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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방학숙제 절대 챙겨주지 말라

등록 2009-02-08 15:01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진로·진학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었다. 오후 시간이었다. 청취자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었는데 주제가 “힘내라, 힘!”이었던 것 같다.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 여건에 가까운 사람한테 보내는 어려워도 힘내라는 문자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러더니 어느 학부모로부터 “밀린 방학 숙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 아들, ○○○, 힘내라, 힘!”이라는 메시지가 소개됐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몇 차례 비슷한 내용이 소개되더니 급기야는 “한 달치 밀린 일기 쓰고 있는 우리 아들, ○○○, 힘내라, 힘!”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내와 나는 둘이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방학 숙제는 미루다 하는 건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아내와 어릴 때 방학 숙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마찬가지로 방학 숙제를 미루다 미루다가 개학을 코앞에 두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마 방학책, 일기, 공작, 이런 것들을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내일이 개학인데 도저히 다 해낼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숙제를 다 하지 않고는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나는 급기야 꾀병을 부리기로 전략을 세웠다. 마침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 앉아 포도를 먹게 되었는데 이게 기회다 싶어 배탈이 날 정도로 많이 먹었다. 배탈이 났으면 양심의 가책이라도 없었을 텐데 왕성한 소화력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많이 먹었는데도 멀쩡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안 아픈 배를 부여잡고 꾀병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 학교 가면서 별수 없이 숙제를 다 제출해야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초·중·고 시절 12년 동안 개근할 수 있었는데 이날 하루 때문에 대기록을 세우지 못했던 기억이 늘 나를 웃게 한다.

아내는 개학이 다가오면 밀린 숙제를 싸가지고 서울 근교에 있는 외갓집으로 갔단다. 외사촌들 사이에 대장 또는 공주 노릇을 했기 때문에 사촌들을 동원해 순식간에 해치우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문제집 뒤에 있는 해답을 한 사람이 부르고 다른 사람이 답을 쓰는 식이었는데, 답지를 떼면 안 되기 때문에 답을 부르는 사람은 책상 밑에 들어가서 부르기도 했단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추억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학생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숙제를 밀리지 않고 미리미리 해 놓아서 개학 때 별 소동 없이 가는 학생, 또 하나는 밀린 숙제를 난리 치며 해가는 학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숙제를 하지 않고도 학교에 가는 학생이다. 실제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두 번째 부류가 가장 많지 않나 싶다. 그렇게 보면 미리미리 밀리지 않고 한 학생은 대단하다고 칭찬을 받을 만하다. 남들이 잘 못하는 일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미뤄뒀다가 난리 치고 하는 학생이나 아예 안 해 가는 학생들은? 나와 아내처럼 방학 숙제를 귀찮아하는 평범한 아이들인 것이다. 방학 숙제를 밀려서 하거나 안 해 가는 사람이 공부를 못했다거나 삶이 불행하다는 연구가 없는 것으로 봐서 크게 안타까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살짝 걱정되는 부류가 있다. 부모가 매일매일 꼬박꼬박 챙겨서 밀리지 않은 학생들이다. 미룰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다음 방학 때는 애가 자유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관리할지 그냥 두고 보자. 방학 숙제를 못 해 가서 벌을 받거나 점수가 깎일지라도 아이의 인생에서 경험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냥 지켜봐 주자.


남관희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한국코칭센터 전문코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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