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우리말 논술 10.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중학진로독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 이 책, 알고 보면 재미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작가 포리스트 카터는 1925년 미국 앨라배마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카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해군에서 근무했으며, 콜로라도대에서 공부했다. 첫 작품인 〈텍사스로 가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자전적 소설로, 발간 초기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그가 죽고 12년이 지난 1991년에 제1회 애비상(ABBY)을 받았다. 〈조지 웨일스의 복수의 길〉 〈산 위에서〉(제로니모)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79년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용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 무렵. 주인공 ‘작은 나무’는 다섯살 때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 혈통을 이어받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속에서 살게 된다. ‘작은 나무’는 사냥과 농사일, 위스키 제조 등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자연에서 얻는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점차 터득해 나간다.
체로키족들은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필요할 때만 동물을 죽일 뿐 결코 재미 삼아 사냥을 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가장 작고 약한 동물만을 죽인다. 그래야 크고 강한 동물들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는 할머니한테서 읽기와 쓰기, 산수 등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셰익스피어나 워싱턴 전기 등의 책을 할머니가 낭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들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강제로 이주당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생계 유지를 위해 위스키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당시 위스키 제조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는 갑자기 들이닥친 감시관들로부터 유일한 생계 수단인 위스키 증류기를 지키기 위해 무거운 위스키 병을 둘러메고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다.
‘작은 나무’가 겪은 일 중에 가장 슬픈 일은 억지로 고아원에 보내진 것이다. ‘작은 나무’의 조부모가 교육받지 못했고 인디언인데다 외할아버지가 밀주 제조 혐의로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전과자여서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은 나무’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목사한테서 사생아라 불리며 멸시받고 가혹하게 매를 맞는다.
다행히 할아버지 친구인 윌로 존의 도움으로 ‘작은 나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도 잠시 윌로 존의 죽음에 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 나무’는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 깊이 생각하기 원제목(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 말해주듯 주인공 ‘작은 나무’가 세상을 배워가는 성장소설이다. ‘작은 나무’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은 단연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자연의 이치란 누구나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꿀벌들은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하기 때문에 곰한테 너구리한테 체로키한테 뺏기는 거라며, 사람들도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체로키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고,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은 것도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고 새끼들을 키우는 때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영혼에 관해 들려준다.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 다른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만약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남을 해칠 일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영혼의 마음을 크고 튼튼하게 가꾸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이해는 사랑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심오한 삶의 철학이다. 현대인들이 인디언의 생활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책 속에서 등짐장수 와인씨가 말하는 ‘교육’에 대한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교육이란 것은 두 줄기를 가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한 줄기는 기술적인 것으로 자기 직업에서 앞으로 발전해 가는 법을 가르친다. 나머지 하나는 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배우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다. 결국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쓰게 되기 때문이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체로키족의 모습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비해 놓고 조용히 맞이한다. 할아버지의 친구 윌로 존은 살았을 적 소나무가 많은 씨앗을 퍼뜨려 따뜻하게 해주고 감싸주었으니 이젠 소나무 옆에 묻혀 소나무의 거름이 되겠다 한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생전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하던 그곳, 자신만의 비밀장소에 묻힌다. “나는 가야 한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작은 나무’에게 남긴 편지 내용이다.
■ 책 속에 나 있다 편견속에 자기 마음을 가두지 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자주 점검하기 이 책 곳곳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백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백인 기독교도는 ‘작은 나무’에게 병든 송아지를 속여 파는가 하면, 백인 소작농은 자신의 딸이 인디언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길거리에서 딸에게 심한 매질을 한다. 인디언 같은 이교도 야만인한테는 절대 동정 따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나무’를 강제로 고아원에 보낸 것도 인디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그들 눈에는 ‘작은 나무’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낙오자로 보였다. 고아원 원장은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낳았다고 해 작은 나무를 사생아로 취급하고, 구원의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가 하면 수업 시간에 사슴 두 마리가 찍힌 사진을 보고 작은 나무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교사는 ‘작은 나무’를 추잡한 사생아라고 욕한다. 이 일로 인해 작은 나무는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인디언을 무지하고 야만스럽다고 여기는 백인들의 이런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프레임은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가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만을 본다. 즉,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 왜곡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마치 ‘작은 나무’가 살았던 당시 백인들이 인디언의 교육 방식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기독교식 교육만이 옳다고 믿었던 것처럼.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세상에서 얻어내는 결과물은 달라진다. 인디언은 야만스럽고 무지하다는 프레임을 갖고 있으면 영영 인디언들의 훌륭한 생활 철학을 배울 수 없고, 백인들의 부당한 태도를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직업에 대한 프레임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는 매체 특성 때문에 주인공을 멋진 사람으로 그리기 때문에 주인공의 직업이 처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힘들다. 또 사회에서 통념으로 믿는 것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시청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대로 인식하게 된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직원들을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부른다. 청소하는 이들도 배우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청소하는 일은 천하다는 인식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프레임>이라는 책을 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작가가 작품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가 사진기의 성능에 있다기보다 ‘멋진 장면’을 포착하지 못한 데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프레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좋은 프레임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 나대로 책 읽기 “인디언들 죽음에 대한 태도 안잊혀져”
개웅중 1학년 김세영
이 책은 처음부터 제목이 맘에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보니, 제목대로 ‘작은 나무’의 일생에서 가장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읽는 동안에 내 영혼도 따뜻해진 느낌이 든 것은 분명하다.
