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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모든 것을 파괴한 '버섯모양 구름'

등록 2010-05-30 16:14수정 2010-05-30 16:28





중학독서논술 / [난이도 수준-중2~고1]

19. 새만금 간척에 대한 다양한 견해
20. 두 개의 원자폭탄
21. 적절한 인구는 몇 명인가

■ 독서 자료실

저자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여러 연구를 진행했다. 1999년 세계 유수의 경제연구소들의 지원을 받아 미래의 이산화탄소 산업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2001년에 중국 정부와 협력해 미래의 중국 에너지 정책을 예측하기도 했다. 저서로 <시크릿 하우스>, <일렉트릭 유니버스> 등이 있다.

내용 E=mc²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집약한 공식이다.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당시의 세계관을 뒤집은 독창적 발상이었다. 이 책은 그 위대한 공식이 성립되기까지의 역사를 에너지, 등호, 질량, 빛의 속도, 제곱 등 공식의 각 요소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E=mc²의 유도 과정이나 아인슈타인이 쓴 논문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물리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대중에게 현대 과학의 단면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E=mc²은 원자력발전소, 연기 탐지기, 비상구 표시등, 의학적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PE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가이거 계수기, GPS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인류의 편익을 늘리는 용도로 응용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식의 위력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손꼽히는 원자폭탄 투하였다. 원자폭탄은 핵이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농축한 후 충격을 가해 연쇄적인 핵분열 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로 만들어진 신무기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결성된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해 우라늄, 플루토늄을 원료로 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고, 각각 일본의 산업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논술 포인트 핵분열의 원리는 대량 살상 무기인 폭탄 제조에 적용되기도 했지만, 원자력 발전이라는 형태로 인류의 삶에 기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다만 그것을 쓰는 과정과 결과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런 견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500자 안팎)

저자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이다. 1959년 예일대를 졸업한 후 포드 재단, 구겐하임 재단, 앨프레드 슬론 재단 등의 후원으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버드대와 MIT에서 방문 교수를 역임했다. 1987년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 협회상을 받았으며, <원자폭탄 만들기>로 198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저서로 수소폭탄 개발을 다룬 <다크 선(Dark Sun)>, 광우병의 비밀을 추적한 <죽음의 향연> 등이 있다.

내용 E=mc²에서 만났던 과학자 각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다. 폴라니, 마이트너, 하버, 실라르드, 러더퍼드, 보어, 가이거, 채드윅, 페르미 등 현대 물리학자들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떤 스승을 만나 어떤 분야에서 업적을 내고, 결국 원자폭탄 제조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 세계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을 지휘하기 위해 미국은 어떤 체제를 구성했는지, 각기 다른 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가 교묘히 결합해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정리돼 있다.

당시 과학자들이 지녔던 독일에 대한 증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 등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틈 없이 하나의 용광로에 던져졌다. 원자폭탄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현대과학의 총체였던 것이다.

원폭 제조 가능성이 확실해지자 그것이 가져올 재앙을 예견한 몇몇 과학자들은 끝까지 개발을 막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다음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통솔력으로 이 거대 과학집단이 목표 달성에 성공하도록 이끌었는데, 원폭 투하 후 엄청난 절망과 후회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죽음의 신’이 됐다고 자책했다. 그는 후에 매카시즘 열풍에 말려 간첩 혐의까지 받게 됐다.

논술 포인트 이 책에는 현대 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여러 과학자가 등장한다.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한 사람 꼽고, 어떤 점에서 인상이 깊었는지 서술해 보자. (300자 안팎)


■ 심화 자료실

미국 원자력 기술의 메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지대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는 미 원자력 기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 박사가 이끄는 원폭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실이 바로 이곳이었다. 43년에 탄생한 이 연구소는 45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런 실적보다는 소련 스파이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미-소 냉전이 막 시작되던 1949년 소련이 원폭 실험에 성공하자, ‘로젠버그 부부’ 스파이 사건으로 알려진 대형 간첩논쟁에 휘말렸던 것이다. 50년 세상에 드러난 로젠버그 사건은 결국 원폭 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오펜하이머마저 간첩혐의를 받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아직도 숱한 부분이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이 사건은 미국 내의 광적인 반공 열풍인 ‘매카시즘’과 국제적으로는 미-소간의 한 치 양보도 없는 핵 경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 신문읽기

“핵 위험 눈으로 확인…세계에 알릴 것”

“핵무기는 인류 공동의 적이라는 것을 한국에 와서 확인했어요. 이제 돌아가면 핵무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한국의 피해자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합니다.”

아랍권의 대표적 언론사인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보도하기 위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군에 취재진을 파견했다. 1945년 8월 일본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당한 한국인 7만여 명 가운데 60% 정도의 출신지인 합천, 이곳에 원폭 2세 환우들의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이 문을 열었다는 지난달 초 <한겨레> 보도를 보고 찾아온 것이다.

말레이시아 지국 소속의 라우라 카일 기자 등 취재진은 지난 7~8일 이틀 동안 피폭으로 두 눈이 멀어버린 원폭 직접피해자, 피폭 후유증을 물려받아 다운증후군을 앓는 형제, 원폭 2세 환우끼리 결혼한 부부 등을 취재했다. “1945년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했을 때 왜 일본에 있었나요?”, “원폭 피해자에게는 어떤 증세가 나타나며 그것이 핵폭탄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원폭 2세 환우들이 결혼을 할 때 편견과 장애가 없나요?”, “부모가 사망한 뒤 원폭 2세 환우들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한국 정부는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어떤 지원을 했나요?”, “일본과 미국 정부는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배상했나요?”

