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17일 오후 을지로입구에서 CJ대한통운 규탄대회 후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 5명의 영정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택배 배송 중 사망한 고 김원종 씨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장시간 근무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 한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달 들어서만 세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추석 연휴 성수기가 겹치면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고 있는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 지원 등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한진택배와 택배연대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한진택배 서울 동대문지사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던 김아무개(36)씨가 지난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출근하지 않은 김씨의 집에 동료들이 찾아갔다가, 숨진 김씨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과 노조는 김씨의 죽음을 ‘과로사’로 보고 있다. 과로사로 숨진 다른 택배노동자들처럼 김씨의 사인이 심혈관계 질환인데다, 김씨가 숨지기 전 새벽까지 일을 계속하면서 힘들어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고인은 지난 8일 새벽 4시28분에 회사 동료에게 “오늘 420(개를) 들고 나와서 지금 집에 가고 있습니다. … 저 집에 가면 5시, 밥먹고 싯고(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해요. …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내용을 담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고인은 “16번지 (물량을) 안 받으면 안되겠냐” “어제도 새벽 2시에 집에 도착했다”고도 호소해, 이런 강도의 노동이 적어도 며칠째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노조 쪽은 “한진택배는 기사 한명이 맡고 있는 구역이 넓어, 같은 물량이라도 씨제이(CJ)대한통운 등 다른 택배회사보다 노동 강도가 곱절은 세다”고 주장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8일 공개한 한진택배 택배기사 김아무개씨의 카카오톡 갈무리.
하지만 한진택배 쪽은 “국과수 부검 결과 고인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정됐다. 고인은 평소 다른 택배기사보다 조금 낮은 수준인 200개 내외의 물량을 담당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카카오톡을 보낸 8일 고인이 맡았던 물량에 대해선 “300건 남짓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카카오톡 내용과는 다르지만, 고인의 일감이 평소보다 많았을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또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한 결과, 고인은 한진택배 해당 대리점에서 1년3개월 동안 일을 했는데도 입직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산재보험 가입이 되어 있지 않는 등 사각지대에서 일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올해 들어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은 택배노동자는 무려 10명에 이른다. 지난 8일 씨제이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해온 40대 노동자가 배송 업무를 하다가 숨진 데 이어, 12일에는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0대 일용직 노동자가 근무 뒤 숨졌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벌써 3명이 숨졌는데, 앞으로 어떤 비극이 더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법·제도적인 대안은 중장기적으로 마련하더라도, 당장 택배기사들이 매일 6~7시간씩 ‘공짜노동’으로 제공하고 있는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 지원이 시급하다”며 “또 당분간 토요일 배송을 하지 않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 성수기에 택배업계가 지원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도록 지시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상하차 작업에만 인력이 투입됐을 뿐 애초 약속했던 분류작업에 대한 지원 인력은 거의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 쪽 주장이다.
최원형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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