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사설 속으로> 활용 수업 현장
여성혐오 vs 정신질환…다른 관점 두 사설 놓고 교실서 ‘토론꽃’
“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로 봐야 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에 익숙한 남성이 현대의 양성평등을 인정하지 못하고 반발하면서 여성혐오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범죄자는 평소 여성에 대한 악감정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많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조현병의 특성상 정신질환 범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입니다. 피의자 김씨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았고 사건 당시 치료 중단 중이었습니다. 조현병은 환각, 망각 상태인 환자가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질환입니다. 이걸로 봐서 정신질환자가 이성에게 접근해 상처받은 경험이 피해망상에 영향을 끼쳐 생겨난 범죄입니다.”
지난 20일 서울 가재울고 2학년 6반 독서수업에서 학생들의 토론이 벌어졌다. 5, 6교시 블록타임으로 진행한 이날 토론 주제는 ‘강남역 살인사건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조연희 국어교사는 학생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를 찾다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SNS)에서 여성차별이나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 이 주제를 골랐다. 토론 자료로는 하나의 사건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비교하는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공동제작 지면인 ‘사설 속으로’를 활용했다. 이 사건에 대해 각각 한겨레는 여성혐오 범죄로, 중앙일보는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바라봤다.
한겨레·중앙 사설 비교 지면 펼쳐보며
‘강남역 살인사건’ 주제 찬반 토론 벌여 지면 통해 쟁점 사안 핵심어 짚어보고
측 입장 논리 제대로 이해하게 돼
“‘공격’ 아닌 절충점 찾는 민주적 과정” 조 교사는 “신문 사설은 여론을 충분히 감안하고,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라 상징성이 높다. 특히 ‘사설 속으로’ 면은 양쪽 입장을 동시에 실어주면서 부연설명과 참고자료까지 덧붙여 학생들이 쟁점을 이해하는 데 안내 역할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사전에 아이들에게 ‘강남역 살인사건 논란’ 주제를 다룬 사설 속으로 면(지난 6월7일치)을 나눠줬다. 교사·교수 등 필자들이 쓴 ‘논리 대 논리’ 해설을 보며 양쪽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고, ‘키워드로 보는 사설’을 통해 핵심 열쇳말이 무엇인지 배경 지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이민영양은 “사설은 단순히 개인이 아닌 한 집단의 의견을 근거를 들어 쓴 글이다. 평소 내가 가진 생각만 옳다고 생각했는데 사설을 보면서 반대 입장도 알게 되고 좀 더 폭넓은 시각을 접하게 됐다”고 했다. 조 교사는 평소 보수와 진보의 생각이 날카롭게 갈리는 사안을 놓고 수업할 때 교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이날 사설 속으로 면을 활용해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적용한 수업을 시도했다. 이 협약은 1976년 서독의 보수 및 진보 정치교육학자들이 모여 만든 정치교육지침이다. 학생들은 한겨레와 중앙 양쪽으로 나눠 사건의 맥락을 이해한 뒤 자신들의 논거를 담은 입론을 만들었다. 이후 상대편 주장에 대한 반론과 자신의 주장에 대한 상대의 예상 질문을 각각 뽑았다. 한의정양은 “자료조사만 7시간 동안 했다. 한겨레 쪽 패널을 맡았지만 이전에 여성혐오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고,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왜 여성혐오인지 납득이 안 됐었다”며 “토론하면서 자료를 찾고 논리를 만들며 다른 방면으로 생각이 넓어졌고 나중에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며 “범죄자가 망상이나 환각 등의 정신질환이 있다고 했는데 진술이 바뀌는 정신질환자의 말을 너무 믿는 거 아니냐”(한겨레 쪽), “단순히 여성을 죽였다고 해서 여성혐오 범죄라면, 아동에게 피해를 주면 아동 혐오 범죄인 거냐, 이 사건은 사회적 배타로 인한 것이지 여성혐오가 아니다”(중앙 쪽)라는 등 상대 입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최종 변론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보호,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언론의 역할 등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수업 후 조 교사에게 민주주의에서 토론이 왜 중요한지 물었다. “교사가 한쪽으로 치우쳐 가르치면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따라오면서 자기가 배운 지식 정도만 알게 된다. 반면, 토론을 하면 자기주장에 대한 이론적 논거를 스스로 찾으며 관점을 분명히 하게 된다. 상대방을 막연히 공격하기보다 그 입장에 대한 논리를 알게 돼 절충점을 만들어가거나 갈등을 원만하게 합의하는 과정도 익힐 수 있다.” 또래관계에 민감한 학생들은 이번 토론에 앞서 자신이 여성혐오를 주장하면 ‘남성혐오자’로 찍힐까 봐 망설였다. 