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둘째 아이가 있었다. 원래 저녁에 운동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약간 고단해서 망설이던 참에 핑곗거리가 생긴 느낌이었다. 왜냐? 일하는 엄마가 저녁시간에 아이를 혼자 두고 운동하러 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운동하러 가지 말까? 너도 혼자 있는데….” 그랬더니 둘째가 뜻밖의 대답을 한다. “엄마, 주도적으로 생각하셔야죠.” 오호, 작년에 둘째를 ‘7가지 습관’이라는 리더십 교육에 보냈는데, 거기서 가르치는 첫번째 습관이 “주도적이 되라”는 내용이다. 다름 아닌 바로 그 교육을 하는 회사 대표인 내가 중학생 아들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들은 셈. 이대로 물러서면 영 모양이 안 난다. 그래서 변명 같지만 약간 덧붙여봤다. “아이,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의존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네 의견을 물어본 거지.” 그랬더니 이번엔 “제 의견요? 끊임없이 쇄신하라는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푸하하…. 이건 일곱번째 습관 이름이다. 신체적·지적·사회적·정서적으로 자신을 늘 쇄신하라는 내용이다. 거기까지 듣고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운동하러 나갔다.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같은 용어를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른바 ‘업계 용어’(jargon)라는 게 있는데, 자기들끼리는 그 독특한 의미를 느끼며 공유하는 것이다. 같은 용어를 쓴다는 게 참 강력하다. 어느 제약회사에서는 노사협상 자리에 사측과 마주 앉은 노조 대표가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그 발언은 너무 대응적인 것 같은데요!” 대응적으로가 아닌 주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이 발언은, 그 말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노사 양측이 뭔가 공유할 수 있는 베이스라인 위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래서 자기들 교섭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노사협력상도 받았다. 지난주에는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에이비콤즈라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는 뮤리엘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끈질긴 의지로 지난 10년 동안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리더십을 가르쳤고, 그 결과 아이들과 학교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보여준 학교다. 리더십을 일회적으로 가르치고 마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직접 자기 반 아이들에게 매주 한 시간씩 교과과정에 편성해서 일곱 가지 습관을 가르쳐온 것이다. 그 결과 학력이 크게 신장했고, 학교 폭력이 없어졌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밝고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나도 직접 1학년과 4학년 수업도 참관해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적어놓은 내용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었다. 나름대로 해석하여 자기 삶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나에게도 전해져서 진한 감동을 주었다. 어렵지만 비전을 가지고 끈질기게 실행해 온 뮤리엘에게서 리더의 전범을 보는 듯했다. 그 학교에선 유치원 아이들부터 최고 학년 아이들까지, ‘주도적’ ‘승승(win-win)’ ‘소중한 것 먼저 하기’ 등 어른들의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약한 아이에게 힘으로 위협한 것을 본 한 아이가 학급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건 승승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고자질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야”라고. 아이들에 맞게 유아적인 표현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면서 그 정신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옛날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명심보감 같은 걸 가르치는 것도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그때는 코흘리개 어린이들에게도 고도의 철학이 녹아있는 농축된 언어를 가르쳤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도 처음엔 잘 모르면서도 쓰고 외우고 뜻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그 정신을 자연스레 익히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어린이 같은 용어로 바꾸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주도적이 되라’는 “내가 할 수 있어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의미는 왠지 잘 살아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언어를 쉽게 풀어주지 말고 그대로 쓰는 것도 어떤 면에선 괜찮은 것 같다. 아이들한테는 나름의 감각과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잠재력이 있으니까.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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