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의 <순정만화>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강풀의 <순정만화> 강풀의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순정만화’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의 주인공들처럼 귀족적인 꽃미남과 꽃미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들에게 쉽게 동화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아주 특별한 남녀가 된다. <순정만화>는 사랑에 빠진 세 커풀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우리는 만화 속에서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서른 살 노총각 연우와 여고생 수영은, 각각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친다. 그러다가 사랑에 빠진다. 이런 우연의 기회가 반복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순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순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일까? 아니다. 둘 사이에 다른 것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도저히 아무 것도 끼여들 수 없어서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순수한 것이다. 여기서 순수함은 배타적임을 뜻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 둘을 제외한 일체의 타인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관계가 된다. 그것은 둘만을 위해 순수한 따라서 철저하게 ‘닫힌 사회’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작가 강풀의 앙상하고 유치하며 단순한 그림들 역시 이런 순수한 관계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둘 사이의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둘만의 필연적 만남을 위해서 그들은 기꺼이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그냥 지나쳐 보낼 수 있다. 처음에는 꾀죄죄한 모습의 노총각에 별 관심 없을 것 같던 수영이 이제는 초조하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아... 왜 이렇게 느려. 이번에도 아니네. 또 아니고... 빨랑 타고 내려오라구. 아... 미치겠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또 지각이다. 지각! 이게 다 아저씨 때문이라구!” 연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영을 만나지 않을 때도 그의 삶은 온통 그녀의 환영에 지배당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수영을 위해 스프레이로 눈 내리는 것을 연출하는 연우는 부끄러움에 양 볼이 온통 빨개진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이 학생은 알까???? 내가 얼마나 자꾸 자꾸 자기 생각하는지... 알까? 깊어 가는 내 마음을...?” 사랑의 순정이 두뇌 활동을 조정하고 지배해서 상대를 자꾸 자꾸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약속이 되어 버렸다. 강풀의 그림에서, 칙칙한 도시의 아파트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위한 아름다운 성처럼 보인다. ‘숙’이라는 외자 이름의 남자 고교생과 하경이라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사이의 관계도, 붕어빵 장사 아줌마와 목도리 장사 청년 사이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 순수는 필연
배려 용서 등 고귀한 마음 생겨나
‘오직 한 사람’을 넘을 때 큰 사랑
사랑에 빠지는 일은 하나의 사건이고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 물론 행복한 사건이고 기쁘기 짝이 없는 함정이지만 말이다. 오늘날은 이런 특별한 인간관계를 인문학적이기보다 생물학적이고 화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예외적인 호르몬 분비에 의한 것이므로 ‘사랑의 화학’으로 분석하려 한다. 하지만 일찍이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남녀의 사랑이 자연의 기만에 의한 것임을 간파한 바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각자의 의지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의지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빠지기’라는 사건에서 어떤 인문학적 의미를 끌어낼 수 없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자연과학과 자연주의적 철학관이 그 사건을 훨씬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적 성찰은 ‘뒤집어 보기’의 전략을 구사할 줄 안다. 사랑에 빠지기는 자연의 의지를 드러내지만, 그 이면을 구성하는 ‘사랑하기’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로 <순정만화>를 뒤집어 읽으면, 우리는 ‘불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순정은 상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상대에 대한 넓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온갖 배려를 마다하지 않으며, 상대가 아무리 잘못 하더라도 이해하고 용서한다. 극단의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다. 관심, 배려, 이해, 용서, 포용…. 이런 덕목들은 인간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런 덕목들이 저절로 생겨난다.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다만 이들이 순수하게 배타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특별한 상대에 대해 지고의 도덕성이 적용되는 기간은 매우 짧다(‘사랑의 화학’은 그 기간이 고작해야 2년이라고 설명한다). 순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초강도의 두뇌활동과 신경활동이 필요한데, 이는 생명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없다.
