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5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5
[난이도 수준-중2~고1]
정의가 통탄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정의란 무엇이니?”(‘무엇인가’라는 심각한 말투가 아니었다 ㅎㅎ) 은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황당한 답을 내놨다. “음, 오랫동안 쌓인 우정 같은 거.” 맙소사. “정이란 무엇이니?”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정...의!”라고 발음을 확실히 해주었다. “아하, 남을 용기 있게 구해주는 행동?” 중딩 준석이라고 심오한 대답이 나올 리는 만무다. 한참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은 뒤 도깨비 같은 한마디를 던진다. “슈퍼맨 같은 거 아닐까?”
오늘은 ‘정의’에 관해 생각해본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를 들먹일 생각은 없다. 어른도 읽기 힘든 책이다. 주변에 이 책을 산 사람은 많았지만, 완독했다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머리가 아파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했다. 소년소녀들의 눈높이에서 ‘정의’에 관해 쉽게 설명해줄 방법은 없을까.
나는 ‘선과 악’을 택했다. 이 키워드가 ‘정의’에 관해 중요한 힌트를 준다고 보았다. 매주 일요일 교회를 다니는 준석과 은서에겐 더욱 필요해 보였다. 준석에겐 ‘선과 악, 그리고 9·11’에 관해 글을 써보라고 했다. “9·11이 뭐였더라.” 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투덜거렸다. “알아서 써.” 은서에겐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이는 주제를 줬다. 그냥 ‘선과 악에 관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잘못 먹고 원죄의 주인공이 됐다. 아이들이 ‘선악관’을 잘못 먹고 체하면 이상한 신념의 화신이 된다. 아무리 문장이 빛나도 편협한 글로 전락한다. 정의를 도식적으로 판단하면, 도식적인 글이 나온다.
“지금은 알카에다 측과 이라크 등이 ‘악’이고, 미국 측이 ‘선’일지 모르나, 그들이 테러를 가한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로 가면 미국이 ‘악’이었고 이라크가 ‘선’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준석은 흑백논리를 뛰어넘는 듯 보인다. 과거 역사까지 따졌지만 촌스럽다. 지금도 나는 알카에다와 이라크가 ‘악’으로 안 보이는데?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미국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전쟁의 깃발로 올렸다. 9·11을 꼬투리 삼아 알카에다와 이라크를 악마(불량국가)로 몰아세웠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직접 쳐들어가 아작을 내기도 했다. 두 나라가 정말 악마였을까?
선과 악이란 사실 ‘웃기는 짬뽕’이다. 세상엔 수백 가지의 빛깔이 있다. 흑과 백뿐 아니라 노랑도, 파랑도, 빨강도, 회색도 있다. 노랑 하나만 해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수백 가지다.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 있을까? 그 스펙트럼은 무수하다. 그런데 “너는 무조건 악”이라며 마구 죽였다.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 때다. 교회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천명을 학살했다. 꼬맹이들에게까지 ‘악마적 요소’를 찾아내 살해했다. 마녀로 몰린 자들보다, 지고지선한 척했던 교회가 더 악마적이었음은 의미심장하다. 악마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인터뷰 한번 해보고 싶다. 악마로 몰린 사연을 꼬치꼬치 캐물어봤으면 좋겠다. 배경과 상황을 브리핑 받는다면 이해심이 발동할지 모른다. ‘본래 나쁜 사람’은 없음을 재확인할지도 모른다. 한데 은서는 엉뚱한 사람을 ‘악’으로 지목했다. “나에게 악은 아빠이다. 나는 글에 소질이 없다. 아빠는 수준 높은 글을 쓰라 하고, 잘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못 쓰면 화낸다.” 헉. 뒤통수를 맞았다. 선악관 교정이 시급하다~ OTL.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선과 악이란 사실 ‘웃기는 짬뽕’이다. 세상엔 수백 가지의 빛깔이 있다. 흑과 백뿐 아니라 노랑도, 파랑도, 빨강도, 회색도 있다. 노랑 하나만 해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수백 가지다.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 있을까? 그 스펙트럼은 무수하다. 그런데 “너는 무조건 악”이라며 마구 죽였다.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 때다. 교회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천명을 학살했다. 꼬맹이들에게까지 ‘악마적 요소’를 찾아내 살해했다. 마녀로 몰린 자들보다, 지고지선한 척했던 교회가 더 악마적이었음은 의미심장하다. 악마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인터뷰 한번 해보고 싶다. 악마로 몰린 사연을 꼬치꼬치 캐물어봤으면 좋겠다. 배경과 상황을 브리핑 받는다면 이해심이 발동할지 모른다. ‘본래 나쁜 사람’은 없음을 재확인할지도 모른다. 한데 은서는 엉뚱한 사람을 ‘악’으로 지목했다. “나에게 악은 아빠이다. 나는 글에 소질이 없다. 아빠는 수준 높은 글을 쓰라 하고, 잘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못 쓰면 화낸다.” 헉. 뒤통수를 맞았다. 선악관 교정이 시급하다~ OTL.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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