할아버지는 매일 산에 오를 때마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한다. 산이 어떻게 깨어난다는 것인지 다음에 나도 산에 가면 아침에 산이 깨어나는 장면을 꼭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때로는 혹독한 겨울도 필요하다는 할아버지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얼음은 약한 나뭇가지만을 골라서 꺾어버리기 때문에 강한 가지들만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게 된다. 또 겨울은 알차지 못한 도토리와 밤, 호두 따위들을 쓸어버려 산속에 더 크고 좋은 열매들이 자랄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달이 찬 정도를 보고 농사짓는 시기를 정한다. 새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멀리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거나 앞으로 일어날 징조를 알 수도 있다. 또 봄과 여름에는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지 않는다. 마구잡이로 사냥을 하면 인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얻어야 한다는 게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체로키족의 삶이 정말 존경스럽다. 최첨단 휴대폰을 사용하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그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어디에 묻힐 것인지도 결정한다. 그들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대지에 거름이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는 참 힘들 것 같다. 나는 죽음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말은 계속 잊히지 않는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슬프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비록 5년이라는 짧은 세월이었지만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면서 마음도 몸도 모두 성장했다. 나는 잘 크고 있는 것일까? ‘작은 나무’는 커서 작가가 되었는데 나는 커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 전에 <위험한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심리를 잘 알아서 치료해 주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나무’의 할머니는 밤톨만한 크기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처럼 산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 덩어리로만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렸거나 삶에 희망을 잃은 사람,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나무’가 영혼이 따뜻한 사람이 된 것은 자연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자연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면 병이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더 찾아보고 궁리해 보아야겠다.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나의 권리를 말한다〉
전대원 지음/뜨인돌 이 책에서 할아버지는 정치가들을 사기꾼이라며 매우 싫어한다. 그것은 미국 정부가 체로키족의 땅을 빼앗고 강제로 이주시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800년대 이후 체로키족은 백인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는데, 체로키족 영토에서 금이 발견되자 백인들이 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체로키족은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체로키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주 관리들은 법원의 판결을 무시했고 결국 1830년 체로키족은 백인 군인들에 의해 영토에서 쫓겨나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들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백인들은 체로키족의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결국 체로키족은 천명씩 무리를 지어 걸어서 서부로 이주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정부군 병사들이 사흘에 한번씩만 매장할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이들은 죽은 사람들을 직접 안고 걸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아들이 죽은 부모를, 어미가 죽은 자식을 안고 걸어간 이 길을 사람들은 ‘눈물의 여로’라 불렀으나, 체로키들은 결코 울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체로키족의 역사를 보면 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어떻게 해야 법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좀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나의 권리를 말한다>의 저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던진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지 누가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등학교에서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 귀에 익숙한 권리 항목들을 소개하면서 그 권리들이 실제 생활 안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과연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이뤄진다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과 같은 학습방법은 행복추구권에 배치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천부인권, 모성권, 교육권, 양심적 병역거부, 피의자 인권, 노동기본권, 종교의 자유,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권리들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사례들을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포리스트 카터 지음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작가 포리스트 카터는 1925년 미국 앨라배마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카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해군에서 근무했으며, 콜로라도대에서 공부했다. 첫 작품인 〈텍사스로 가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자전적 소설로, 발간 초기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그가 죽고 12년이 지난 1991년에 제1회 애비상(ABBY)을 받았다. 〈조지 웨일스의 복수의 길〉 〈산 위에서〉(제로니모)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79년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용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 무렵. 주인공 ‘작은 나무’는 다섯살 때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 혈통을 이어받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속에서 살게 된다. ‘작은 나무’는 사냥과 농사일, 위스키 제조 등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자연에서 얻는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점차 터득해 나간다.
