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연령을 18살로 낮춘 뒤 일본 총무성에서 ‘선거를 배워서 실제 투표를 준비하자’는 취지로 18살 대상의 온라인 캠페인을 벌인 모습.
‘18살 선거권’의 도입 뒤로 ‘학생 유권자’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교실의 정치화’ 등 교육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나라, 특히 한국과 가장 비슷한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핀란드에서 34살의 여성 총리가 나온 일은 한국에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핀란드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근대적 형태의 민주주의를 이룬 뒤로 꾸준히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춰 참정권을 확대해왔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18살 선거권’을 도입하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2008년 ‘16살 선거권’을 도입한 뒤로 최근에는 선거권 연령을 16살로 낮추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도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 등 청소년의 정치활동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 선거권 연령 낮추며 ‘주권자 교육’ 강화한 일본
다만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와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지녔으며 비교적 최근에야 선거 가능 연령을 18살로 낮춘 일본의 사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이 함께 연 ‘18세 선거권 시대의 교육적 의의와 과제’에선 핀란드와 함께 일본의 사례가 중점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일본 총무성과 문부과학성이 함께 만든 학생을 위한 정치 교재 <우리들이 개척하는 일본의 미래> 표지.
일본은 2016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70여년 만에 기존 20살이었던 선거권 연령을 18살로 낮췄다.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선거 연령을 낮추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선거 연령을 낮추는 조처와 함께 국가교육과정 개정에 ‘주권자 교육’(주권자로서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관련 내용을 넣는 등 대대적으로 학교 내 정치교육에 나섰다. 총무성과 문부과학성이 주도해 <우리들이 개척하는 일본의 미래>라는 제목의 정치 교육 교재를 만들고, 이를 학교 현장에 배포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재는 정치와 선거의 의미와 실질적인 절차 등을 알려주는 ‘해설’편과 토론 수업 및 모의선거 등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실천’편으로 구성했다.
국내에서도 선거권 연령을 낮추면서 국가가 앞장서서 학교 내 정치교육을 활성화하는 데 나섰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모의선거 등 학교 현장의 실천적인 교육 내용까지 담고 있는 주권자 교육에 관심이 많다. 서울시교육청 등이 추진하고 있는 ‘모의선거 교육’ 역시 일본의 사례에 비춰 그 필요성이 강조된다. 2017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고등학생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은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학교 교육으로 ‘정치적인 문제나 이슈에 관한 토론수업’(80.3%), ‘리더십 함양교육’(74.%), ‘민주시민교육’(70.4%), ‘모의선거’(62.2%) 등을 꼽은 바 있다.
■ 1년만에 18~19살 투표율 하락… 부실한 측면도 살펴야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려면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 선거법 개정 뒤 처음 치러진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8살 투표율은 51.28%, 19살 투표율은 42.3%였다. 당시 전체 투표율인 54.7%에는 못 미쳤지만, 18~19살 투표가 처음 이뤄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다음해였다. 2017년 10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 때 전체 투표율은 53.68%였지만, 18살 투표율은 47.87%, 19살 투표율은 33.25%에 그쳤다. 1년 만에 18살 투표율은 3.41%포인트, 19살 투표율은 9.05%포인트나 내려앉은 것이다. 투표율로만 보면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가 후퇴한 것이다.
일본 고베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8살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하면서 만든 포스터.
투표율 하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주권자 교육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규복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9년 일본 주권자 교육 추진회의에서 주권자 교육의 시행착오에 대한 지적이 나왔는데, 그 배경에는 과도하게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나머지 주권자 교육이 피상적으로 흘렀다는 반성과 성찰이 있다”고 소개했다.
‘순차해설’(선거 관련 알아야 할 개념과 절차를 순서대로 설명하는 것), ‘소꿉장난’(모의선거와 모의재판에서 구체적인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것), ‘던지기’(교사·교과와 연계되지 않고 선관위와 외부 전문가에게 수업을 맡기는 것), ‘중립성’(유권자 권리와 학교의 정치적 중립 확보가 상충하는 것) 등이 주권자 교육에 대해 제기된 4가지 시행착오로 꼽힌다. 단순히 투표 절차만을 가르친다거나, 실제가 아닌 가상의 정당·공약을 두고 모의선거를 치른다거나, 교육 자체를 외부 전문강사에게 위탁하는 등 주권자 교육이 현실정치와 연계된 토론과 논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흐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금지·규제 앞세운 ‘정치적 중립’ 강조의 한계 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해왔고, 선거권 연령을 낮춘 뒤에도 ‘학교 밖’ 정치활동만을 일부 허용하는 등 전반적인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 연구원은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과도한 요구와 각종 금지가 학생 유권자의 권리와 충돌한 것”이라는 풀이를 내놨다. 지난 30일 토론회에서 이영채 일본 게센여학원대학 교수도 주권자 교육에 대해 “실질적인 내용의 공유보다는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명분 쌓기 이상의 내용은 되지 못했다”는 일본 내부의 평가를 소개했다. ‘정치적 중립’을 앞세워 학교 내의 여러 활동을 금지하고 규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실제 삶과 연관된 토론 등 애초 주권자 교육이 기대했던 정치교육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사단법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주관한 모의선거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이 후보자들의 공약 등을 읽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제공
‘18살 선거권’ 도입 뒤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학교 내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진보 교육감’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학교에서 선거 ‘교육’은 확대해야 하지만 선거 ‘운동’은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살 유권자 대상 정치관계법 적용 기준을 내면서, 실정법에 비춰 볼 때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는 학교 내 정치활동들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볼 때, 금지나 규제 위주의 접근이 학생 유권자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배경내 촛볼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학교 내 정치활동 금지’와 같은 단순한 금지와 규제의 논리로 ‘정치적 중립’ 문제를 풀어가선 안된다. 청소년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는 등 참정권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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