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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외고 자퇴…내 의지로 공부하고 싶어

등록 2011-03-28 09:14

고등학교 진학수기
고등학교 진학수기
[함께하는 교육] 고등학교 진학수기 /
경남 영산고등학교 1학년 구지원양

지난해 겨울, 나는 외고를 자퇴했다. 누구나 바라는 특목고에서 나와 한 학년이 150명 남짓한 작은 학교로 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뒤 1년 내내 고민했던 문제의 답을 어떻게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 마음이 이끄는 길로 왔다는 것이다.

사실 외고로의 진학은 내 뜻이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외고에 원서를 넣었고 덜컥 합격이 되었다. 얼떨떨하면서도 ‘외고니까 인문계보다는 좋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외고에서 내 성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늘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회의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친구들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신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공부하며 점점 좌절과 절망에 무뎌져가는 내가 느껴질 때면 낯설고 무서웠다.

고등학교에서의 1년은 불안정하게 지나갔다. 더이상 학교에 끌려다니고 싶지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나의 3년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자퇴를 결정했다. 누군가는 이를 현실도피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이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내린 결정이자 소신 있는 선택이었다.

경남 영산고등학교 1학년 구지원양
경남 영산고등학교 1학년 구지원양

자퇴를 결정하고 나서 제일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2학년으로 갈 것이냐 1학년으로 다시 입학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외고와 인문계는 교육과정이나 수업시수가 다르기 때문에 2학년으로 간다면 바로 적응하기가 힘들 것 같았고 처음부터 시작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에 1년을 꿇기로 결정했다. 주변의 시선이 조금 걱정됐지만 남들보다 1년 뒤처져 있는 것이 아니라 1년을 앞서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원서를 쓸 즈음엔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신입생 모집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모집을 하는 학교를 찾던 중 영산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사는 곳과 좀 멀어서 고민이 되었지만 최근에 기숙사가 신설되어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기숙사 생활을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학습 분위기도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산고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뽑았는데 면접은 일대일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부분의 질문은 다니던 외고를 자퇴하고 영산고에 온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말했고 이곳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에 당당히 “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선생님과의 약속도 학교와의 약속도 아닌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영산고등학교로부터 합격을 통보받았다.

합격 통지서를 받으니 그제야 자퇴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자퇴’가 내 인생의 오점이 될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앞으로의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하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 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위해 공부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제 더이상 불안과 자괴의 터널을 헤매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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