취재진의 관심은 원폭 피해자들의 어려운 처지와 한국·일본·미국 정부의 지원과 보상에 모였다. 이들은 원폭 피해자들의 밝은 표정과 긍정적 태도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합천 평화의 집’ 소장인 혜진 스님(제주 마라도 기원정사 주지), 강제숙 ‘원폭 피해자 및 원폭 2세 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 공동대표, 한정순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회장 등의 대답은 안타까움만 자아냈다.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과 미국 정부의 배상은커녕 한국 정부의 제대로 된 관심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를 이어가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전 합천지부장은 취재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송아지를 보여주며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핵폭탄의 피해가 피폭 당사자는 물론 2세, 3세 등 자손에게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너무 놀랍고, 왜 한국 정부와 국회마저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군요.”

라우라 카일 기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감축안 발표, 남북한이 참여하는 6자회담 등 핵무기가 최근 전 세계 관심 사안으로 떠오른 상황”이라며 “이달 중순 기획보도로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을 소개함으로써 핵무기가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전 세계에 분명히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한겨레> 2010년 4월 8일치

논술 포인트 핵폭탄의 피해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자손에게 계속 이어진다. 어떤 방식으로 후유증이 나타나는지 조사해 정리해 보자. (300자 안팎)


■ 문화 콘텐츠

다큐드라마 <카운트다운 히로시마>(BBC, 2005)

2차세계대전을 마무리한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건의 전모를 생존자들의 증언 및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다큐드라마로 2006년 국제에미상(다큐부문) 및 국제반프TV페스티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 임무를 맡았던 조종사 폴 티베츠와 승무원 R. 젭슨 소위가 사망하는 등 탑승자 12명 가운데 11명이 죽었고, 이제 생존자는 항법사였던 시어도어 밴 커크가 유일하다. 이 다큐에서는 생존 당시 폴 티베츠와 젭슨 소위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1945년 5월 8일 연합국은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에서는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7월26일 독일 포츠담에서는 미·영·중 3개국 수뇌회담의 결과로 일본 항복을 요구하는 문안에 합의하고, 일본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일본 측은 이를 조용히 묵살하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전쟁을 계속할 의지를 보였다. 이에 일본 본토에서의 전면전을 피하고, 항복을 받아낼 위협적 수단으로 원폭 투하가 결정됐다.

1945년 8월6일 폴 티베츠 대령은 폭격기를 몰고 기지를 이륙했다. 히로시마는 거점 군사도시로 미군 폭격을 받지 않은 곳으로 폭탄의 위력을 정확히 계측할 최적의 도시였다.

원폭 투하 후 착륙하자마자 훈장을 받는 군인들의 미소 저편, 히로시마의 상황은 지옥이었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모두 타들어간 사람들이 유령처럼 거리를 이리저리 헤맸지만 온전한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병원에는 치료할 만한 도구가 아무것도 없었다. 나흘 후 나가사키에 또 하나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조준 실패로 히로시마보다 피해가 적었지만 적어도 5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8월15일 일본은 천황을 통해 종전조서를 발표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논술 포인트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미국 병사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신무기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투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쪽의 대립된 입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해 보자.(500자 안팎)


■ 논리적 글쓰기

[논제] 제시문에는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보인 여러 과학자들의 반응이 나타나 있다. 만약 내가 당시 과학자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추론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500자 안팎)

맨해튼 프로젝트에 지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정도는 그들의 애국심이 작용한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오펜하이머가 내세운 엄숙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를 과학자들이 직접 운영할 것이며, 그 운영 방식 또한 과학자들이 가장 익숙해 있는 개방적인 토론의 정신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기술자들에게는 그들이 과학자들과 한 팀을 이루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작업하게 될 것이며, 어떤 과학적 개념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등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다짐을 주었다. (중략)

1944년 하반기가 되자 이런 시스템은 실전 투입이 가능한 폭탄의 제조를 향해 눈에 띄는 진척을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맨해튼 프로젝트는 처음으로 심각한 양심상의 위기에 직면했다. 전투부대를 따라서 독일로 잠입했던 미국의 과학 첩보 부대원들이 독일의 과학자 바이체커가 남긴 과학 관련 비밀 문건을 입수한 것이다. 그는 하이젠베르크가 주도한 ‘우라늄 클럽’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물리학자였다. 그 문건에 따르면 과학적인 측면에서 독일인들이 철저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치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나치의 원자폭탄 보유라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려는 동기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그럴듯한 명분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로브즈는 미국이 아직도 일본과 절체절명의 전투를 치르고 있으며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그 폭탄을 사용한다면 수많은 미국 병사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을 설득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서 일을 그만둔 과학자는 물리학자 요세프 로트블라트 한 명뿐이었다. 정치적 좌파였던 로트블라트는 이제 그 폭탄의 유일한 정당성은 소련을 협박하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변화된 주변 환경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해나갔다. 실라드를 비롯하여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그 폭탄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 폭탄을 일본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곳에서 시범적으로 폭발시켜 보자고 다급하게 권고했다. 그렇게 하면 도시 하나를 날려서 엄청난 사람들을 살상시키는 불상사 없이 일본의 항복을 순순히 유도할 수 있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미국인 해럴드 유리를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은 그 폭탄이 전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로 이용될 수 있도록 반드시 제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전 세계 각국의 과학 공동체가 결국에는 원자폭탄의 제조 비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원자폭탄의 보유 여부는 미국에게 무척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니스트 볼크먼,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답안 작성의 길잡이

제시문 앞부분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내용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상적인 연구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에 따라 오펜하이머가 제시한 조건은 뛰어난 과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프로젝트의 결과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과학자들은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시험장이었다. 고민 끝에 과학자들은 나름의 가치관과 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제시문 후반부는 그런 다양한 결정이 예시되어 있다.

글을 쓸 때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욕망, 과학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약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추론해 서술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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