하지만 순정의 순간들은 인간이 아주 훌륭한 덕목들을 실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준다. 인문적으로는 이 점이 중요하다. 그러한 가능성은 ‘순정의 사회화’를 이룰 때 폭넓게 실현될 수 있다. 이는 또한 인간관계에서 ‘불순의 지혜’를 키워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배타적인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 배려, 이해, 용서, 포용, 성실의 덕목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불순의 지혜를 키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순의 지혜는 ‘열린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기’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최고의 수준으로 실행하는 고귀한 덕목들을, 사랑하기의 차원에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가치 있는 덕목들이 저절로 생기지만, 그런 덕목들을 의식적으로 실행하면 사랑하기가 된다. 순정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순정의 순간들을 사회화할 때 성숙해진다. 이렇게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상징하는 인간관계의 덕목들은 인문적 성찰을 거쳐 만화의 그림과 말풍선 밖으로 풍성하게 확장될 수 있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강풀의 <순정만화> 강풀의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순정만화’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의 주인공들처럼 귀족적인 꽃미남과 꽃미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들에게 쉽게 동화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아주 특별한 남녀가 된다. <순정만화>는 사랑에 빠진 세 커풀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우리는 만화 속에서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서른 살 노총각 연우와 여고생 수영은, 각각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친다. 그러다가 사랑에 빠진다. 이런 우연의 기회가 반복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순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순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일까? 아니다. 둘 사이에 다른 것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도저히 아무 것도 끼여들 수 없어서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순수한 것이다. 여기서 순수함은 배타적임을 뜻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 둘을 제외한 일체의 타인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관계가 된다. 그것은 둘만을 위해 순수한 따라서 철저하게 ‘닫힌 사회’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작가 강풀의 앙상하고 유치하며 단순한 그림들 역시 이런 순수한 관계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둘 사이의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둘만의 필연적 만남을 위해서 그들은 기꺼이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그냥 지나쳐 보낼 수 있다. 처음에는 꾀죄죄한 모습의 노총각에 별 관심 없을 것 같던 수영이 이제는 초조하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아... 왜 이렇게 느려. 이번에도 아니네. 또 아니고... 빨랑 타고 내려오라구. 아... 미치겠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또 지각이다. 지각! 이게 다 아저씨 때문이라구!” 연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영을 만나지 않을 때도 그의 삶은 온통 그녀의 환영에 지배당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수영을 위해 스프레이로 눈 내리는 것을 연출하는 연우는 부끄러움에 양 볼이 온통 빨개진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이 학생은 알까???? 내가 얼마나 자꾸 자꾸 자기 생각하는지... 알까? 깊어 가는 내 마음을...?” 사랑의 순정이 두뇌 활동을 조정하고 지배해서 상대를 자꾸 자꾸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약속이 되어 버렸다. 강풀의 그림에서, 칙칙한 도시의 아파트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위한 아름다운 성처럼 보인다. ‘숙’이라는 외자 이름의 남자 고교생과 하경이라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사이의 관계도, 붕어빵 장사 아줌마와 목도리 장사 청년 사이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 순수는 필연
배려 용서 등 고귀한 마음 생겨나
‘오직 한 사람’을 넘을 때 큰 사랑
사랑에 빠지는 일은 하나의 사건이고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 물론 행복한 사건이고 기쁘기 짝이 없는 함정이지만 말이다. 오늘날은 이런 특별한 인간관계를 인문학적이기보다 생물학적이고 화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예외적인 호르몬 분비에 의한 것이므로 ‘사랑의 화학’으로 분석하려 한다. 하지만 일찍이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남녀의 사랑이 자연의 기만에 의한 것임을 간파한 바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각자의 의지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의지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빠지기’라는 사건에서 어떤 인문학적 의미를 끌어낼 수 없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자연과학과 자연주의적 철학관이 그 사건을 훨씬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적 성찰은 ‘뒤집어 보기’의 전략을 구사할 줄 안다. 사랑에 빠지기는 자연의 의지를 드러내지만, 그 이면을 구성하는 ‘사랑하기’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로 <순정만화>를 뒤집어 읽으면, 우리는 ‘불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순정은 상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상대에 대한 넓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온갖 배려를 마다하지 않으며, 상대가 아무리 잘못 하더라도 이해하고 용서한다. 극단의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다. 관심, 배려, 이해, 용서, 포용…. 이런 덕목들은 인간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런 덕목들이 저절로 생겨난다.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다만 이들이 순수하게 배타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특별한 상대에 대해 지고의 도덕성이 적용되는 기간은 매우 짧다(‘사랑의 화학’은 그 기간이 고작해야 2년이라고 설명한다). 순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초강도의 두뇌활동과 신경활동이 필요한데, 이는 생명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없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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