체로키족들은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필요할 때만 동물을 죽일 뿐 결코 재미 삼아 사냥을 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가장 작고 약한 동물만을 죽인다. 그래야 크고 강한 동물들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는 할머니한테서 읽기와 쓰기, 산수 등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셰익스피어나 워싱턴 전기 등의 책을 할머니가 낭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기도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깊이 생각하기 원제목(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 말해주듯 주인공 ‘작은 나무’가 세상을 배워가는 성장소설이다. ‘작은 나무’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은 단연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자연의 이치란 누구나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꿀벌들은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하기 때문에 곰한테 너구리한테 체로키한테 뺏기는 거라며, 사람들도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체로키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고,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은 것도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고 새끼들을 키우는 때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영혼에 관해 들려준다.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 다른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만약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남을 해칠 일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영혼의 마음을 크고 튼튼하게 가꾸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이해는 사랑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심오한 삶의 철학이다. 현대인들이 인디언의 생활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책 속에서 등짐장수 와인씨가 말하는 ‘교육’에 대한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교육이란 것은 두 줄기를 가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한 줄기는 기술적인 것으로 자기 직업에서 앞으로 발전해 가는 법을 가르친다. 나머지 하나는 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배우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다. 결국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쓰게 되기 때문이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체로키족의 모습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비해 놓고 조용히 맞이한다. 할아버지의 친구 윌로 존은 살았을 적 소나무가 많은 씨앗을 퍼뜨려 따뜻하게 해주고 감싸주었으니 이젠 소나무 옆에 묻혀 소나무의 거름이 되겠다 한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생전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하던 그곳, 자신만의 비밀장소에 묻힌다. “나는 가야 한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작은 나무’에게 남긴 편지 내용이다.
■ 책 속에 나 있다 편견속에 자기 마음을 가두지 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자주 점검하기 이 책 곳곳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백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백인 기독교도는 ‘작은 나무’에게 병든 송아지를 속여 파는가 하면, 백인 소작농은 자신의 딸이 인디언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길거리에서 딸에게 심한 매질을 한다. 인디언 같은 이교도 야만인한테는 절대 동정 따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나무’를 강제로 고아원에 보낸 것도 인디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그들 눈에는 ‘작은 나무’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낙오자로 보였다. 고아원 원장은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낳았다고 해 작은 나무를 사생아로 취급하고, 구원의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가 하면 수업 시간에 사슴 두 마리가 찍힌 사진을 보고 작은 나무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교사는 ‘작은 나무’를 추잡한 사생아라고 욕한다. 이 일로 인해 작은 나무는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인디언을 무지하고 야만스럽다고 여기는 백인들의 이런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프레임은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가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만을 본다. 즉,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 왜곡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마치 ‘작은 나무’가 살았던 당시 백인들이 인디언의 교육 방식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기독교식 교육만이 옳다고 믿었던 것처럼.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세상에서 얻어내는 결과물은 달라진다. 인디언은 야만스럽고 무지하다는 프레임을 갖고 있으면 영영 인디언들의 훌륭한 생활 철학을 배울 수 없고, 백인들의 부당한 태도를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직업에 대한 프레임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는 매체 특성 때문에 주인공을 멋진 사람으로 그리기 때문에 주인공의 직업이 처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힘들다. 또 사회에서 통념으로 믿는 것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시청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대로 인식하게 된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직원들을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부른다. 청소하는 이들도 배우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청소하는 일은 천하다는 인식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프레임>이라는 책을 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작가가 작품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가 사진기의 성능에 있다기보다 ‘멋진 장면’을 포착하지 못한 데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프레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좋은 프레임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 나대로 책 읽기 “인디언들 죽음에 대한 태도 안잊혀져”
개웅중 1학년 김세영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나의 권리를 말한다〉
전대원 지음/뜨인돌 이 책에서 할아버지는 정치가들을 사기꾼이라며 매우 싫어한다. 그것은 미국 정부가 체로키족의 땅을 빼앗고 강제로 이주시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800년대 이후 체로키족은 백인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는데, 체로키족 영토에서 금이 발견되자 백인들이 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체로키족은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체로키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주 관리들은 법원의 판결을 무시했고 결국 1830년 체로키족은 백인 군인들에 의해 영토에서 쫓겨나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들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백인들은 체로키족의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결국 체로키족은 천명씩 무리를 지어 걸어서 서부로 이주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정부군 병사들이 사흘에 한번씩만 매장할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이들은 죽은 사람들을 직접 안고 걸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아들이 죽은 부모를, 어미가 죽은 자식을 안고 걸어간 이 길을 사람들은 ‘눈물의 여로’라 불렀으나, 체로키들은 결코 울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체로키족의 역사를 보면 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어떻게 해야 법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좀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나의 권리를 말한다>의 저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던진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지 누가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등학교에서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 귀에 익숙한 권리 항목들을 소개하면서 그 권리들이 실제 생활 안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과연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이뤄진다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과 같은 학습방법은 행복추구권에 배치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천부인권, 모성권, 교육권, 양심적 병역거부, 피의자 인권, 노동기본권, 종교의 자유,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권리들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사례들을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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