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힐튼 미드타운 호텔에서 ‘포용’과 ‘화합’을 역설하는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사설] ‘트럼프 시대’ 대처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은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적 차원의 기민한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능력 상실로 모든 국정이 마비된 상태다. 박 대통령을 대신할 새로운 정치 리더십의 창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청와대는 오히려 트럼프 당선을 위기 탈출용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박 대통령은 9일 오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미국의 새 대통령 당선에 따른 경제·안보 분야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10일 오전 박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청와대는 크게 부각시켰다.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 국정을 안정시키고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런 안간힘은 오히려 국가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안보상의 중대한 위협이 있을 때 소집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우방국 대통령의 당선에 맞춰 연 것부터 ‘보여주기 이벤트’ 냄새가 물씬 풍긴다. 트럼프 당선자가 박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의례적인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청와대의 모습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는 17일 미국 뉴욕에서 트럼프 당선자와 회담을 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오는 19~2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참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외교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것이 헛된 변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국외로 나가 봤자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요한 국제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한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대통령직에 미련을 갖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의 외교 실력은 이미 바닥을 보인 상태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뇌를 조종하는 만평까지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 외교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자는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다. 무능력한 박 대통령이 민감한 현안을 놓고 그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를 기대하는 것부터 무리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은 차기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기에 부적격자다. 하루빨리 내치는 물론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손을 떼는 것이 그나마 나라를 돕는 길이다. 트럼프 당선을 위기 탈출의 호기로 여기는 착각은 박 대통령 자신과 국가를 모두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 현실 된 트럼프 충격…관료라도 주도적으로 뛰어야
이번 미국 대선에서 기존 국제질서를 부정하며 외설과 기행을 일삼아온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이겼다는 건 믿고 싶지 않더라도 냉엄한 현실이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게 옳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나라들은 이미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일본은 1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트럼프에게 축하전화를 한 데 이어 오는 17일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연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트럼프에게 “조만간 유럽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영국·독일·프랑스 정상 등도 다투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세계 각국이 트럼프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 위해 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훨씬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형국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한 상태에서 안보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 탓이다. 외교 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최고 사령탑이 완전 마비된 상태라 그럴 만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10일 축하전화를 하긴 했지만 정상회담을 할지, 한다면 누가 할지도 오리무중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무릇 국가는 정권을 잡은 정치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료들의 협업으로 굴러가게 돼 있다. 국민의 선택으로 집권한 정치세력은 관료들의 힘을 빌려 시대정신을 구체적 정책으로 실현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국정 공백 상황에서는 누가 집권하든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업무는 관료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게 옳다. 막스 베버는 관료를 “영혼 없는 집단”이라고 했다. 줏대 없는 집단이라는 비아냥 같지만 한편으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필요한 업무를 해낼 수 있는 게 관료라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외교·통상 관료들이 눈치만 보며 복지부동해서는 안 된다. 누가 보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
트럼프 정권에서 외교·통상 정책을 맡을 핵심 인물과 접촉해 한반도의 특수성과 양국 무역의 중요성을 이해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유력 후보로 떠오르면서 우리가 그의 인적 네트워크에 너무 어둡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활용할 만한 인물도 적잖다. 한 해 몇 차례 방한하는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은 잘 알려진 지한파다. 트럼프가 존경을 표시했다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유럽보다 아시아를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존 볼턴 전 국무부 부장관 등 한반도 상황에 익숙한 인사들도 트럼프 곁에 다수 포진해 있다. 이런 인사들과의 접촉 면을 최대한 넓히고 상황 변화에 따른 우리의 입장을 적절히 개진한다면 트럼프 정권의 한반도 및 통상 정책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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