대 교수(간호학)는 “병원 현장에 따라서 업무가 다 고무줄처럼 되어 있다. 불법적인 행위가 발생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법적인 책임 소재가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각 병원별로 피에이 간호사의 업무 지침을 만들고, 정부는 이를 승인해 관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에이 간호사의 업무 규정을 만들기 위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타당성 검증’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누가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갈래를 명확히 하고, 의료현장에서 피에이 간호사 업무 기록에 대한 관리와 보고·감독 체계를 만들어 오는 4월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국외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의사·간호사가 아닌 새 직역을 만드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국가가 별도 피에이 간호사 자격을 인정하고 2∼4년의 필수 교육 기간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원적 해법은 결국
‘의사 증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의사 인력 확충이 없는 한 다른 대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며 “직역과 정부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