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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오랜 데자뷔, ‘연금개혁 공회전’을 끝내려면 [아침햇발]

등록 2023-09-05 18:10수정 2023-09-05 21:48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가 지난 1일 오전 국민연금 개혁 방안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재정계산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가 지난 1일 오전 국민연금 개혁 방안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재정계산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곤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이창곤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데자뷔다. 1년여간 스무차례 이상 논의했다. 하지만 끝내 격돌했고, 일부는 아예 뛰쳐나갔다. 5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합의안은? 물론 없다.

‘재정안정 시나리오’가 무려 18개나 던져졌다. 다만, 메시지만은 분명하다. “70년 뒤인 2093년까지 연기금을 유지하기 위해선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의 존재 이유인 노후소득 보장과 직결되는 소득대체율 인상은 아예 빠졌다. 보장성강화론 쪽에서 ‘반쪽 시나리오’란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한숨과 비난, 질타가 쏟아졌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보고서 성안 과정에서 나타난 야단법석이다. 또다시 이렇듯 야단법석만 떤 채 흐지부지 끝날 것인가? 섣부른 비관이 앞서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2024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여당에 ‘지지율 셈법’이 어른거리고 있지 않는가. 기실 이 또한 데자뷔다. 이제 그만 겪고 싶다. ‘연금개혁 공회전’의 역사적 반복은 너무나 몰지각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이 점에서는 모두 같은 심경일 것이다.

‘다수안’을 고집한 재정안정론자나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창하다 사퇴한 보장성강화론자나 숫제 논의의 판에 끼지도 못한 기초연금강화론자까지, 개혁의 시급성에 대한 절박감에는 이견이 없다. 실낱같은 것이라도 기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연금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는 개혁의 밑그림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이 작지 않지만, 연금개혁 전 과정에서 보면 수차례 관문 가운데 1차 관문이다. 개혁이든 개악이든 연금제도 변화는 어느 나라에서든 ‘코끼리 옮기기’다. 그 과정은 숨 가쁜 고비를 수차례 이겨내야 하는 마라톤이기도 하다. 최악은 중단이나 포기다. 견해차로 다툼을 벌이다 흐지부지 주저앉거나 궤도를 벗어나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실패를 반복했다. 그 결과 거의 17년을 무위로 보냈다. 이대로라면 게(소득보장)도 구럭(재정안정)도 다 잃을 상황이다.

연금개혁의 구체안은 결국 정부 몫으로 떨어졌다. 예상된 전개다. 정부는 이제 재정계산위원회란 방패막이용 도구도 없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뒤로 숨을 수도 없다. 10월 말 정부안(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두번째 관문이다. 지금부터는 정부의 태도가 개혁의 관건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연금개혁의 본질을 이해하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 무엇보다 장차관이 여의도 등지에서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때로는 대통령이 3대 사회개혁의 하나로 호언장담한 대로 직접 나서야 한다. 긍정·부정으로 내용 평가는 엇갈리지만, 2007년 2차 연금개혁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연금개혁이 복지국가의 핵심 노후소득 보장 정책이면서 동시에 이해관계자의 다른 견해를 하나로 모아야 할 ‘현실의 정치 과정’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복지국가의 핵심 노후소득 보장 정책이란 건 연금개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험수리적 시각을 넘어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를 위한 연금정치’적 관점이다. 재정계산위원회가 놓친 지점도 연금개혁이 갖는 이런 속성이란 생각이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어, 대안별 장단점을 국민이 판단하기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시하는 것”으로 “보고서가 해야 할 일로 판단”했다. 위원회가 실행 가능한 단일의 재정안정화 방안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서생적 문제인식’이었다. 이쯤이면 ‘위원회 무용론’이 나올 법하다. 사실 재정계산위원회나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복지정치가 내장된 전략적 산물이다. 구성하는 그 자체로 정책 문제 해결에 나서는 이미지를 획득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위원회가 개혁의 모양새만 취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연금개혁의 또 다른 축인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그럴 공산이 다분하다. 여야가 스스로 경계하고 시민사회와 언론이 냉철히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국회는 연금개혁의 최종 관문이다. 따라서 국회의 연금개혁특위는 하기에 따라 개혁 코스프레가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수용해 협상을 촉진하는 정책 공론장이자 정책 협의 및 결정의 장이 될 수 있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정책결정자나 관련 주체들의 레토릭(수사)은 무성했고, 지금도 무성하다. 이 또한 데자뷔다. 연금개혁의 진정성에 대한 판단 잣대는 레토릭의 장막을 걷고 실행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누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인식을 넘어 타협할 수 있느냐란 말이기도 하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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