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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반복강박’

등록 2010-06-13 15:50수정 2010-06-13 15:51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

37. 주관적인 과학과 객관적인 예술은 가능할까?-‘통섭’에게 묻는다

38. “나는 왜 나쁜 습관을 못 버릴까?” 프로이트에게 묻는다면

39. 붉은 악마는 종교가 될 수 있을까? - 열정에게 종교를 묻는다면


“개 버릇 남 못 준다.” 이 속담은 절대 빈말이 아니다. 망하는 사람은 계속 망한다. 그들은 절대 안될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기다가 무너지곤 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상한 사람과만 사귀는 친구는 또 어떤가? 마음고생 심하게 하고서도, 다음에도 또 비슷한 부류의 사람에게 끌린다. 직원을 잘못 뽑는 사장은 계속 비슷한 실수를 거듭하고, 왕따 당했던 학생은 또다시 왕따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인간은 쾌락원리에 따라 산다고 믿었다. 고통을 줄이고 긴장을 늦추는 쪽으로 삶을 이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고통만 주는 실수를 되풀이할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들은 반복강박에 빠져 있다. 강박이란 결국 고통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수를 멈추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자 데니스 홀리는 반복강박을 ‘안전지대’(Comfort Zone)로 설명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학대받은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한 번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집안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불안하고 폭력으로 가득한 가정이 되레 당연하다. 물론, 자신은 집에 있는 일 자체가 무척 고통스럽다. 그러면서도 불행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모른다. 한 번도 지금보다 나은 상태를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대가 이루어지는 가정은 이 사람에게 안전지대가 된다. 옛날부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따사롭고 사랑 넘치는 분위기는 되레 부담이 된다. 행복한 상태가 언제 사라져 버릴지 불안한 까닭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나쁜 사람과만 계속 사귀는 이들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똑같은 이야기에 등장인물만 계속 바뀌는 연극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미워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동정심을 자아내는 술에 빠진 남자에게 끌리는 식이다.

반복되는 실수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문제의 겉모습만 보지 말아야 한다. 진짜 원인은 항상 깊숙한 데 숨어 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부터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어설픈 연애를 자꾸만 반복하고 있는가? 둘 사이가 무너질 때마다 인정 없고 몰상식한 상대방 탓만 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 늘 인정과 애정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에 있을 수도 있다.

일중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가정생활과 친구관계는 일 때문에 모두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정말 할 일이 많기에 생활이 망가졌을까? 오히려 허술한 인간관계와 가족과의 어색한 대화를 피하기 위해 바쁘다는 ‘핑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진짜 문제를 짚어냈다 해도 실수는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노력 없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끊임없이 깨닫고 나아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심리학자들은 거듭된 깨달음과 노력, 즉 훈습(薰習, working through)을 강조한다.

데니스 홀리는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예비 파탄자, 예비 중독자라고 해도 좋다.” 그만큼 상처 없이 자라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너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너는 능력도 많고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야”, “삶은 어려운 일로 가득하단다. 하지만 열심히 살면 인생은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될 거야”같이 힘을 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좋은 안전지대를 갖게 된다. 따뜻하고 밝고 배려 넘치는 분위기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가정의 모습은 어떤가? 많은 가정에서 아빠 엄마는 아득바득 살아간다. 아이와 따뜻한 시간을 가질 여유는 점점 사라져 간다. 부모 모두 집에 있어도 사정은 별다르지 않다. 몸만 같이 있을 뿐, 가족들은 모두 제각각 삶을 꾸린다. 지친 아빠는 집에 와서도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엄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끼고 산다. 이런 모습이 우리네 가정에서 드문 풍경이라 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아이는 결국 부모의 불행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부모의 관심을 못 받는 아이는 부모처럼 중독거리를 찾을 테다. 아이는 ‘여유 시간’을 없애려 학원과 학원을 맴돌며 하루를 보낸다. 일중독에 빠진 부모처럼 말이다. 텅 빈 가슴을 컴퓨터 게임으로 달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과연 행복한 삶을 꾸려가게 될까? “불행한 아이는 불행한 어른이 되고 만다.” 데니스 홀리의 절망적인 말은 우리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에서 ‘죽음을 향한 본능’(thanatos)을 이끌어 내었다. 인간은 긴장 없는 편안한 상태를 꿈꾼다. 어찌 보면 죽음은 가장 편안한 상태다. 죽고 나면 더 이상 고통도, 위기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한 본능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이다.

생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요즘이다. 스트레스는 늘 하늘을 찌른다. 과연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기만 하면 행복에 이를까? 일중독자들은 일이 사라질까 두려워한다. 일에서 놓여나면 무엇을 할지 두려운 탓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뜨거운 경쟁은 우리 아이들을 일중독자가 되도록 몰아간다. 성공을 놓친 아이들은 일이 아닌 다른 무엇에라도 중독되어 버릴 테다. 숨 돌릴 틈 없는 경쟁은 자꾸만 프로이트의 ‘죽음을 향한 본능’을 떠올리게 한다. 열심히 살기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반복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반복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윤희기, 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반복의 심리학>

데니스 홀리 지음, 권경희 옮김 흐름출판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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