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사각지대 발굴에서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죽음에 대처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동네에서 한명이라도 죽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이 있습니다.” (김아무개씨)
“저희가 힘들게 찾아서 전화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분들도 있거든요. 이게 뭔가, 이렇게 스크리닝을 하는 것 자체의 취지가 좋기는 하지만.” (오아무개씨)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책’에 대한 일선 복지 공무원들의 평가다. 윤석열 정부는 취약계층의 잇따른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지난해 11월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이하 발굴 대책)’을 발표했다. 위기 가구를 찾기 위해 수집하는 정보를 올 하반기까지 44종으로 늘린다는 등 ‘정확한 위기 가구 발굴’이 핵심이다.
하지만 읍면동에서 이 대책을 실행하는 다수의 복지 공무원들은 이런 ‘발굴’ 중심의 복지사각지대 대응책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또
“발굴 중심에서 제도 지원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런 공무원들의 평가와 주문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진이 정부 대책발표 이후인 지난해 12월 일선 복지 공무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그룹 인터뷰와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복지전달체계 혁신을 위한 대안적 고찰-취약계층 발굴정책 개선을 중심으로’란 보고서를 19일 보면, 이 연구원의 함영진 박사팀은 복지사각지대 발굴 업무를 맡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16명의 6~9급 읍∙면∙동 공무원들을 상대로 네 차례에 걸쳐 그룹 인터뷰를 벌였다.
이 조사에서 일선 공무원들은 정부의 ‘발굴 대책’ 강조와 달리, 실제로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업무가 업무의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한다고 밝혔다. 사각지대 발굴이 지역 사회의 복지사각지대 문제 예방의 시발점이라고 하지만 공무원들은 현실에서는 이보다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를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한 것이다.
자료: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의 추진 방향과 내용, 관계부처 합동(2022, 11월 24일)
이유는 인력부족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호소다. “당장 사각지대 발굴만을 전담해서 나갈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공무원 김아무개씨)는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 업무는 상담 역량, 법정 급여에 대한 지식 등 전문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읍면동에서 이 업무를 하는 담당 공무원은 대체로 신규 직원이거나 경력이 오래되지 않고, 교육마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현장 공무원들의 증언이다. 또 ‘발굴 대책’에서 강조하는 복지 통장∙이장이나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과의 민관협력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진단도 내놨다.
공무원 배아무개씨는 “복지부에서 얘기하는 민관협력이 필요하다는 거에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저는 명예사회복지직 공무원, 이거는 정말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조아무개씨는 “민간에 계신 분들이 워낙 바쁘고 같이 약속을 맞춰 나가려면 그만큼 속도감이 떨어져,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편”이라고 했다. 사회보장시스템을 통해 읍면동에 전달된 정보에 따라 발굴에 나서지만, 정보의 상당수가 허수인 데다 활동량 대비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성과도 절대 부족한 상황이라는 진단도 이어졌다.
연구진은 이와 함께 올 1~2월 시군구 및 읍면동에서 복지 업무를 하는 52명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을 대상으로 ‘복지사각지대 발굴체계 관련 (발굴 대상) 우선순위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는데, 가장 시급한 대상은 “급여 자격은 있으나 신청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이들”로 나타났다.
한 공무원은 “거부하거나 숨어들어서 미신청하거나 이런 분들이 많다”고 했고, 또 다른 공무원은 “신청을 해도 원하는 만큼의 급여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면 굳이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대책 관련 이들은 사회복지 전담 인력의 확충을 1순위로 꼽았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취약계층 발굴과 지원을 위한 궁극적인 정책대안은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것과, 이를 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와 노인복지관 등 복지시설에서 복지급여를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복지급여 신청체계의 전국화’를 구현하는 등의 세부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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