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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계 없는 연대로 만들어갈 방송작가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등록 2021-06-23 10:24수정 2021-06-27 11:52

방송작가 친구들 릴레이 기고①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국내 방송작가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정규직은 0.1%(10명)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국내 방송작가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정규직은 0.1%(10명)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KBS·MBC·SBS는 특별 근로감독 회피 말고 적극 협조해야

방송작가들의 비정상적인 노동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 당사자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2020년 방송작가 2명을 해고한 <문화방송>( MBC)의 결정이 부당해고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지난 3월에 나왔다 . 지금 지상파 3 사는 시사교양· 보도 분야 작가들의 근로자성 문제로 특별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 그러나 방송 3 사는 근로감독 대상 명단과 연락처를 뒤늦게 제출하거나 일부만 제출해 근로감독을 지연시키고 있다 .

수십 년을 일하고도 하루아침에 잘리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방송작가 , 또 방송사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전태일재단 , 노회찬재단 ,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 방송작가 친구들 ’ 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 방송 3 사가 이제라도 근로감독에 적극 협조하기 바라며 릴레이 기고를 시작한다 .

지상파에서 근무하는 한 방송작가의 책상.
지상파에서 근무하는 한 방송작가의 책상.

저임금과 임금체납·장시간 노동·문자 해고…

‘관행’이라는 허울에 감춰진 방송작가들의 노동실태

김한별 ㅣ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방송작가란 세상을 향해 발화하는 사람. 세상을 향해 글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

한 방송작가의 인터뷰가 마음을 울렸다. 이 그럴듯한 문장에 홀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꿈꿨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서울 여의도와 상암 언저리 방송 바닥에서 수많은 꼴을 보고 견뎌왔다. 장시간 노동, 부당해고, 임금체납, 성폭력 등은 젊은 여성이 일터에서 흔히 겪는 일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현장은 뭔가 많이 이상했다.

방송 송출이 안 됐다는 이유로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엄연히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주된 스태프로 일을 했는데 아무런 경력 증명을 받을 수 없었다.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임금을 받았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당했다. 방송사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인데도 방송국으로 출퇴근해야 했고, 피디 지시에 늘 대기해야만 했다. 동료들은 생리불순, 불안장애에 시달렸다. 함께 일하던 피디에게 성폭력을 당한 작가는 현장을 떠나고, 가해자는 멀쩡히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이런 일을 보고 겪을 때마다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곳에서 적어도 노동에 대한 방송은 만들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다니. 이건 아니잖아요. 세상을 향해 글과 행동으로 말하기는커녕 늘 입 다물고 감내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가 속한 세상 속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나날들.

함께 일하며 친해진 피디, 기자들도 방송국 내부 노동문제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 방송사 사장이 돼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노동조합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피디가 임금 대신 상품권을 내밀 때 느껴졌던 처참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방송사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언론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속이 메스껍지 않을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방송 노동 현실이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방송으로 다루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오로지 방송사만이 성역이다. 같은 주제를 담더라도 신문 기사와 방송 프로그램의 파급력은 극명하다. 전국의 티브이(TV)로 송출되는 영상을 만들면서 방송이 가진 힘을 매번 실감했다. 영상 언어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이런 큰 영향력의 매체로 세상 속 의미 있는 일들을 조명하고 알리는 일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심지어 재미와 보람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방송작가들은 거대한 괴리 속에 살아왔다.

이렇게 멋진 직업을 포기하고 떠나간 동료 선후배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너무 많아서 차마 다 한 번에 다 헤아려지지 않는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는 동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진정 자유로운 프리랜서인가, 불안정한 임시노동자인가 고민했다. 그렇게 같은 고민을 하던 작가들이 모여 ‘방송작가유니온’을 출범시켰다.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방송작가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순에 대항한 꿈틀거림이자, 이 비정상적인 환경을 우리 손으로 끝내겠다는 다짐이었다. 출범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방송작가(메인-서브-막내)는 프로그램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다. 피디와 출연자, 카메라, 조명, 음향, 편집 등 제작의 전 과정이 그들이 만든 대본과 큐카드(진행용 방송대본)를 기초로 진행된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다. 작가 대부분이 ‘프리’한 삶을 누릴 수 없는 노동조건에서 일하지만, 그들을 향한 해고와 부당노동행위는 ‘프리’하게 이뤄진다. 방송작가의 꿈을 일구며 임금을 포기하고, 고용 안정을 포기하고, 자존심을 포기하고, 개인시간을 포기하다 보면 건강까지 포기하게 된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방송작가(메인-서브-막내)는 프로그램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다. 피디와 출연자, 카메라, 조명, 음향, 편집 등 제작의 전 과정이 그들이 만든 대본과 큐카드(진행용 방송대본)를 기초로 진행된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다. 작가 대부분이 ‘프리’한 삶을 누릴 수 없는 노동조건에서 일하지만, 그들을 향한 해고와 부당노동행위는 ‘프리’하게 이뤄진다. 방송작가의 꿈을 일구며 임금을 포기하고, 고용 안정을 포기하고, 자존심을 포기하고, 개인시간을 포기하다 보면 건강까지 포기하게 된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문화방송>에서 일한 두 방송작가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최초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지금 한국방송(KBS)·<문화방송>·<에스비에스>(SBS) 등 방송 3사에서는 사상 최초로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이 착수돼 진행 중이다. 프리랜서, 방송계 관행이라는 허울로 감춰졌던 방송작가들의 노동 환경이 조금씩 알려지고 개선되는 계기가 됐고 이는 노동계 전반으로 보더라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방송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몸소 보여주었다. 소송으로 맞서고, 관련하여 일절 보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것이 그 어디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방송사의 현실이다. 내부 문제에 눈감고 외면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공정하겠는가. 노동문제 해결 없이 공정 언론은 당연히 이뤄질 수 없다. 공정한 언론 없이 공정한 사회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이제 더는 내부 정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방송 제작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불법 노동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더욱 다양하게 생겨날 것이다. 언론에 기대지도 못하는 우리에게는 방송사를 견제할 더욱 큰 힘이 절실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티던 방송작가들에게 다양한 곳에서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주셨다. 그리고 방송작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성역 없이 담아내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의로운 방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그 기본이 될 착취 없는 방송 노동 현장을 위해서다. 정의로운 언론이 바탕이 된 사회는 앞으로 조금 더 살만해질 것이다.

