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통통! 학습법
[함께하는 교육] 이지은의 통통! 학습법 /
부모는 불안하고 자녀는 짜증이 느는 갈등 시기
몸과 마음이 크도록 여유갖고 지켜보는 게 중요
부모는 불안하고 자녀는 짜증이 느는 갈등 시기
몸과 마음이 크도록 여유갖고 지켜보는 게 중요
엄마 이야기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아침에 열시가 넘어 일어나면 밥 한 숟가락 떠먹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지 소설을 보는지 만지작거리면서 뒹굴거려요. 학원 갈 때쯤 되면 숙제를 끼적이다가 나가고 말죠. 학원 갔다 와서는 밥 먹고 그때부터는 잘 때까지 텔레비전이에요. 어느 날은 동생이랑 채널별로 프로그램 편성표 누가 더 많이 외우나 적고 있더라니까요. 참,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요.”
자녀 이야기 “엄마의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진짜로 엄청 짜증나요. 제가 뭘 좀 하려고 하면 매번 잔소리만 한다니까요. 잔소리 말고는 사는 낙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예요. 정말 이게 사람 사는 건지…. 공부한 양이 엄마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핸드폰도 뺏어가고 뭐 인터넷도 다 끊어요. 매일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밖에서 놀고 늦게 들어오면 잔소리하는데 정말 화가 나요.”
이제 고1이 되는 광명시에 사는 곽영준(가명) 학생의 이야기다. 겨울방학 내내 필자의 상담에는 위와 같은 하소연이 끊이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부터는 긴장이 풀어지고 학교생활도 형식적이어서 학습은 물론 일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이다. 게다가 이번주부터 새 학년 시작 전까지는 봄방학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 봄철 농사일 시작 무렵의 바쁜 일손을 돕고자 봄방학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봄방학은 숙제도 없는 ‘완전한 방학’일 뿐이고, 학부모에게는 ‘내내 놀다 어떻게 새 학년 공부를 하나’ 하며 걱정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점점 늘어지는 자녀들을 보는 부모와 ‘그게 뭐 어떠냐’는 자녀 사이의 갈등 해결을 위해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엄마의 잔소리 이해 못하는 사춘기 단계
사춘기는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다. 비로소 판단, 추론, 통찰 등의 정신력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마음’이라는 것이 생겨나니 사춘기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자신을 통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주장은 있으나 논리가 부족하고, 열정은 있지만 방법을 모른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실수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례의 주인공 영준이의 경우 중1 때 사춘기가 시작되었으니 생각과 마음의 나이는 세 살에 불과하다. 엄마가 왜 잔소리를 하는지 깊이 생각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노력의 이유를 생각하는 등 모든 정신적인 활동이 가능해지기는 했으나 아직 어린 단계이다. 수업도 없고 시험도 없으니 무엇을 기준으로 봄방학을 보낼까. 선행학습하러 학원에 가는 것은 긴 하루를 구분하기 위한 수단일 뿐 학습 효과는 크지 않다. 더구나 이제 막 자라나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부모가 먼저 ‘일상 성공’의 모습을 보여야
사춘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일상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는 연습이다. 일상의 성공은 빈틈없는 스케줄이 아니라 매 순간을 대하는 능동적인 태도여야 한다. 아침 밥상 앞에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상 차리느라 수고한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 공부가 중요하다. 이러한 ‘일상 성공’을 경험해야 자발적인 학습동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상 성공을 어떻게 가르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말로 가르칠 수 없다. 김붕년 교수(서울대 소아정신과)는 교육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본을 보이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선은 자녀를 지도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부모가 자신의 일상을 매 순간 즐겁게 살아내면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배운다.
실제로 한 학생은 “늦잠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거든요. 아빠가 일찍 출근하니까 엄마도 일찍 일어나잖아요. 엄마는 아침 먹은 거 설거지 다 하고 커피 타는 시간이 제일 좋대요. 커피 마시면서 책 보는 엄마를 보면 좀 부럽기도 해요. 엄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냥 자기만 하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엄마가 부지런히 일을 끝내고 여유롭게 책을 보는 모습에서 무언가 느낀 점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큰다. 물론 당장 책 읽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이 가져야 할 행동의 방향을 마음속에 하나씩 그려나가는 것이다.
봄방학은 새 학년을 여유롭게 준비하는 시기
겨울은 만물이 쉬는 계절이다. 동물도 잠을 자고, 식물도 빛을 잃는다. 심지어 계곡도 얼어붙어 조용히 겨울을 지낸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몸과 마음도 크기에 바쁜 아이들이니 겨울은 넉넉히 쉬도록 여유를 두자. 매일 잠만 자던 아이들도 새 학년이 되면 새 친구, 새 선생님과 새로운 기운으로 너끈히 해낼 것이다. 잔소리는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 격려와 본보이기로 아이들의 성장을 응원했으면 한다.
<함께하는 교육> 기획위원/
<중학교에서 완성하는 자기주도학습법> 저자
방학을 맞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방학 기간 등을 설명하자 학생들이 기뻐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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