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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규칙을 이해해야 디베이트 ‘선수’ 될 수 있어

등록 2011-02-21 09:59

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입안·입론→교차조사·질의→반박→요약·결론
4단계 가운데 2·3번째가 핵심 디베이트 구성
6. 디베이트, 그렇게 좋다면 왜 지금까지 답보상태인가

7. 디베이트 활동의 기본 약속-디베이트 포맷 이야기

8. 1:1 대결이 특징인 링컨-더글러스 디베이트 포맷

앞서 디베이트는 토론 중에서도 ‘형식이 강조되는’ 토론이라고 했다. 따라서 디베이트에서는 어떤 형식(디베이트 포맷)을 채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구체적으로는 발언 순서와 발언 시간, 그리고 팀 구성에 대한 규정이다.

권투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권투에 정해진 형식이 없다면 저잣거리의 싸움판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권투는 3분간 싸우고 1분 쉬었다가 또 3분 싸운다는 룰이 있다. 이 규칙대로 싸워야지, 힘이 남아돈다고 쉬는 시간에 상대방을 공격했다가는 큰일 난다. 주먹으로만 공격해야 하는데 팔꿈치나 무릎을 쓰면 반칙이다. 기록 경기인 야구는 더하다. 9회전을 뛰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고, 스리 아웃이 되면 공수가 갈린다. 타자가 스리 스트라이크를 먹으면 아웃이고, 반대로 볼이 4개면 걸어나간다. 이렇게 사전에 규칙을 정해놓고 하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형식이 남달리 중시되는 디베이트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발언 시간, 발언 순서, 팀 구성에 분명한 규칙을 정해놓고 토론을 해야 공정한 토론이 가능하고 참가 학생들의 기량을 정확히 비교할 수 있다. 이 규칙과 관련된 것이 디베이트 포맷이다.


그런데 같은 육상이라도 100m 달리기, 5000m 달리기, 마라톤 달리기, 계주 등 여러가지 경쟁 방법이 있듯이, 디베이트에도 여러 형식이 있다. 이 중 널리 쓰이는 것이 크게 5가지다. 링컨 더글러스 디베이트, 의회식 디베이트, 미국의회식 디베이트, 폴리시 디베이트,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가 그것이다.

육상의 여러 경주도 다 사람이 만든 것이다. 앞으로 필요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있다. 디베이트 포맷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앞으로 바뀔 수 있다. 가짓수가 늘어갈 수도 있고, 기존의 것이 조금 형식을 달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디베이트 형식은 같은 것이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가며 발전해나간다. 또 실제 디베이트 현장에서는 같은 디베이트 형식이라도 조금씩 다르게 운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디베이트 대회에 나가려면 미리 정확한 규정을 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5가지 기본 디베이트 형식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디베이트 형식이 외국에서 발전한 것이니만큼 한국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쓸 필요가 있다’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을 봤다. 하지만 우선은 기존의 디베이트 형식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 이는 마치 논문을 쓰는 사람이 우선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반영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영어로 표현되었다고 힘들어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우선은 기존의 디베이트 형식을 정확히 따라 배우자. 그다음에 경험이 쌓인 뒤 디베이트 관계자들끼리 모여 한국식 디베이트 포맷을 만든다거나 해보자.

여담이다. 나는 디베이트를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 반색을 하며 그 내용을 자세히 물어본다. 그런데 내가 분당에서 개설했던 디베이트 샘플 클래스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디베이트를 해봤다”고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슨 디베이트 포맷으로 했니?”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오히려 “디베이트 포맷이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자세히 이모저모를 물어봤다. 결론은, 그 학생에게 디베이트를 지도한 분은 디베이트를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주제를 던져주고 그저 찬반으로 나눠 토론하도록 한, 그러니까 일종의 자유토론이었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여러 교육현장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디베이트 도입 초기라서 나타나는 문제일 것이다. 기왕 디베이트를 하는 것이라면, 초반기에는 기존에 디베이트를 해왔던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해서 따라하자. 이어 충분히 경험이 쌓였을 때 변형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디베이트 포맷은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게다가 친숙한 영어도 아니다. 그래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전에 그 공통적인 핵심 순서를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다. 대부분의 디베이트 포맷은 다음과 같은 핵심 순서를 갖고 있다.

