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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세상과 만나고 사람과 통하고… 아이들, 여물다

등록 2006-02-12 17:27수정 2006-02-13 17:09

네팔 학생들과 2인3각 경기를 하고 있다.
네팔 학생들과 2인3각 경기를 하고 있다.

홈스쿨 제2의 대안교육/⑤ 탈학교 청소년들의 네팔여행

탈학교 청소년들과 대안학교 학생들이 방학기간을 이용해 네팔을 다녀왔다. 14박15일 동안 네팔 현지학생들과 어울리며 즐겁고 뜻깊은 대화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들과 동행한 위탁형 대안학교 미디어스쿨의 길잡이 교사 임수정씨가 여행기를 보내왔다.

여행은 흔한 주제다. 다양한 체험을 하는 현장학습도 있겠고 공부에 주눅든 아이들에게 햇볕 아래 활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공부의 연속’이란 말을 하며 학생들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백일장’이라고 하면 ‘아…! 해가 따가운 날 유적공원에 가서 도시락 먹고 글짓기 하고 오는 날’이란 생각을 하지만, 공부를 쉬고 야외로 나가 한가로이 이런 저런 생각을 원고지에 적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이다. 결국 학생들은 좋아하든 싫어하든 왜 가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지만 청소년 시기에 많은 여행들을 접하게 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대안학교의 경우 그 여행의 다채로움은 제도권교육에서는 얻기 힘든 경험이다. 실제로, 구성원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학생부터 자원교사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엠티를 가기도 하고 여행기획 수업을 학기 내내 듣기도 하고 대학생들 마냥 농촌으로 농활을 가기도 한다. 이밖에 지리산 등반, 도보여행, 자전거 일주 등을 포함하면 한 해의 1/3은 여행을 간다. 내가 다니는 미디어스쿨의 경우도 습작영화를 만들기 위한 촬영여행을 가거나 여행 기획 수업을 듣고 학생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거기엔 늘 주제가 있다. ‘정상에서’, ‘추억의 운동회’와 같은.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한정된 예산과 시간 안에서 잘 놀고 맛있는 걸 먹고 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그 안에서 얻게 되는 주도성과 자신감이야말로 여행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한번 이렇게 준비에서부터 실행까지 주도적으로 여행을 다루는 체험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성숙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푼힐 전망대에서 새해를 맞고 있는 나마스테 네팔팀.
푼힐 전망대에서 새해를 맞고 있는 나마스테 네팔팀.
푼힐 전망대 함께 오르며 서로 ‘배려’


이번에 다녀온 ‘나마스테 네팔’에도 여러 가지 성장의 모습들이 고루 담겨 있다. 이 여행 프로그램은 미디어스쿨이 주축이 되고 청소년위원회가 지원한 것으로, 전국에서 지원한 탈학교 청소년과 대안학교 학생들 가운데 면접을 통해 선발된 10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올 1월11일까지 네팔을 다녀온 이 여행의 주제는 ‘탈학교 청소년의 세상 엿보기, 나마스테 네팔(Namaste, Never Ending Peace And Learning)’. 이 14박15일 여행은 7회의 사전모임과 교육을 거쳤고, 현지에 가서는 히말라야의 푼힐전망대까지 올라가는 트레킹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인근 마을 고등학교에서 가진 청소년 문화교류로 일정이 짜여졌다.

