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한국노인복지학회 등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인요양시설 임차제도의 도입과 장기요양시장 금융화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공
땅이나 시설을 빌려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임차요양원’ 도입을 정부가 검토 중인 가운데 복지학자들은 임차 요양원 허용으로 노인의 주거권과 건강권이 침해될 우려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한국노인복지학회 등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인요양시설 임차제도의 도입과 장기요양시장 금융화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미진 건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요양시설 임차허용은 투기성 자본의 시장 점유를 확대할 것”이라며 “요양원이 난립하면서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요양시설은 일반 요양시설에 견줘 수익을 우선시하고 인력을 적게 고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품질 저하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투기자본의 유입이 노인의 주거권과 건강권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는 영국의 요양시설 회사 ‘서던크로스 헬스케어'가 대표적이다. 사모펀드가 소유했다가 매각한 이 회사는 임차료 상승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2012년 파산했다. 이에 따라 시설에 거주하던 노인 3만여명이 갑자기 퇴거해야 했다. 회사를 소유했던 사모펀드가 산하 기관의 재산을 매각한 뒤 재임대(세일 앤 리스백)하는 방식 등으로 단기 수익 창출에 열을 올렸던 게 당시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교수는 “임차 허용으로 운영되는 시설, 특히 사모펀드가 소유한 시설은 파산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해당 사모펀드가 투자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품질과 돌봄 인력에 들어가는 돈을 최소화하면서 정작 시설 이용자들은 피해를 봤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직원으로 다수 고용했고, 결국 시설에서 사고가 나서 구급대원이 와도 직원들이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 회사가 운영한 시설에서 5명의 사망자 등 27명의 학대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복잡한 소유구조와 관리체계 때문에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대규모 사모펀드 회사가 운영하는 미국의 요양시설은 (사모펀드가 아닌) 다른 주체가 운영하는 시설에 견줘 응급실 방문율과 병원 입원율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비영리 기관에 견줘 영리 기관 입소자들의 욕창 발생률과 향정신성의약품 사용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이같은 결과는 요양시설의 적정 돌봄 인력·의료진 충족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며 “짧은 기간에 이윤을 추구하려는 요양시설은 이런 인력을 줄이려는 경향이 높다”고 짚었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지난 17일 발표한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에서 도심 등 일부 지역에 임차 요양원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안정적인 시설 운영을 위해 사업자가 땅·건물을 직접 소유해야 노인요양시설을 열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일부 지역에서 시설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부동산 임차만으로 시설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당시 발표에서 “주로 시설을 이용하는 (장기요양등급) 1·2등급자는 서울에 2만4000명 정도 있는데, 서울 지역 시설 정원은 1만6000명에 불과하다”며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 여력도 있다. 이들이 지역 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임차 허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임차요양원이 아닌 재가 복지, 소규모 시설 등을 통한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진 교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통해 재가복지를 지향해야 한다. 시설은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시설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