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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화내기 전에 물어보기 “왜 그랬니?”

등록 2009-05-10 15:04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어느 날 아내는 아들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끊더니 막 화를 냈다. “걔가 그럴 줄 알았어.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늑장을 부리더니 결국은 덜컥 비싼 비행기표를 샀잖아. 시간을 두고 알아보면 싸게 사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오늘 들어오면 그냥 안 놔둘 거야.” 대학생인 아들이 7월에 미국에 갈 일이 있는데 그 비행기 표를 사면서 생긴 일이다.

저녁에 아들이 들어오자 낮부터 참았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으면 미루다가 이렇게 일을 그르치잖아. 엄마가 몇 번이나 얘기했어? 미리 준비했으면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잖아. 차액은 네가 다 내.” 아들은 엄마의 말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듣더니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싼 표가 다 팔려서 비싼 표를 산 것이 아니라, 가는 도시가 비행기 연결이 잘 안 되는 소도시여서 그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 설명을 듣자 아내는 머쓱해져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평소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는 게 몹시 힘든 스타일인 아내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보거나 듣는 순간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그 스토리에 따라 감정이 일어나고 그 감정에 따라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아들에게서 얼마짜리 비행기표를 샀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늦게 갔기 때문에 필시 비싼 값에 비행기표를 샀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순전히 아내의 추측이며 자신만의 스토리이다. 이런 스토리를 쓰자마자 ‘화’의 감정이 올라왔고 급기야 아들에게 화를 내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내가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나름의 근거들은 있다. 한마디로 아들에게는 전과(前過)가 있는 것이다. 일을 잘 미루고, 닥쳐서 하다가 조급하게 결론을 내렸던 예전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내도 현저하게 좋아진 아들의 모습에 고마워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자 순식간에 불신의 마음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런 대화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며칠이 지난 후 아내에게 그때 어떻게 했으면 좋았겠느냐고 물어봤다. 당연한 답을 했다. 자신의 맘대로 추측하지 않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묻기만 했어도 필요 없이 화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의 목적은 ‘서로 의미 공유하기’다. 대화를 통해 진실을 파악하고, 상대에 대해 알게 되며, 관계를 좋게 하고,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려면 나도 내 경험과 생각을 제대로 말하고 상대방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제대로 말해야 한다. 서로 상대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될 때 의미 공유의 장은 넓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을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전개해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거나 침묵을 하게 되어 의미 공유의 장을 넓힐 수가 없다.

약속한 시간을 어기고 늦게 들어왔다고 해서 화부터 낼 일은 아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만 해도 된다. 아이가 고집을 피운다고 화낼 일이 아니다. 그냥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기만 해도 된다. 물론 편안하게 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이건 내가 지어낸 스토리가 아닌가?’ 하고 점검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부정적인 스토리를 갖고 질문하는 것은 수사관의 일이지 부모의 일은 아니다.

남관희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한국코칭센터 전문코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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