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열린 한 정당 후보자의 거리 유세에서 한 참석자가 ‘18세 이후 첫투표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투표 참여를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등학생 엄주명(전남 해남)군은 국회의원 선거 당일인 15일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날 생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수업을 하고 있어서 교복을 안 입은 지 오래됐지만, 엄군은 이날 교복도 챙겨 입기로 했다. 투표소 문이 열리는 아침 6시에 빨리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하고 인증사진을 남기고 싶어서다. “정직성이 정말 중요해요.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정직성을 의심받으면 우리 지역 전체가 의심받잖아요. 정직한 후보를 뽑을 거예요.” 14일 만 18살로 생애 첫 투표를 하루 앞둔 엄군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이번 총선에는 55만여명에 이르는 전국의 18살 유권자가 투표에 나선다. ‘고등학생이 후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거림과 코로나19로 선거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대한 우려가 쏟아졌지만, 새내기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다부졌다. <한겨레>는 선거를 하루 앞둔 이날 18살 유권자 9명에게 첫 투표에 나서는 소회와 바람을 들어봤다.
투표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10대 유권자들은 “긴장 반, 설렘 반”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재연(경기 고양)양은 “선거연령을 낮춘단 말을 들었을 땐 마냥 기뻤는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우리나라의 올바른 정치를 위해 제대로 한표를 던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고 했다. 그래도 재연양은 “부모님이 찍으라는 후보를 뽑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 후보가 우리 학생들을 위해 일을 할지 잘 판단해서 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형섭(강원 강릉)군도 “선거를 하기 전엔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투명인간 같았는데, 선거를 하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나오니 뿌듯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더라. 그만큼 책임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 기성 정치에 불만이 컸던 만큼, 청소년들은 제대로 공부해서 잘 뽑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박아무개(서울 영등포)양은 “국회에 말도 안 되는 의원들이 앉아 있는 게 실망스럽다. 자기 이익을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정치인들은 뽑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동민(서울 서초)군은 “어떤 정치인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권위적인 것보다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니까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진수(경기 안산)군도 “정치인은 시민들 편에 서서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중심으로만 일하는 것 같다”며 “(이번 선거가)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유권자들의 관심은 단연 ‘교육정책’에 쏠려 있었다. 엄주명군은 “그동안 투표권이 학부모에게만 있었던 탓에 정치인들이 교육정책과 관련해 청소년들의 얘길 안 들었던 것 같다”며 교육 관련 공약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고교생 유권자들은 특목고·자사고 폐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김원재(경기 남양주)군은 “자사고에 다니고 있는데 특목고·자사고를 폐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재연양은 “외고에 다니고 있지만 특목고는 폐지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고려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밖 청소년’인 조민정(경남 창원)양은 “학교밖 청소년은 소수다. 우리에게 성실하게 응답하고 관심을 가져줄 후보한테 권력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인터뷰한 10대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공약의 현실성’과 ‘진실성’, ‘투명성’이었다. 특히 공약의 현실성에 대해선 기성 유권자보다 더욱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김원재군은 “너무 비현실적인 사람은 뽑기 싫다. 지하철 확장 같은 공약은 필요하긴 한데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공약을 바란다”고 말했다. 전진수군도 “보여주기식 후보는 뽑지 않겠다. 진정성 있고 진심이 보이는 후보자를 뽑겠다”고 했다. 정아무개(경남 창원)군은 “청소년을 비롯해 소외된 사람들이 없도록,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직접 국회에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광준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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