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목적과 다른 학교·교육과정 운영에서 주로 감점
동성고 등 5곳은 향후 5년 동안 자사고 지위 유지
올해 전국 24곳 자사고 중 11곳이 ‘일반고 전환’ 대상
‘고교체제 개편’에 대한 전체적인 청사진 필요
특권학교 법적 근거 손보는 “일괄 전환” 요구도 커져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등 교육,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고등학교 중심의 평준화 체제로 재편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곳 가운데 8곳이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70점)에 미치지 못해 ‘일반고 전환’ 절차를 밟게 됐다. 이로써 올해 전국 11개 시·도교육청에서 진행한 재지정 평가를 받은 자사고 24곳 가운데 11곳이 교육부 동의 등을 받으면 자사고 지위를 잃게 된다. 다만 최소 13곳의 자사고가 앞으로 5년 동안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됨에 따라,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고교체제 개편’을 어떻게 추진할 지가 교육 분야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9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전날 열린 ‘자율학교등 지정·운영위원회’ 심의 결과 올해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 대상이었던 서울 지역 자사고 13곳 가운데 지정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된 8곳 학교에 대해 ‘지정 취소’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사고는 5년 단위로 지정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 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재지정 여부를 결정받는다. 이에 따라 이번에 ‘지정 취소’ 대상이 된 학교는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이다. 이들은 오는 24일부터 서울시교육청의 청문 절차를 거친 뒤, 최종적으로 교육부가 서울시교육청의 ‘지정 취소’ 처분에 동의하면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다만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자사고 학생 신분을 유지한다. 기준 점수를 넘긴 동성고·이화여고·중동고·하나고·한가람고 등 5곳은 앞으로 5년 동안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시교육청에서 관내 자립형사립고(자사고) 13개교에 대한 운영평가 결과와 자사고 지정 취소 학교를 발표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이날 서울시교육청은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재지정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선 전북교육청의 경우 상산고를 ‘지정 취소’ 대상으로 결정한 평가를 두고 일각에서 평가지표의 공정성 논란을 제기한 바 있다. 또 자사고와 자사고 학부모 쪽에서는 이번 재지정 평가 자체를 “‘자사고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등 줄곧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세부적인 평가 매뉴얼을 만들 때 평가지표에 대한 자사고들의 문제 제기 가운데 타당하다고 판단된 일부 내용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학생 전출 및 중도이탈비율' 영역에서 ‘전 가족의 타시도 이전’ 등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통계에 반영하지 않도록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감사 지적사항의 감점 반영과 사회통합전형 평가에서 점수를 대폭 깎으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청문 대상이 된 8곳 학교는 자사고 지정 목적인 학교운영 및 교육과정 운영 영역에서 비교적 많은 감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도 밝혔다. 자사고들이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지정 목적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고, 기준 점수를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는 이에 따라 갈렸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결과에 따라,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은 전국 자사고 24곳 가운데 전북 상산고,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동산고 등을 포함한 11곳이 ‘일반고 전환’ 대상이 됐다. 내년에는 전국 16곳(서울 지역이 9곳) 자사고들이 재지정 평가를 받으며, 외국어고·국제고 36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도 예정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교체제 개편’ 3단계 과정 가운데 ‘공정하고 엄정한 운영성과평가’는 2단계에 해당한다. 때문에 마무리 단계에 놓인 개별 학교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넘어, 일반고 강화를 중심에 둔 ‘고교체제 개편’의 전체적인 청사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지정 평가를 통해 살아남은 자사고가 여전히 서열을 공고히 할 수 있고 평가 기준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으로 인해 사회적 손실이 큰 만큼, 자사고의 존립 근거인 시행령을 개정해 일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또 고교학점제 등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한 논의들에 속도를 내 구체적인 교육 개혁 방향을 알려 학생·학부모들이 불안감을 덜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등 교육,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고등학교 중심의 평준화 체제로 재편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재지정평가 국면을 보면, 교육 당국이 전국형 자사고에 케이에스(KS) 마크를 달아준 형국이 됐다”며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자사고라는 체제를 만든 배경이나 명분 등이 타당성을 잃었고 학생들의 대입 등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지정평가 시점에 맞추어 선별 전환하기 보다는 시행령을 개정해 일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 소장은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교육 당국의 더 심도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 소장은 “자사고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여전히 학교를 평가하는 잣대는 성적이나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몇 명 보내느냐일 뿐”이라며 “학교를 평가할 때 학생들이 어느 학과에 어떻게 가서 어떻게 진로를 개척하는 지 등과 같은 성적 말고도 다른 잣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양선아 기자 circl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뉴스룸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