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61돌을 맞은 10일 오전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서울 중구 무교동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을 시상하는 행위극을 펼치고 있다.(왼쪽 사진) 비슷한 시간대에 정부 기념식에 참석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민주주의] 한겨울에 맞은 세계인권의 날
10일은 61번째 세계 인권의 날이었다. 세계 2차 대전 동안 자행된 끔찍한 인권 유린을 더 이상 막기 위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 1948년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수많은 나라 헌법의 기초가 된 이 선언은 거의 국제 관습법 정도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과 국제인권기구들은 이날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둘로 나뉜 인권행사
권위 떨어진 국가인권위 시상식 우리나라에서는 기념행사가 둘로 나뉘었다. 국가인권위와 시민단체는 행사와 시상식을 따로 했다. 인권위가 독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이고,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인권위원장이 탄생하는 등 본래의 위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인권선언 61주년 시상식을 했다. 각계 저명인사들이 참석하고, ‘2009 대한민국 인권상’도 시상됐다.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유엔아동권리위원장)가 아동권리 보호에 힘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인 국민훈장을 받았다. 인권위원장 표창은 1970년대 재일교포 김희로씨 석방을 위해 앞장섰던 이재현씨(당시 이발소 주인)와 김종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부회장, 현시웅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소장이 받았다. 또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등 5곳이 단체 표창을 받았다.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열렸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와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100여 인권단체의 모임이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서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이라는 이름의 인권상을 시상했다. 인권소금상은 일제고사 불복종운동, 학생인권 실태조사 등을 벌여온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장애인에게 시설이 아닌 주거지를 달라던 지체장애인 김동림(43)씨와 그의 친구들 등 18개 단체와 개인이 받았다. 이 행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헌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권추락상’도 받는 ‘명예’를 누렸다. 아쉽게도 당사자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두 행사는 주최, 참여자, 상을 받은 사람 모두 차이가 아주 컸다. 크고 멋진 건물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저명인사들 속에 쟁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행사. 반면에 길바닥에서 청소년들과 장애인,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행사. 이리저리 초라하고 그 이름도 소박하지만 인권위 건물 앞마당에서 벌어진 시민단체의 기념행사가 더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던 것은 왜일까. 인권을 일궈온 국민들 우리나라는 4.19 혁명 이후 잠깐의 자유를 얻었다가 그 후 약 30년 가까이 군사독재에 시달렸다. 인권은 커녕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민주주의 암흑기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수많은 이들의 피를 대가로 우리에겐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을 부를 기회가 생겼다. 참여정부 시기에 언론자유는 가히 그 꽃을 피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대통령을 대놓고 욕하고 짓밟아도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신다면 얼마든지 욕하셔도 좋습니다’ 라는데, 말 다했지 않는가. 인권도 조금씩 조금씩 발을 내딛어 우리의 곁에 다가왔다. 1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매를 맞고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아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인권 취약계층인 청소년에게도 인권의 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인권은 이제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물론 정권 탓에 갑자기 청소년 인권이 급격하게 후퇴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발을 내딛던 전체적인 인권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일제고사와 고교등급제 시도는 원래부터 좋지 않던 청소년 인권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촛불은 물대포와 곤봉에 맞고 방패에 찍혔다. 대통령을 우스갯거리로 만든 만화가는 잡혀갔다. 언론악법은 이제 "표현의 자유 =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 이라고 알려줄 것이다. 이들을 감독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력이 축소되고 인권위원장은 인권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교체되는 등 정부에게 많은 시련을 받고 있다. 올초 1월 20일의 용산참사에서는 이 정부가 인권에 대해 가진 태도가 잘 드러났다. 이제 민중은 인권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 이전에 생존권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50년간 시민 스스로의 손으로 군부독재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일궈내던 대한민국. 그 민주화가 시민이 스스로 뽑은 정권에게 송두리째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는 지금, 참으로 고맙고 부끄럽게도 외국의 지식인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나섰다. 세계 지식인 시국선언, "반민주적인 탄압을 중단하라"
노암 촘스키 MIT 명예교수, 하워드 진 미국 보스턴대학 명예교수, 조지 갤러웨이 영국 하원의원 등 진보적인 세계 지식인 173명이 ‘이명박 정부는 반민주적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 지식인들이 우리나라의 인권 실태를 걱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지식인들은 대부분 지난 1월 ‘촛불 구속자 석방과 수배 해제 촉구’ 공동성명에 참가했던 인사들이다.
