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32. 이미지는 어떻게 현실을 이길까? 사진에서 배우다
33.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부유한 노예의 역설
34. 손자와 클라우제비츠, 병법(兵法)의 대가들은 무엇이 다를까? “앞으로 영국은 지금보다 8배 이상 잘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1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면 된다. 모든 것이 충분하기에 돈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비난받을 것이다.” 1930년, 경제학자 케인스가 예상한 100년 뒤 영국의 모습이다. 케인스의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렸다. 그의 말대로, 경제는 이미 8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선진국 사람들 대부분은 1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한다. 돈 욕심도 사라지지 않았다. 못살겠다는 한숨도 곳곳에서 새어 나온다. 삶은 여전히 신산스럽다. 이쯤 되면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기독교 성경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부자일수록 더 많은 돈을 갖고자 아득바득한다. 잘사는 나라에서의 삶도 힘든 이유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삶을 살기는 가난뱅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이미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조금만 마음 놓았다가는 삶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릴 테다. 못사는 나라 값싼 노동자들의 ‘경쟁력’은 잘사는 나라 노동자들의 급여를 점점 떨어뜨린다. 자기 권리를 내세웠다간 훨씬 값싼 일손을 쓰겠다는 윽박지름만 되돌아올 테다. 확실히 인류는 예전보다 잘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삶은 더욱 치열해지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그 이유를 조목조목 풀어주는 책이다. 경제가 돌아가려면 사람들에게 돈 욕심이 있어야 한다. 가난해도 좋다며 늘어져 있는 사회에서는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근로자들이 악착같이 일하지 않을뿐더러, 상품을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들이 탐욕을 부려도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번 것을 흥청망청 쓰려고만 해서는 사업에 필요한 목돈이 모아지지 않는 탓이다. 기독교 정신은 사람들의 돈 욕심을 일깨워준다. 그러면서도 욕심을 적절하게 눌러주기도 한다. 성경에는 주인의 달란트(돈)를 맡은 하인의 비유가 나온다. 뛰어난 하인은 주인이 맡긴 돈을 잘 굴려서 한 재산을 모아놓는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깊은 이들은 신이 주신 능력을 한껏 펼쳐서 많은 부를 쌓는다. 신에게서 얼마나 사랑받는지는 얼마나 노력해서 많은 재산을 쌓았는지로 가려질 테다. 그러니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으려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절약과 검소한 삶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부자도 열심히 일하고 아끼며 살기를 바란다. 따라서 재산은 끊임없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인 돈은 ‘투자를 위한 자본’이 되어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정신’은 원래부터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끊임없이 일하는 삶을 강조한다. 부자가 된다 해도 평생을 아득바득 살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우리의 삶이 허덕대는 이유를 좀 더 현실적으로 설명해준다. 안정된 직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한 세상, 높은 인건비는 늘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기업들은 싼 값에 부리고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인력들을 바라기 마련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미래가 불안해질수록 사람들은 돈을 모으는 데 더 매달린다. 일자리가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초는 날씨 좋을 때 말려야 한다.” 돈도 그렇다. 실업자가 늘어날수록 근로시간도 되레 늘어나는 까닭이다. 소득의 차이도 점점 크게 벌어진다.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들만 돈을 벌게 되어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지식으로 변화를 이끄는 ‘기크’(geek)들과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어 새로운 시장을 여는 ‘슈링크’(shrink)들. 나머지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신세다. 발전하는 기계는 사람들의 일손을 필요 없게 만든다. 게다가 세계화한 경제는 노동자들의 수입을 점점 떨어뜨린다. 중국과 인도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적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임금 높은 직원들을 써야 할 까닭이 있겠는가. 반면, 고급 인력을 데려오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들을 뽑으려면 급여를 많이 주고 좋은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그만큼 평범한 근로자들의 몫은 더더욱 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러름 받는 고급 노동자들은 행복할까? 그들도 삶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네들 사회의 경쟁은 무척 치열하다. 높은 연봉을 받는 이들일수록 더 오래도록 힘들게 일해야 한다. 게다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삶이 추락했을 때의 충격이 큰 법이다. 잘사는 이들과 못사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세상, 앞서가는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뒤처진 이들에 못지않다. 점점 일은 삶을 잡아먹고 있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우러러보게 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열심히 일하는 부자들은 존경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도덕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부자라도 마음을 놓았다가는 금세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달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1930년, 경제학자 케인스는 100년 뒤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했다. 확실히 우리는 점점 부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부자들이 누리던 여유로움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우리는 로버트 라이시의 책 제목처럼 ‘부유한 노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가장 싼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가장 부자다.” 미국의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역사에서 현명했던 자들은 가난하고 검소한 삶을 끊임없이 강조하곤 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려면, 소박한 생활을 아름답게 여기던 ‘잊혀진 지혜’들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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