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 보니 빚이 2300만원 쌓여 있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숨만 쉬어도 등록금과 생활비로 매 학기 500만여원 빚이 쌓여갔어요. 부모 도움 없이는 빚을 질 수밖에 없고 이중, 삼중고를 겪어야 남들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구조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서울의 한 4년제 사립대에 다니는 ㄱ(30)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스무살 때부터 두번째 대학에 진학한 지금까지 한번도 가난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ㄱ씨 같은 이들에게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대책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 개선안이다. 학자금을 대출받은 채무자의 연간 소득 금액이 상환 기준 소득에 못 미치는 때와 상환 도중 기준 소득에 못 미쳐 원금을 갚지 못하는 때 이자를 면제해주는 안이다. 현행 제도는 지난해 2학기 기준 가구소득 8구간(전체 10구간) 이하(월 소득 527만원, 평균 재산액 2억6578만원) 대학생한테 연리 1.7%로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을 대출해주되, 기준 소득에 못 미치는 때는 원금 상환을 유예해준다. 국세청 통계연보를 보면, 학자금 상환 체납 인원은 2021년 3만9345명, 체납 금액은 3336억원에 이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일반 대학생의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이태규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으로 규정하고 ‘국회 통과 불가’를 선언했다.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대학생에게만 주는 금전적 특혜’라는 논리다.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은 고졸 이하 취업자들이 서민금융으로 돈을 빌리면 최소 3~4%대 이자를 내는데, 대학 진학자에겐 ‘학비’라는 이유로 빌린 돈의 이자까지 면제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태규 의원은 지난달 “혜택을 서민층으로 좁히면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과 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며 “법안의 목적이 일반 대학생의 표심을 노린 무차별적 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학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에게 이자 감면으로 우선 숨쉴 틈이라도 줘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취업 뒤 소득이 기준선을 넘어 상환이 시작된 이후에는 다시 이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번 조처는 한시적인 조처에 그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수십조원 초부자 감세는 되고, 대학생 이자 감면은 안 된다?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강행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월 소득 1천여만원 가구 자녀도 혜택 본다’는 주장에 대해선 실질소득이 아닌 수치를 부풀려 과도한 주장을 하는 것이란 반론이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수혜 대상이 가구소득 1천여만원이란 주장은 8구간 가구의 실질소득에 자동차, 보험, 연금 등 자산까지 소득으로 환산해 더한 값으로, 실제 혜택을 받는 대상은 실질소득 기준 월평균 527만원 이하 중산층까지다”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더 나아가 취업과 상관없이 이자를 전부 면제해주자는 태도다.
제도적으론 대학 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닌데 특정 학력 계층에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게 온당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충분한 소득이 있는 이들까지 이자 면제를 해주는 것에 대해선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 사회 현실에서 대학 진학은 엘리트교육이 아니라 사실상 보편교육에 가깝다는 인식이 있고, 여기에 드는 비용을 어느 정도 ‘사회적 부채’로 여겨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한국 고교생의 대학 진학률은 2020년 기준 72.5%에 이른다.
교육계 안팎에선 정부와 여당이 대학 등록금 문제로 ‘고졸-대졸 청년 갈라치기’를 할 게 아니라 고졸 청년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까지 고민하라고 제안한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은 “고졸-대졸 청년의 ‘예산 파이 싸움’이 아니라 청년 정책의 예산 전체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짚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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