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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딜 가나 “어느 대학 나왔나”…취업·임금차별 근거로

등록 2011-07-04 21:21수정 2011-07-05 10:31

고졸 딱지가 평생 발목잡아 대졸과 임금차 50대엔 두배
학벌 격차도 갈수록 심해져 이젠 대학 나와도 비정규직
오늘도 변함없이 그 질문이 나왔다.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한 사람이 질문했지만, 모임에 온 모두가 같은 의문이 담긴 눈길로 쳐다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걸까. ‘○○관광대 호텔경영학과를 나왔어요’라고 답한다. 재수 끝에 입학했다가 한달 만에 그만둔 학교다.

독서모임 소개 자리에서 출신 대학이 왜 궁금한 건지 조수영(가명·28·여)씨는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졸’이라고 답했을 때 만들어질 서먹한 분위기를 감내하기보다는 차라리 ‘거짓’을 말하는 게 낫다.

고교 때 어울리던 7명의 친구는 대부분 서울의 유명대로 진학했다. 수능 점수가 모의고사보다 100점이나 낮게 나온 조씨로선 입학원서를 내지 않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서 한달에 70만원씩 내고 재수를 했다. 4년제 대학 경찰행정학과가 목표였다. 유명대에 다니는 친구들 앞에 떳떳하게 서기 위해선 경찰이라는 ‘권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에도, 다음해에도 대학 문은 열리지 않았다.

2004년 서울 노량진에 있는 경찰공무원시험 대비 학원에 등록했다. 경찰 배지는 ‘삼수생’이라는 굴레와 ‘고졸’이라는 ‘신분’을 세탁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2년 동안 네차례 시험을 쳤고, 모두 떨어졌다. 스트레스로 편두통이 심해졌다. 문득 ‘내가 정말 경찰이 되고픈 걸까. 허상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잡매니저’가 되고 싶었지만, 5달 동안 이력서를 낸 7곳의 인재파견회사에서는 모두 연락이 없었다. 월급 120만원을 받고 경리 일을 시작했다. ‘고졸’은 곧 ‘경리’로 통했다. 2년 뒤 직장을 옮겨 카드대출 ‘텔레마케터’가 됐다. 다른 이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을 한다는 건 또다른 스트레스다. “8월에 일을 그만두려 해요. 하지만 고졸은 경리나 텔레마케터 외에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신분’이자 ‘자본’이다. 학력과 학벌에 따른 사회적 차별, 그리고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이 대학교육에 대한 무한수요를 낳는다. 이런 구조에선 모두가 대학 진학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일류대’들이 연간 등록금 2000만원을 요구한다 해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류대 신분증’을 손에 넣고자 그 2000만원을 감당하려 한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해도 풀리지 않을 숙제다.

1차적인 문제는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09년을 기준으로 25~29살 고졸 노동자의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중졸 이하는 89.7, 전문대졸은 103.4, 대졸 이상은 124.2였다. 하지만 55~59살 임금은 전문대졸 136.7, 대졸 이상은 222.6으로 고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학력 수준별 노동시간 격차를 봐도, 2009년 고졸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0으로 놨을 때 중졸 이하는 103.6, 전문대졸은 94, 대졸 이상은 89.1로 나타났다. 대졸 이상이 고졸자보다 10% 이상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임금은 최대 2.2배나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학벌 프리미엄’이 더해진다. 지난 4월 한국노동경제학회의 논문집 <노동경제논집>에 실린 논문 ‘1999∼2008년 한국의 대졸자 간 임금격차 변화’를 보면, 2008년 기준으로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 취업자들은 14~50위 대학 졸업자보다 14.2%, 51위 이하 대학 졸업자보다 23.2%, 전문대 졸업자보다는 42%나 임금을 더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9년에는 최상위 13개 대학과 14~50위 대학 졸업자의 임금 격차가 1%에 불과했다. 9년 사이에 ‘학벌 프리미엄’이 훨씬 커진 것이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교육학)는 “요즈음엔 최상위권 대학 출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취업이 되고 나면 ‘학벌 프리미엄’을 더욱 공고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불거지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대학 졸업생들마저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며 ‘신빈민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원하는 48만여명 가운데 정규직 취업자는 55%인 26만여명에 불과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4월 펴낸 ‘학력별 노동시장 미스매치 분석과 교육제도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도,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 유예’ 등으로 장기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이 100만명이 넘고, 이들이 대학에 남아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포기 소득’ 등을 나타내는 간접 교육비는 5조417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대학을 나와도 주어지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절반이고, 대학에 안 가면 더 형편없는 일자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너도나도 기를 쓰고 대학에 가려 하고, 대학에서도 ‘스펙 쌓기’에 골몰한다”며 “대기업 등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준수를 강제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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