얼마나 답답해 보였으면 그들이 직접 나섰을까. 당사자인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답답할까. 경제가 죽었다길래 살리라고 뽑아놨더니 경제를 넉다운 시키고 이젠 민주주의를 두드려 팬다. 참으로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청소년, 장애인 등 인권 취약계층에서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수많은 국민들이 진실을 보는 눈을 틔워 간다. 외국의 지식인들마저 우리를 걱정하고 힘을 실어준다. 우리는 지금 시련을 겪고 있다. 이 시련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피를 흘리며 이겨낼 때 우리는 수백년의 인권역사를 가진 유럽에 뒤지지 않는 민주주의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대한다. 아니, 확신한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암울하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 말 외에는 형용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짙고 암울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을수록 나는 기대된다. 희망이 보인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김용제 기자 takross@daum.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권위 떨어진 국가인권위 시상식 우리나라에서는 기념행사가 둘로 나뉘었다. 국가인권위와 시민단체는 행사와 시상식을 따로 했다. 인권위가 독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이고,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인권위원장이 탄생하는 등 본래의 위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인권선언 61주년 시상식을 했다. 각계 저명인사들이 참석하고, ‘2009 대한민국 인권상’도 시상됐다.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유엔아동권리위원장)가 아동권리 보호에 힘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인 국민훈장을 받았다. 인권위원장 표창은 1970년대 재일교포 김희로씨 석방을 위해 앞장섰던 이재현씨(당시 이발소 주인)와 김종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부회장, 현시웅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소장이 받았다. 또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등 5곳이 단체 표창을 받았다.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열렸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와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100여 인권단체의 모임이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서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이라는 이름의 인권상을 시상했다. 인권소금상은 일제고사 불복종운동, 학생인권 실태조사 등을 벌여온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장애인에게 시설이 아닌 주거지를 달라던 지체장애인 김동림(43)씨와 그의 친구들 등 18개 단체와 개인이 받았다. 이 행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헌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권추락상’도 받는 ‘명예’를 누렸다. 아쉽게도 당사자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두 행사는 주최, 참여자, 상을 받은 사람 모두 차이가 아주 컸다. 크고 멋진 건물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저명인사들 속에 쟁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행사. 반면에 길바닥에서 청소년들과 장애인,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행사. 이리저리 초라하고 그 이름도 소박하지만 인권위 건물 앞마당에서 벌어진 시민단체의 기념행사가 더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던 것은 왜일까. 인권을 일궈온 국민들 우리나라는 4.19 혁명 이후 잠깐의 자유를 얻었다가 그 후 약 30년 가까이 군사독재에 시달렸다. 인권은 커녕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민주주의 암흑기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수많은 이들의 피를 대가로 우리에겐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을 부를 기회가 생겼다. 참여정부 시기에 언론자유는 가히 그 꽃을 피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대통령을 대놓고 욕하고 짓밟아도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신다면 얼마든지 욕하셔도 좋습니다’ 라는데, 말 다했지 않는가. 인권도 조금씩 조금씩 발을 내딛어 우리의 곁에 다가왔다. 1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매를 맞고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아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인권 취약계층인 청소년에게도 인권의 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인권은 이제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물론 정권 탓에 갑자기 청소년 인권이 급격하게 후퇴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발을 내딛던 전체적인 인권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일제고사와 고교등급제 시도는 원래부터 좋지 않던 청소년 인권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촛불은 물대포와 곤봉에 맞고 방패에 찍혔다. 대통령을 우스갯거리로 만든 만화가는 잡혀갔다. 언론악법은 이제 "표현의 자유 =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 이라고 알려줄 것이다. 이들을 감독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력이 축소되고 인권위원장은 인권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교체되는 등 정부에게 많은 시련을 받고 있다. 올초 1월 20일의 용산참사에서는 이 정부가 인권에 대해 가진 태도가 잘 드러났다. 이제 민중은 인권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 이전에 생존권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50년간 시민 스스로의 손으로 군부독재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일궈내던 대한민국. 그 민주화가 시민이 스스로 뽑은 정권에게 송두리째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는 지금, 참으로 고맙고 부끄럽게도 외국의 지식인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나섰다. 세계 지식인 시국선언, "반민주적인 탄압을 중단하라"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한 용산참사 철거민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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