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경제·사회적 피해 또한 막심하다. 초유의 상황이라고들 하나 이미 우리가 겪은 역사적 경험도 적잖다. 1919년 1월 <매일신보>는 스페인 독감으로 무려 742만명의 조선인 환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1600만명이었으니 절반 가까이 감염된 것이다. 사망자 수도 14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염병은 전쟁이나 기근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역학자들은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 이상으로 창조적이라고 본다. 이들은 더 강한 독성과 더 강한 내성을 얻으며 진화해, ‘다시 또는 새롭게’ 나타난다. 1951년 이후의 전염병 유행 기록을 보니 거의 한 해 또는 서너 해 걸러 신종 감염병이 등장했다. 5억년 전의 화석에서도 감염 흔적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쯤 되면 감염병의 출현은 “자연의 기본 현상”이다. 그래서 <전염병의 문화사> 저자인 아노 칼렌은 “(전염병을 피할) 마법의 도시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대응이다. 스페인 독감이 유럽에서 조선에 오기까지는 시베리아행 열차로 한 달이 걸렸다. 오늘날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안에 세계 곳곳으로 퍼진다. 글로벌 위험사회의 ‘에어플레인 바이러스 시대’다. 다행스러운 건 바이러스 못지않게 의료와 방역체계 등 우리의 대응력 또한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코로나19에 맞서 분투하는 대한민국의 방역체계만 봐도 메르스 때와 달리 진일보했음을 체감한다.
기실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가장 무서운 약점”이다. 아노 칼렌은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행태라고 지목한다. “무지와 탐욕과 좁은 시야”로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유용한 도구들의 합리적 사용을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공동체의 안전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일부 종교집단의 무분별한 모습, 전염병 사태를 악용하려는 정치, 마스크 대란 속의 매점매석과 사재기 현상 등은 공동체의 안전망을 갈기갈기 찢는 우리 안의 무서운 약점이다. 코로나19 극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어쩌면 공공 가치에 기반을 둔 제도와 시민의식의 ‘힘’으로 이런 약점을 최소화하고 소통과 협력을 드높이도록 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참고문헌: <바이러스의 습격(최강석, 살림)>, <전염병의 문화사(아노 칼렌, 사이언스북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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