조 교사는 “평소에도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선입견을 갖고 매도할까 봐 자기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토론에서 양쪽 입장을 대변한다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의견을 정리하고 상대 입장도 경청하며 처음에 서로 갖고 있던 오해도 풀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하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쟁점이 갈릴 때 개인은 보통 하나의 입장을 가진다. 대체로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약해서 쓸데없는 감정적 대립이 앞서고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으로 갈등이 증폭되는 일이 많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합의 방식인 대화와 토론을 직접 체득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 입장만 내세우던 학생들도 토론 후 “상대 입장을 이해하며 좀 더 나은 합의점이나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양은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한겨레 입장을 대변하기가 힘들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싫어해서 억지로 우기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토론을 준비하며 여성혐오는 가부장적 사회 제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인식이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중앙 쪽 패널을 맡은 곽수진양도 “뉴스는 사실만 전달하니까 사회 현상의 겉모습만 아는데 사설은 해당 사안에 대한 관점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범죄자가 정신질환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토론하면서 반대측 입장을 듣다 보니 여성혐오도 사건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추천 도서]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지음, 현실문화 펴냄, 2015년
이 책은 여성학자, 문화연구자, 젠더 연구자, 인권운동 전문가들이 ‘여성혐오’ 현상을 둘러싼 우리 사회 혐오 문화에 대해 각각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는 글을 담은 책이다. ‘여성혐오’라는 생경하지만 익숙한 말을 통해 우리 사회에 스며든 ‘혐오 문화’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이를 정치·경제·문화와 연계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 속 여성혐오 발언들의 부정적 여성범주화 현상부터 신자유주의시대 젠더 무의식이 어떻게 변형·왜곡·강화되는지, 남성 역차별 주장의 담론이 가진 의미 등 발가벗은 혐오 언어에 대한 각각의 경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인들의 무지가 차별의 엔진”이라는 정희진씨의 말뜻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조연희(가재울고 교사)
[한겨레 사설] 여성차별의 위험한 변종 ‘여성혐오’, 제동 걸어야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23살의 평범한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뒤 나온 추모 문구의 하나다. 분노와 공포로 공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응축됐다. 어떤 여성이든 ‘그런 일은 나와는 상관없어’라고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 앞에서, 여성들이 소리를 모아 ‘여성혐오’를 고발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을 뭐라 부르든, 그런 폭발적 반응은 여성혐오라는 병증의 심각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분노와 공포는 당연하다. 지금의 여성혐오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의 위험한 변종이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익 향상이 중요하다는 담론은 상식이 됐지만 정작 사람들의 인식과 실제 여성들의 현실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있었다. 20·30대 여성들은 그 괴리를 실감할 터이다. 아들과 딸을 차별해 교육하지 않는 부모 세대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가부장적 억압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자란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전한 차별의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현실의 이런저런 차별보다 더 두려운 것은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여성혐오다. 20·30대 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와 성차별을 더는 당연한 일로 용인하지 않게 된 데 반해, 같은 세대 남성들의 양성평등 인식은 그 앞세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문화적 지체에 더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의 압력과 그로 인한 남성들의 분노와 열패감이 엉뚱하게 여성에게 전가된다. 군 가산점 논쟁이나 온갖 여성 비하 표현이 그런 예다. 보호 대상으로 여겨 무시하고 차별하던 기존의 여성차별이, 공격과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 적대하고 경멸하는 여성혐오로 변질된 것이다. 혐오가 공격성을 띠면 위험하다. 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여성혐오의 공격성이 실제 폭력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겠다. 