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0일 서울특별시 제31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린 서울시 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침해 요인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이를 재정비하는 시·도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밝힌 가운데 서울시의회에서 조례안 폐지 강행 처리에 나선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이에 반대하는 민주당 쪽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시도에서 교권과 무관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방지 조항’ 등을 학생인권 조례에서 삭제하려는 움직임 등이 본격화하자 학생 인권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 서울시의회에서 현행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교권 강화에 방점을 찍은 대체 조례를 만들자는 국민의힘 쪽 주장과 기존 조례에 학생 책임을 더하는 쪽으로 개정만 하자는 민주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실제 12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상정을 밀어붙였으나,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 민주당 소속 이승미 교육위원장이 이에 반대하며 계획은 일단 무산됐다.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이 다수여서 시의회 교육위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15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 위원장은 한겨레에 “시교육청에서 다음달 20일까지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제출하기로 했고 국회에서 교권 관련 법안도 곧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루 검토해 제대로 된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지난 11일 “서울 학생들이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민주 시민,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존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시의회에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과 기존 조례를 대체할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김혜영 국민의힘 시의원 대표발의),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인권 증진 기본조례안’(채수지 국민의힘 시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된 상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3일 ‘교권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전국 7곳 시·도의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서울시의회를 시작으로 주로 국힘 의원이 다수인 시·도를 중심으로 이같은 움직임에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경기·광주·서울·전북·제주·충남 등 7곳(인천 학교구성원인권증진조례 포함)에서 시행 중이다.
2010년 학생인권조례가 국내 첫 시행된 경기도에서도 임태희 현 교육감 주도로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적극 추진 중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날 기존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를 ‘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명칭을 바꿔 개정안을 마련하고 학생·보호자의 책임과 의무 규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신설된 조항은 “학생은 학습자로서의 윤리 의식을 확립하고 학교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학내 질서를 문란하게 해선 안 된다” 등이다. 또 기존 조례에선 상벌점제를 금지했으나 개정안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우 법령과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언, 상담, 주의, 훈육·훈계, 분리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교육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충남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지난 7일 충남도의회 운영위원회에서 주민조례청구된 ‘충남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수리하고, 지난 11일 조길연 충남도의회 의장이 이 폐지조례안을 발의했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한겨레에 “학생인권과 교권은 함께 향상돼야 하는 것으로 보고 폐지 조례안이 발의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역시 지난달 31일 “제주학생인권조례는 교육활동 보호에 직접 영향을 주는 독소조항은 없지만 지나치게 학생들의 권리만 담겨 의무조항을 보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학생 책임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교권과 관계 없는 차별금지 조항 등을 손보려는 움직임 등이 애초 교권 강화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교권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축소되는 등 반인권적인 쪽으로 내용이 개정되는 모습이 보인다”며 “그동안 학생들이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학생인권조례가 원론적이기는 하나 근거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조례 폐지나 개정으로 학생들에게 부정적 환경이 만들어지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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