운동선수가 되려면 게임의 룰을 철저히 알아야 하는 것처럼 디베이트를 잘하려면 디베이트 포맷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진은 투게더 디베이트클럽이 진행하는 디베이트 모습이다.  케빈 리 제공
운동선수가 되려면 게임의 룰을 철저히 알아야 하는 것처럼 디베이트를 잘하려면 디베이트 포맷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진은 투게더 디베이트클럽이 진행하는 디베이트 모습이다. 케빈 리 제공

■ 입안 혹은 입론: 찬성 쪽 혹은 반대 쪽에서 자신의 기본 입장을 발언하는 순서. 디베이트의 첫번째 순서를 이룬다. 사전에 디베이트를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순서가 된다. 각 팀들이 이번 디베이트 사안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 교차조사 또는 교차질의: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 입장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부각하는 데 쓰인다. 반대로 이에 대해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적절하게 옹호해야 한다.

■ 반박: 상대방 입장의 허점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순서다. 거꾸로 우리 팀의 입장을 강하게 대비해 부각하는 순서다. 교차조사, 교차질의와 비슷할 수 있지만 다른 점은, 이는 상대방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진행하는 게 아니라, 순서를 맡은 참가자가 자기 시간만큼은 일방적으로 계속 진행한다는 점이다.

■ 요약 또는 결론: 대개 마지막 순서를 이룬다. 그날 이루어진 디베이트를 총괄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 팀의 가장 강점을 부각하거나 호소하고, 상대팀의 가장 큰 허점을 설명하는 순서가 된다.

이상의 4가지 핵심 순서는 조금씩 이름과 시간을 달리하면서 각각 다른 디베이트 포맷을 만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널리 퍼져 있는 링컨 더글러스 디베이트, 의회식 디베이트, 미국의회식 디베이트, 폴리시 디베이트,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모두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상의 핵심 순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이라고 본다. 이게 디베이트의 백미가 된다. 디베이트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니 이 점을 좀더 설명해보자.

웅변 같은 퍼블릭 스피치는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참가자는 사전에 원고를 준비해서 이를 읽거나 외워 말하면 된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참가자의 사안에 대한 이해 방식(주장)과 스피치 능력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게다가 미리 준비한 원고가 정말로 이 참가자가 직접 준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반면 디베이트에는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이 있다. 이때는 질문이나 반박을 통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자면 디베이트 시간에 잘 들어야 한다. 자기 순서가 끝났다고 마음을 놓고 있으면 바로 다음에 진행되는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에서 아무 말도 못한다. 게다가 자신이 주장하는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에서 상대방의 지적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못한다.

결국 디베이트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이 얼마나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논리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설득력있게 말하는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잘 듣고 있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퍼블릭 스피치와 비슷한 스피치 훈련으로 보이지만, 바로 이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 순서 때문에 디베이트는 전혀 다른 교육프로그램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베이트의 백미는 교차질의·교차조사 또는 반박 순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래서 디베이트 시간도 문제가 된다. 디베이트 시간에는 쉴 시간이 없다. 자기 순서가 아니더라도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며 끊임없이 노트하고, 자신의 반박 논리를 메모해나가야 한다. 보통 디베이트를 40분 정도 하게 되는데, 이 정도만 해도 참가자들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디베이트가 끝나고 나서 “배가 고프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생각에 초·중·고 학생들끼리의 디베이트는 40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디베이트 참가 학생들은 디베이트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모든 순서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거나 듣거나 질문하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 효과도 더 좋게 나타나는 것 같다. Help@TogetherDebate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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