이는 남녀갈등 따위로 치부할 문제가 이미 아니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격발된 여성들의 항의는 여성운동 조직이나 전문가들 주도가 아니라 관심의 공유를 통해 스스로 각성한 일반 여성 대중의 자발적 분노 표출이란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힘은 그만큼 커졌다. 침묵해온 정치권을 비롯해 온 사회가 지혜를 모아 응답해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지대가 강남역 참극을 불렀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20대 여성 피살사건에 대해 경찰은 22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로 규정했다. 여성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이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조사한 결과 김씨의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범죄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는 이미 2003~2007년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으며 2008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모두 6차례에 걸쳐 19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치료를 중단한 채 거리를 방황하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이런 비극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일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정신질환자는 국가와 사회가 치료해주고 관리해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할 대상이다. 치료받는 정신질환자는 결코 위험하지 않으며 범죄율이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낮다는 보건의료 통계는 이 같은 관리체계의 강화가 왜 필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거리를 배회하며 증세가 악화한 사람은 없는지 제대로 관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 224개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 건강증진센터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치료·퇴원할 때 본인 동의서를 받아 실시하고 있는 사례 관리를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건강증진센터에 전담직원을 배치해 업무에 몰입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는 환자에 대해서는 집중 전담제도 등 더욱 촘촘하고 치밀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명령제를 더욱 엄격하고 실효성 있게 적용할 필요도 있다. 물론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위험 행동의 가능성이 크거나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당국이 더욱 과감하게 개입하는 쪽으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백안시하면 치료나 관리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이럴 경우 증세가 더욱 악화돼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사회가 이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야 더욱 안전한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우범지역 환경을 개선하는 등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 환경 조성도 절실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이런 문제점들을 적극 개선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야말로 억울한 희생자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판 ‘민주시민교육’ 만나봅시다
우리나라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되는 주제를 접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분명히 끌어내는 수업이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교실에서는 사회적으로 찬반 논쟁이 뚜렷한 사안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고, 학생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하는 수업이 민주시민교육 목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독일 사회의 정치교육지침인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따른 것입니다.
이 협약은 1976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교육학자들이 만들었습니다. 협약은 세 가지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1)‘강압 금지의 원칙’(학생들에게 특정 생각을 주입하거나 자립적인 판단을 방해하면 안 된다.), 2)‘논쟁 재현의 원칙’(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3)‘학생 이해상관의 원칙’(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관심 상황을 분석할 능력, 관심 영역에 놓인 현존하는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수단과 방법을 찾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줘야 한다)입니다.