전태일재단·노회찬재단·한국비정규노동센터·정의당 등 많은 곳에서 ‘방송작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연대체로 모였다. 우리는 앞으로 이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부당함과 부조리에 대해 글과 행동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다음 주 수요일까지 방송작가와 방송작가 친구들의 글이 이곳에 연재될 예정이다.

이 글들이 당신께 가닿길 바란다. 방송작가로 살면서 부당한 이 현장이 변하길 간절히 바라왔던 당신.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감도 안 오는 우리나라 방송 제작 시스템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길 바라는 당신. 우리 언론과 방송사가 바로 서길 바라는 당신. 법의 안전망 뒤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에 깊게 공감하는 당신.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당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당신.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갈 당신을 이 글들의 끝에서 기다리려 한다.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 친구들과 함께해달라고 말이다. 반드시 함께해야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경계 없는 연대로 함께한 우리는 푸념 대신 희망을 말하고, 세상을 향해 행동할 것이다.


19일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앞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가 연대 단체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lt;한겨레&gt; 자료
19일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앞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가 연대 단체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자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작가=무늬만 프리랜서’ 관행과 편법 반성해야

김혜영 ㅣ 고 이한빛 PD 엄마,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저자

아들(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의 죽음 후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이제야 방송-미디어 노동 환경의 열악한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그리고 왜 그동안 개선되지 않았냐고 물었다.

국어교사 시절 나의 수업시간을 돌아보았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연출자의 참신한 기획 의도나 배우의 명연기에 대해서만 드라마를 분석했다. 가끔 작가의 특별한 체험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단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모둠 활동에서 학생들도 서로 배우나 연출자가 되려고 했다. 표시는 안 나면서 독박을 써야 하는 대본 작성(작가)은 의례 피하고 말 없는 아이들은 소도구를 담당하는 스태프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아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모둠 전체가 함께할 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가 기준의 차별을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똑같은 시청자였던 나는 한빛이 죽음으로 고발한 문제들이 ‘원래 그런 그것은 없다’,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임을 확인하고 가슴을 쳤다. 그동안 교사로서, 시청자로서 가져야 할 보통의 시선을 전문적인 시선으로 왜곡했음을 깨달았다.

또 놀란 것은 방송-미디어 현장에 비정규직·프리랜서·일용직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빛이 어느 날인가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 ‘비정규직은 하루아침에 해고될 수도 있고 일회용품처럼, 도구로 취급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사회생활은 원래 다 그래. 어쩔 수 없어’하며 말을 끊었다.

대학 졸업 후 학교에만 근무했던 나에게 비정규직이란 개념은 낯설었고 프리랜서라는 말은 아름다웠다. 작가를 꿈꾸고 방송-미디어에 환상을 갖는 중학생들. 3년 후면 청년이 되고 사회에 나갈 텐데,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가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좌절할까? ‘원래 그래’,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미리 가르쳐줘야 덜 절망할까?

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 노동교육을 하지 못했다. ‘노동’보다 ‘근로’라는 말이 더 편했다. 누구나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굳이 노동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두운 미래를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뒤늦게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우리 아이들이 노동자가 되든, 하청업주가 되든, 대기업 사장이 되든 생명이 이윤보다 앞서는 노동 가치관이 확립돼 있으면 지금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잃고서야 깨달았다.

한빛의 죽음 이후,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2017년),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2018년)를 창립하고, 프리랜서·파견직·계약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TBS지부,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2019년)를 결성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조직화하고 투쟁에 나서고 있어서 희망적이다.

그런데도 지난 3월 <문화방송>(MBC)은 중앙노동위원회가 <뉴스투데이>에서 10년간 일한 작가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작가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복했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없이 ‘노동자 아닌 노동자’로,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삼았던 관행과 편법을 반성하지 않았다.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김혜영) 출간 후 모두 다시는 청년들이 절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보통의 시청자들은 이런 숙제를 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카메라 뒤의 사람을 응원하고 있다. 방송사가 방송-미디어 노동 환경 개선에 힘쓰고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존중받을 때 우리는 많은 감동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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