‘나마스테 네팔’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자아의 성장을 인상깊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열정이었다. 무엇인가를 원할 때 아이들은 평소의 모습을 접어두고 다른 내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진지하게 여행에 대한 자신의 소신들을 펼친 면접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사전모임을 준비하는 자세 또한 그랬다. 사전모임은 참가자들이 여행을 준비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문화교류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함께 할 동료끼리 친밀감을 쌓는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어색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영어실력을 총동원해 서로 질문하고 답하느라 땀을 흘렸다. 또한 문화교류를 위한 요가연습, 사물놀이 연습, 태극기 그리기 등을 진지하게 진행하며 학기 말의 바쁜(대안학교 학생들은 학기 말 다양한 학습발표회식 방학식으로 바쁘다) 일정을 쪼개어 모이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의 성장이었다. 네팔에 도착하여 낯선 경험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조용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세 끼를 계속 먹게 된 네팔식 백반 ‘달밧(쌀밥과 야채절임, 콩스프, 야채와 고기를 넣은 진한 커리)’을 좋아하는 사람과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갈리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동요할까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며 물에 밥을 말아 조용히 먹는 자원교사, 트레킹 도중 뒤에 쳐진 교사 옆에서 자신의 인생이야기나 끝말잇기를 하며 힘을 덜어준 학생들, 고산지대라 힘겨워하는 학생의 손을 잡고 끝까지 푼힐전망대에 함께 오른 자원교사, 여러 사람의 체력을 배려해 트레킹 코스를 정하는 학생들…, 서로를 보살피며 먼길을 함께 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행복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세 번째는 나마스테로 시작하는 소통과 중재였다. 여행 제목에도 있는 ‘나마스테’는 인사말치고는 가볍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인사할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학생들 옆에 있다 보니 네팔인들을 볼 때마다 합장하고 ‘너머스테~’하고 인사하는 모습에 재미를 느꼈다. 아플 때도, 하산하며 트레커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을 때도 계속 합장하며 인사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지으면서도 무엇이 이 친구들을 끊임없이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하는지 궁금했다. 미디어스쿨의 친구들 중에서는 평소에 과묵했던 친구들이 더 많이 네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갈등이 있을 때는 화가 나도 서로 시간을 갖거나 중재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성격이 너그럽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들 때문에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친구들도 보였다. 중재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노력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여행 중반이 되니 인솔교사들도 학생들도 친구 같고 모두를 웃게 해주는 한명 한명의 장점들이 소중한 에너지가 되었다. 이런 열망과 소통과 배려는 시골인 또까마을의 암마르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때 튼튼한 다리 역할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옷에 국기를 그린 디 네팔 학생들과 서로 바꿔 입었다.
자신의 옷에 국기를 그린 디 네팔 학생들과 서로 바꿔 입었다.
네팔 친구들과 어느새 ‘어깨동무’

또까마을은 먼지가 가득한 건기라 가만히 서있어도 얼굴에서 흙이 묻어나올 지경이었는데 새로운 네팔 친구 10명을 만난 ‘나마스테 네팔’ 아이들은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해 답답해하더니 이내 짝과 함께 서로의 얼굴 그려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연신 통역 선생님을 불러가며 자신이 한 영어가 맞느냐고 묻는 그 모습에 ‘한국에 가면 어학공부를 열심히 하겠군…’ 하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봤다.

새해 첫 일출을 푼힐전망대에서 맞이한 새해 축하도 좋았지만, 네팔학교에서 가진 전통문화교류는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해 더 기뻤다. 한국 학생들은 떡국을 끓이고 교사들은 김밥을 준비했다. 네팔 학생들은 여머리(네팔 꿀떡)를, 네팔교사들은 엿과 마로 만든 후식을 준비해 나눠 먹었다. 검은 엿이 얼굴에, 머리카락에 붙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 우리 친구들이나 김치를 너무 잘 먹는 네팔 친구들은 서로의 문화를 즐겁게 수용한 것 같았다.

히말라야, 매일 같이 적는 여행 일지, 회의, 달밧, 신기함과 웃음, 갈등 등 다양한 경험으로 만난 네팔. 마지막 문화교류 날은 서로의 국기를 티셔츠에 그려 바꿔 입고 사물놀이와 네와리 전통공연을 서로에게 보여주었고, 공산반군이 활동하는 마을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를 주민들과 함께 보는 아슬아슬한 재미 속에 마무리가 되었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지금도 네팔여행의 여운이 남아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아름답게 눈이 쌓인 히말라야에 대한 기억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네팔학생들의 모습이 뇌리에 선하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동행한 사람들, 여행객들, 현지인들. 그리고 또 한사람의 나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네팔 여행에서 아이들은 긍정적인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잠시 제 자리에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어떤 여행을 경험했든 아이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해 진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깨닫고 있으리라. 공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이들은 간직하게 된 것이다.

글·사진 임수정/미디어스쿨 길잡이 교사 migung@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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