2013년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해 시작한 ‘사설 속으로’는 언론이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비슷한 뜻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사설 속으로 활용 현장’은 서울시 내 교사들의 수업 가운데 ‘사설 속으로’를 활용해 수업하는 현장을 취재해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두 언론사와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서울시교육청이 함께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가재울고 학생들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주제 찬반 토론 벌여 지면 통해 쟁점 사안 핵심어 짚어보고
측 입장 논리 제대로 이해하게 돼
“‘공격’ 아닌 절충점 찾는 민주적 과정” 조 교사는 “신문 사설은 여론을 충분히 감안하고,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라 상징성이 높다. 특히 ‘사설 속으로’ 면은 양쪽 입장을 동시에 실어주면서 부연설명과 참고자료까지 덧붙여 학생들이 쟁점을 이해하는 데 안내 역할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사전에 아이들에게 ‘강남역 살인사건 논란’ 주제를 다룬 사설 속으로 면(지난 6월7일치)을 나눠줬다. 교사·교수 등 필자들이 쓴 ‘논리 대 논리’ 해설을 보며 양쪽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고, ‘키워드로 보는 사설’을 통해 핵심 열쇳말이 무엇인지 배경 지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이민영양은 “사설은 단순히 개인이 아닌 한 집단의 의견을 근거를 들어 쓴 글이다. 평소 내가 가진 생각만 옳다고 생각했는데 사설을 보면서 반대 입장도 알게 되고 좀 더 폭넓은 시각을 접하게 됐다”고 했다. 조 교사는 평소 보수와 진보의 생각이 날카롭게 갈리는 사안을 놓고 수업할 때 교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이날 사설 속으로 면을 활용해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적용한 수업을 시도했다. 이 협약은 1976년 서독의 보수 및 진보 정치교육학자들이 모여 만든 정치교육지침이다. 학생들은 한겨레와 중앙 양쪽으로 나눠 사건의 맥락을 이해한 뒤 자신들의 논거를 담은 입론을 만들었다. 이후 상대편 주장에 대한 반론과 자신의 주장에 대한 상대의 예상 질문을 각각 뽑았다. 한의정양은 “자료조사만 7시간 동안 했다. 한겨레 쪽 패널을 맡았지만 이전에 여성혐오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고,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왜 여성혐오인지 납득이 안 됐었다”며 “토론하면서 자료를 찾고 논리를 만들며 다른 방면으로 생각이 넓어졌고 나중에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며 “범죄자가 망상이나 환각 등의 정신질환이 있다고 했는데 진술이 바뀌는 정신질환자의 말을 너무 믿는 거 아니냐”(한겨레 쪽), “단순히 여성을 죽였다고 해서 여성혐오 범죄라면, 아동에게 피해를 주면 아동 혐오 범죄인 거냐, 이 사건은 사회적 배타로 인한 것이지 여성혐오가 아니다”(중앙 쪽)라는 등 상대 입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최종 변론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보호,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언론의 역할 등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수업 후 조 교사에게 민주주의에서 토론이 왜 중요한지 물었다. “교사가 한쪽으로 치우쳐 가르치면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따라오면서 자기가 배운 지식 정도만 알게 된다. 반면, 토론을 하면 자기주장에 대한 이론적 논거를 스스로 찾으며 관점을 분명히 하게 된다. 상대방을 막연히 공격하기보다 그 입장에 대한 논리를 알게 돼 절충점을 만들어가거나 갈등을 원만하게 합의하는 과정도 익힐 수 있다.” 또래관계에 민감한 학생들은 이번 토론에 앞서 자신이 여성혐오를 주장하면 ‘남성혐오자’로 찍힐까 봐 망설였다. 조 교사는 “평소에도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선입견을 갖고 매도할까 봐 자기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토론에서 양쪽 입장을 대변한다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의견을 정리하고 상대 입장도 경청하며 처음에 서로 갖고 있던 오해도 풀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하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쟁점이 갈릴 때 개인은 보통 하나의 입장을 가진다. 대체로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약해서 쓸데없는 감정적 대립이 앞서고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으로 갈등이 증폭되는 일이 많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합의 방식인 대화와 토론을 직접 체득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 입장만 내세우던 학생들도 토론 후 “상대 입장을 이해하며 좀 더 나은 합의점이나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양은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한겨레 입장을 대변하기가 힘들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싫어해서 억지로 우기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토론을 준비하며 여성혐오는 가부장적 사회 제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인식이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중앙 쪽 패널을 맡은 곽수진양도 “뉴스는 사실만 전달하니까 사회 현상의 겉모습만 아는데 사설은 해당 사안에 대한 관점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범죄자가 정신질환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토론하면서 반대측 입장을 듣다 보니 여성혐오도 사건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추천 도서]
이슈강남 살인사건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