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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복지부의 ‘임차 요양원’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

등록 2023-07-20 16:21수정 2023-07-20 16:41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19일 열린 ‘임차 요양원 허용’ 정책 공청회에서는 95석의 자리가 가득 차 숱한 청중이 2시간 내내 서서 토론을 지켜봐야 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19일 열린 ‘임차 요양원 허용’ 정책 공청회에서는 95석의 자리가 가득 차 숱한 청중이 2시간 내내 서서 토론을 지켜봐야 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도대체 왜 굳이 그런 정책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주최 공청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었다. “누구를 위해 굳이 그런 정책을 하는 거냐”는 물음이기도 한데, 토론자도, 장내를 가득 채운 청중도, 반대 손팻말을 들고 2시간 내내 공청회를 지켜본 시민단체 소속 회원도 이구동성으로 이를 되풀이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정책은 이날 공청회에서 발표된 ‘신노년층 요양시설 서비스 활성화 방안’이다. 발제를 맡은 문용필 광주대 교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베이비부머란 신노년층이 쏟아져 나오니 이들의 욕구에 맞는 노인요양시설 추가 설치가 필요하다. 이에 10인 이상 요양시설을 설치할 때 반드시 소유권을 지니도록 한 규제를 풀어 임차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럴듯한 제목과 포장을 걷어내면, 10인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려면 토지와 건물을 반드시 소유해야만 가능한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을 고쳐 앞으로 누구든 임차(임대)해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지난 4월 5일치 <한겨레> 보도(개폐업 장는 노인요양시설…‘임대’ 운영 허용, 득일까 실일까)로 처음 알려진 ‘임차 요양원 허용’정책이다. 보도 직후 정책 추진 사실 여부를 묻는 참여연대 ‘질의’에 복지부는 “정해진 게 없다”고 답했지만, 실상은 수면 아래서 쉬쉬하며 추진하다 오늘 공청회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문 교수는 이날 요양시설이 특히 부족한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강남권 같은 대도심 지역에 2~3년간 단계별 시범사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시행하자는 ‘전략적 도입안’이란 세부 추진 방침도 제시했다. 문 교수 발표 방안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발주로 아직 연구 중인 프로젝트”라고 했지만, 핵심 내용은 복지부의 ‘섬세한 주문과 까다로운 지도 편달’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청회는 시행규칙을 고치기 위한 요식 행위 성격이 짙다는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공청회가 열린 과정이나 현장 풍경은 이런 의심을 더욱 키웠다. 통상 정부에서 공청회를 열 때는 14일 전 (이해)당사자 등에게 통지하고 공고하지만, 정부와 공단은 언론에도 공청회 개최 사실조차 사전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당장 긴급하게 서둘러야 할 정책도 아닌데도 토론자들은 이틀 전에서야 발제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흔히 공청회 장소에 가면 받을 수 있는 발제문과 토론문이 묶인 자료집조차 만들어 제공되지 않았다. 몰래 치르려 한 ‘기습 공청회’란 뒷말이 무성했던 이유다.

복지부 주최 건강보험공단 주관으로 열린 ‘임차 요양원 허용’ 정책 공청회 장에서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송현종 상지대 교수, 전용호 인천대 교수, 이준영 서울시립대 교수(사회), 이형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 박종림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부위원장. 이창곤 선임기자
복지부 주최 건강보험공단 주관으로 열린 ‘임차 요양원 허용’ 정책 공청회 장에서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송현종 상지대 교수, 전용호 인천대 교수, 이준영 서울시립대 교수(사회), 이형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 박종림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부위원장. 이창곤 선임기자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공청회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각계 견해일 것이다. 이날 복지부가 추진 중인 ‘임차 요양원 허용’ 정책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는 적어도 이날 장내에선 발제자 외에는 없었다. 기존 시설 운영자나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는 예상됐지만, 지정 토론자로 나선 두 전문가에게서도 찬성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거센 반대가 쏟아졌다.

토론자로 나선 노인복지 전문가, 전용호 인천대 교수는 조목조목 “이 정책을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제시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우선 발표 방안대로 정책이 시행되면 앞으로 10인 이상의 요양원을 전세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시설이 파산해 요양원에 빨간 딱지가 붙는 상황이 발생하면 치매 등으로 편찮은 입소 노인들이 쫓겨날 수 있는 주거 불안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더해 부실 요양원이 난립하거나, 투기성 금융 자본이 유입돼 장기요양이 더욱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 제 돈으로 땅을 사서 어렵사리 건물을 지어 요양원을 꾸려온 기존 운영자들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양원의) 임차를 허용하는 이 정책은 장기요양보험제도를 크게 후퇴시키는 것으로 절대로 시행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토론자인 이형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은 “지방에선 구인난으로 입소 노인들이 시설에 못 들어가는 상황도 발생한다”면서 “왜 베이비부머들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서울 강남권 등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사는 노후생활)’를 고려하면서, (입소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노인들의 에이징인 플레이스는 고려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방과 복지 격차를 넓히는 점에서도 형평성을 잃은 정책이라고 비판이다. 그는 토론 중 “문제가 많은 이 제도를 왜 도입하려 하느냐”며 거듭 반문했다.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이 기관 최고전문위원회의 박종림 부위원장은 “이달 17일 현재 노인요양시설의 공실률(입주가 이루어지지 않은 빈방의 비율)이 20%에 이르고 해마다 장기요양기관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베이비부머를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의 요양시설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은 오히려 공적 사회보험제도인 장기요양보험제도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전국에 있는 (10인 이상의) 장기요양시설은 토지를 소유하고 건물을 지어야 하는 현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운영하고 있는데, (임차 허용으로) 어느 곳에 특혜를 주는 것은 (기존 시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등 관계자들이 19일 열린 복지부 공청회 장소인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 한 쪽벽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반대 뜻을 표명하고 있다. 이창곤 선임기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등 관계자들이 19일 열린 복지부 공청회 장소인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 한 쪽벽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반대 뜻을 표명하고 있다. 이창곤 선임기자

‘임차 요양원 허용’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보험협회 쪽의 연구용역을 최근 마무리한 송현종 상지대 교수마저 찬성의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송 교수는 “신노년층 즉 베이비부머를 위한 노인요양시설 활성화를 위해서는 요양시설의 양적 확대든 질적 수준의 향상이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노인요양시설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요양병원까지 포함해서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송 교수는 “임차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서비스 질의 공공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대의 목소리는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에게서도 이어졌다. 상당수 청중은 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등 반대 단체들이 긴박히 ‘동원’한 이들이었는데 질문은 똑같았다. “왜, 정부가 이런 정책을 펴느냐”는 의문이었다.

이날 공청회에선 복지부의 답변이 있었지만, 장내 모두의 의문을 풀어주는 답은 아니었다.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과 청중들의 거센 답변 요구에 마이크를 잡은 염민섭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공청회에서 나온 말씀을 참고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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